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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Aug 13. 2023

고흐의 사인과 낙관주의

산다는 게 가끔 그렇다. ‘이 산이 아니었나’ 하는, 너무 늦게 온 교훈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야 할 때. 머리카락이란 게 있을 때의 나를 나는 꽤 좋아했구나 하고 자원입대 며칠 전 이발소 거울 앞에서 깨달아 버렸던 날이 그랬고, 철학과 첫 수업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하나로 문자 그대로 밤새 토론하던 철학과 동기들을 구경하던 날이 그러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류시화 作), 필시 뭔가가 달랐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나의 20대를 생각한다.


나의 20대를 지금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살일 리가 없다고 확신했던 시절. 출판사 도장깨듯 닥치는대로 모으고 읽은 그의 편지들에는 꺾여 마땅함에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가득했다. 그래 보였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나날, 미래(未來)에서 고작 한 줌뿐인 희망을 상상해내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그런 사람이 겨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투사(投射)와 믿음을 쉬이 혼동하던 나이였다.


“가가 세상이 텅 비어보였는 갑다” - 고(故) 이윤기 선생


살다보면 아직 당도하지 않은 세상이 텅 비어 보일때가 있음을, 서른이 된 나는 간신히 깨쳤다. 꼬박 1년을 혼자 견뎌야 했던 투병 기간이 이같은 교훈의 주효한 단서였다. 내 미래는 묘기용 풍선과도 같아서, 내 마음대로 구부리고 묶어 작품으로 빚어낼 수 있으리라 믿던 이전의 나는 나보다 먼저 죽고 없었다. 상상 속에서 장밋빛이던 미래 또한 이제 텅 비어 있었다. 그때 다시 읽은 빈센트의 편지들은 처음 읽는 듯 생경했다. 당신도 닥쳐올 나날들이 실은 텅 비어 보였던가. 서른 이후의 나는 빈센트의 사인이 자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때쯤부터 였을 것이다. ‘미래’라는 단어를 최대한 생각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 철학과에서 비싼 돈 주고 배운 형이상학의 언어를 분리수거하는 대신, 손에 잡히는 형이하학적 단어와 현상들에 집중했다. 사랑이나 우정, 연대와 같은 단어들이 덤으로 버려진 것도 그때즈음이다. “나랑 걔는 친해”라는 문장 대신 “두어달에 한 번쯤 연락하는 사이”라는 문장을 쓰려 했다. 고개를 들어 보이는 게 고작 텅 비어 보이는 미래라면, 시선을 땅으로 끌어내려 당장의 설거지와 방 청소에 집중하려 했다. 미리 목도하지 않은 텅 빈 미래는 견딜만하다. 서른을 넘긴 나는, 그때 알게 될 것을 지금 알게더라도, 어쩌면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의 주인공 캉디드(Candide·불어로 ‘전진하다’)는 대책없는 낙관주의의 신봉자다. 그런 그에게 작가는 악질이다 싶을만큼 거대한 역경들을 무수히 겪도록 한다. 본디 고난과 역경이란 ‘이겨내는' 게 아닌 그저 ‘겪는것임을 배운 캉디드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러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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