봄을 타나?
문득 떠오르는 길이 있다. 빵을 굽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 때로는 자동차를 타고 운전하고 있는 무의식 속에서 현실과 다른 기억 속의 그 길을 달린다. 그리고 아련한 꿈 속에서 눈앞에 펼쳐진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길을 걷는다.
그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길들에는 더 애착이 간다. 다시 걷고 싶고, 달리고픈 그 길들을.
영국 버밍엄에서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스트랫퍼드로 가는 좁은 국도는 내가 좋아하던 길이다. 그곳은 종종 나를 끌어당긴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상관없이 나를 부른다. 사랑스러운 그 길이.
버밍엄에서 1시간 남짓 걸리는 그 길은 꽤나 여러 차례 지났다.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 국도를 지나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난다. 길을 가다가 작은 시골 타운에서 차를 세우고 중간중간 멈추어 예쁘고 앙증맞은 작은 레스토랑과 카페에 들어갔다. 정원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영국식 스콘과 우유가 가득 들어간 홍차 맛 밀크티를 따뜻하게 마시면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을 수 있다면 더없는 행운이 되던 길이다.
회반죽과 벽돌로 된 벽에 목재가 노출된 영국의 오래된 목조주택인 튜더 양식의 주택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꾸불꾸불 오솔길을 지날 때면 떠오르는 그 작은 시골길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영국에 갈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꼭 다시 지나보고 싶은 꿈의 길이다. 그곳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며 평화로이 드라이브를 해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마음만 먹으면 내 깊은 머릿속 기억이 그 따뜻하고 다정한 길로 나를 이끌기 때문이기에.
나는 때때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몽환 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도착해야 하는 목적지를 알고 있지만, 기억 속 목적지가 나를 부른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곳이 어디일까?
한국인지, 영국인지, 인도인지.
오래전에 방문했던 낯선 타국에서 걸었던, 아니면 자동차에 몸을 싣고 달리던 그 길이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순간 방향 감각을 잃는다. 기억의 회로도 엉켜버린다.
나는 지금 어느 길을 달리고 있는 걸까?
멀고도 멀게만 느껴졌던 어릴 적 신작로를 걷고 있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가끔 나는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오곤 했다. 버스에서 내려 하얀 콘크리트 길가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던 그 길을 하늘과 함께 걸었다.
어쩌면 나는 산들과 들판 가운데 가로지른 그 하얀 신작로를 걷고 있는 가녀린 소녀를 만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홀로 걸어서 더 멀게 느껴졌던 그 길 위에서 고요히 발걸음을 옮기던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기라도 하는 걸까?
때론 마을 어귀에 둘러 있던 좁은 흙길이, 기차가 달리던 철도와 기찻길 옆을 따라 놓인 짧은 그 길도 나를 불러들인다.
몸은 이미 멀리 와 있는데, 마음은 자꾸 그곳에 머문다.
소꿉친구들을 따라 바구니를 들고 냉이와 쑥을 캐러 올랐던 멀고 먼 논두렁도 나를 부른다. 조심조심 발을 떼며, 뭐가 쑥인지 냉이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날 위해 다정하게도 일러주던 소꿉친구들과 함께 하던 그 좁디좁은 논두렁 길도 나를 붙들어 맨다,
봄이 왔다.
어쩌면 나는 따스한 햇살이 가득했던 봄날의 그 길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의 그 길엔 햇살이 가득했다. 따스한 온기가 머물던 훈훈한 공기 속에서 내게 손짓하는 그 아름다운 길엔 봄이 머물고 있었다.
그럼, 지금 나는 봄을 타는 걸까?
오늘따라 그리운 길들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걸 어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