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얽힌 에피소드
내가 태어났던 그 당시는 세상이 이리 넓고 넓어지리라 미처 알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 아기를 품에 안은 부모나 조부모는 한자의 뜻에 맞춰 한국어 이름으로 가장 적절하고 고유한 이름을 선택하기 마련이었다.
나도 벌써 옛날 사람이니 이름의 뜻을 높이 산 아버지의 생각에 의해 '은경', 그러니까 맑은 은혜라는 숭고하고도 다정한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이미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지어진 이름을 품고 있던 그 이름, 은경으로.
그때만 해도 내가 해외에서 생활하게 되리라는 건 아마도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하셨지 않을까 싶다. 은경의 '으' 발음이 외국인들에게, 특히 서양 사람들에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 거라는 걸 미리 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영국과 인도에서 보낸 긴 시간 동안 이름 때문에 겪었던 고충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내 이름도 김연아 선수처럼 세상 그 누구도 어렵지 않게 부를 수 있는 쉬운 이름이었다면 조금은 더 편한 외국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이름 석 자에 다 같이 받침이 빠짐없이 들어있으니 얼마나 발음하기 어려운지. 외국인 친구들이 내 이름을 완벽하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저 맞는 것처럼 그야말로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으면서 그들을 격려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게 한국어를 배우던 인도 학생들이 정확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이다. 역시 인도 사람들이 언어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이 맞는 게 분명하다.
영국에서나 인도에서 내 이름은 줄곧 '윤켱', '인켱', '윤경', '인기영', '윤겨엉'... 등등 참으로 다양해서 내 이름은 타국에서 꽤 곤욕을 치렀다. 몇몇은 한국 이름을 포기하고 그저 '킴'이나, '정'으로 불렀다. 일부러 영어 이름을 만들어서 '도르카스'로 불러달라 했지만, 오히려 '그레이스'가 어울린다며 날 자신들이 부르기에 좋고 마음에 드는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보통 때는 남편 성을 따라 '미세스 킴'이라 쉬 불릴 때가 많았다.
지금도 잊지 못할 우픈 에피소드를 독일에서 경험했다. 영국 유학 당시 남편의 학회가 열린 독일 뒤셀도르프에 며칠 따라갔을 때다. 일정을 마치고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영국 버밍엄 공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 수속을 했는데, 비행기 출발 시간이 2시간 늦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독일에서 큰 맘먹고 장만한 독일산 쌍둥이 칼을 단단히 싸서 먼저 화물을 보내고는 나는 남편과 함께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누려보기로 했다.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와 음료, 쿠키와 간식도 즐기며 주어진 두 시간의 선물을 알차게 사용하던 차였다. 면세점 이곳저곳을 누비며, 넓은 공항을 가로질러 아이쇼핑을 단단히 하고 있었던 그때.
방송에서 어색하지만 익숙한 듯한 이름이 계속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게 아닌가? 독일인이 부르는 나의 한국 이름은 기상천외한 알굳은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되어 버린 것이다. 도저히 내 이름이라고는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이었다. 다행히 그나마 남편의 한국 이름에 김 씨 성이 있었기에 '킴'이 귀에 정확히 들렸다.
독일 공항 안내 방송에서 나오던, 아니 간절히 간절히 애타게 목이 터져라 외치던 내용인즉슨. 두 시간 연착된다고 했던 영국 버밍엄행 비행기가 한 시간 만에 출발하게 되었으니 게이트로 빨리 오라는 건데. 글쎄 모든 승객은 이미 탑승 준비가 다 되었지만 이놈의 한국 사람 두 명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30분째 나와 남편의 이름을 공항에서 고래고래 외치며 부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아듣게 된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애타는 방송을 듣자마자 달리기 육상 선수라도 된 양, 있는 힘껏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를 기다리던 비행기를 탔을 때, 우리를 바라보던 온통 흰색 셔츠에 새하얀 얼굴빛의 그들의 시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많은 승객들 중에 유색인 동양 사람은 오직 우리 부부가 다였다.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행여 동양 사람이라고 더 편견을 갖고 멸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소중한 시간을 한국인 부부를 기다리는데 써버리게 했으니 그런 민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사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건 맞는데, 그래도 변명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우리를 기다리게 한 건 우리 탓이 아니라고, 우리가 시간을 뺏은 게 아니라고, 우리에게 손가락질은 절대로 하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항변하고 싶었다.
"저기요, 백인 탑승객분들이여. 우리 이름을 너무 이상하게 불러준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 측의 잘못이라고요. 우리는 잘못이 없다고요. 뭐 한국어 발음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무 못한 독일인이 문제 아니겠어요?"
그때 그 순간, 사실은 살짝궁 내 이름을 국제적으로 지어주지 않고, 지극히 한국적인 보통의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이야 한국에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가끔 친구들 중에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한 경우도 있는데, 여전히 나는 그들의 옛 이름을 불러준다.
나도 나의 이름 그대로를 좋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