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첫 장

악당이 된

by 임은


“당신, 내게 새 삶을 줄 수 있어?”


새 삶은 모르겠지만, 당신의 불행을 거둬 줄 순 있어.

나는 다른 이의 불행을 거둬 주기 위해 태어났거든.



어둠이 스며들던 시간이었다. 숨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했고, 모두가 잠에 취해 우리의 소곤거림조차 그들의 꿈처럼 스쳐버릴 시간. 오래도록 어둠을 뚫고 달려 새로운 도시에 닿았을 때, 우리의 밤은 누군가의 낮처럼 소란스러웠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불빛들이 밀려왔다. 손 안의 작은 비행기 장난감과 꼭 닮은, 거대한 비행기가 그 불빛 사이로 떠올랐다. 엄마가 처음으로 사준 장난감이었다. 낡지 않고 부서지지 않은 새 장난감. 늦은 밤인지 이른 새벽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모두가 꿈속에 잠겨 있을 때 엄마는 내 손에 비행기 장난감을 쥐어 주었다.

“이걸 타고 우린 멀리 떠날 거야.”


옷을 갈아입을 시간조차 없이, 잠옷바람으로 새 장난감을 손에 쥔 채 이곳에 왔다. 그렇게 도착해 보니 손에 든 그것과 똑같은, 아니 훨씬 더 커다란 비행기가 눈앞에 있었다. 조금씩 새어드는 꿈들이 모두 달아날 버릴 만큼 거대했다. 부러질 듯 손에 쥔 장난감처럼, 엄마는 내 손을 그렇게 붙잡았다. 장난감을 잃기 싫은 나처럼. 엄마도 나를 잃고 싶지 않았겠지.


엄마의 눈은 불안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도시 한가운데서, 이곳이 처음이라는 걸 숨길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 눈동자와 손에 꼭 쥔 보따리, 그리고 잠옷 차림의 나. 우리는 분명 이 도시의 이방인이었다.


그 불안이 잠시 누그러진 건 거대한 비행기 안에 몸을 맡기고 나서였다. 땀이 흥건해도 놓을 수 없었던 손을, 각자의 의자에 앉은 채 겨우 내려놓았다. 엄마는 옷자락에 손바닥을 몇 번 훔친 뒤 내 이마를 쓸어주었다.


“우리 예쁜 아가.”


엄마의 목소리는 늘 그랬다. 거칠게 쏟아지던 아빠의 말들이 그 한마디의 녹아내리던 밤들처럼. 오늘도 많은 말이 오가진 않았지만 엄마의 불안과 나의 불안은 그 짧은 한마디 속에 함께 녹아내렸다.


‘엄마도 예뻐.’


질끈 묶은 머리와 주름진 얼굴. 잠옷 바람의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내게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아침이 되면 밥상을 엎던 아빠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나의 안전벨트를 여러 번 확인하고, 몸에 꼭 맞게 조여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게 마치 아빠로부터 벗어난 안전벨트처럼 느껴졌다. 그 벨트가 우리를 지켜줄 거라 믿었다. 엄마의 씩 웃는 얼굴에는 그동안 보아왔던 불안이 아닌, 처음 느껴보는 안심이었다. 덜덜거리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엄마에겐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행복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는 걸. 활주로를 막 벗어난 비행기가 덜컹거렸다. 창밖 불빛이 흔들리고, 곧이어 귀를 찢는 굉음이 뒤따랐다. 기체가 한쪽으로 기울이며 세상이 비틀어졌다. 그때 엄마의 팔이 내 몸을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듯한 냄새.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땅의 울림. 비행기는 활주로 끝의 구조물에 부딪혀 폭발음과 함께 흔들리던 기체가 두 동강이 났고, 나는 그 틈에서 튕겨져 나갔다. 하얀 불빛이,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불행의 끝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와 함께 탔던 놀이동산 범퍼카. 머리가 쿵하고 부딪히던 순간이 있었다. 입안에선 피가 나고 아빠의 고성이 오고 갔다. 정신없는 그 틈에서 아프다고 소리칠 수 없었다. 그때의 소리, 그때의 어지럼, 모두가 다시 떠올랐다.


북적이던 도시가 멈췄다. 거대한 비행기가 벽에 부딪히는 광경을, 모두가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귀를 찢을듯한 굉음이 도시를 삼켰고, 거대한 불길이 반짝이던 불빛을 집어삼켰다. 엄마는 단 한순간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잠시 안전벨트를 매는 순간을 빼고, 다시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흘러도, 미끄러져도 엄마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손을, 비행기가 갈라놓았다.


거대한 비행기 폭발사고에서 혼자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홀로 깨어난 병실에서, 우리가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하던 아빠를 다시 만났다.


“괜찮니.”


의사 선생님이 물을 때는 다정하게 들리던 그 말이, 아빠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낯설 만큼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아빠가 일자리를 잃은 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다정이라는 의미를 담을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그 말이, 나에게 향했다. 괜찮냐고. 마치 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에게 당연히 건네야 하는 인사처럼. 그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아빠는 한 시간에 한 번씩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아빠를 두고 엄마와 단둘이 배행기를 탔던 그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지끈하는 머리와 손의 상처들이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끔 내 상태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이 쉬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이 없는 밤이 무서웠다. 나를 지켜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엄마도 겁이 나서 떠나버린 걸 고작 여섯 살의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번쩍이던 그날처럼, 내가 환자복을 입고 병원 복도를 지나다닐 때면 사람들은 나를 향해 번쩍이는 플래시를 들이댔다. 그리곤 ‘괜찮니’와 ‘가엽다’는 말을 했다. 어린것이 어떻게 감당하냐는 그 말은 엄마가 없는 나를 두고 하는 소리일까, 아빠의 손지검을 앞으로 어떻게 견디냐는 말이었을까. 아빠는 카메라가 들이대면 울음을 터트렸다. 집안의 사자였던 아빠는 세상 불쌍한 사람이 되어 인터뷰를 했다. 아빠는 내 앞까지 다가온 마이크와 사람들을 손으로 막아냈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몰래라도 누가 물어봐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빠가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틈이 조금도 없었다.


퇴원 후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컴컴했던 그날이 떠오를 때면 움추러들었고, 번쩍이는 빛이나 조금의 큰 소리에도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감싸면, 잠시 엄마의 온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상처로 안은 채 자라났다. 학비를 지원하겠다는 사람들,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럴 때면 아빠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도,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아빠의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이며 봉투를 건넬 때마다, 그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집 안에는 휴지와 라면이 쌓여 갔다. 나는 매일 반찬을 놓아주던 손길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러나 아빠는 없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씩 줄어들자, 아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게 오히려 더 좋았다.


커버리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의 계획은 성공이었다. 아빠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건 대성공이었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도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아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이모가 찾아왔다. 와락 안아준 이모의 품에서는 엄마의 향기가 났다. 이모의 목소리에서는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이모, 비행기를 타러 가던 날, 엄마가 내 손을 이렇게 잡아줬어요. 손에 땀이 차서 흥건했는데도, 엄마는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더 꽉 제 손을 잡았어요. 너무 꽉 쥐어서 미끄럽다고 말했는데도, 잠시라도 놓는 게 우리를 갈라놓을까 봐 엄마는 더 세게 손을 쥐었어요. 그 손이 비행기 안전벨트를 맬 때 잠시 놓였는데, 아마 엄마는 그 안전벨트가 나를 잡아줄 또 다른 손이라고 믿었을 거예요. 그때 엄마에게서 나던 비누냄새가, 지금 이모에게서 나는 것 같아요. 이모 목소리에서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설아, 우리 같이 살자.”


그 밤, 이모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하루만 보고 가려고 했다며 말했다. 사는 게 버거워 나를 돌볼 수 없다는 게 속상해서, 하루만 그렇게 엄마 대신 나를 안아주고 돌아가려 했다고 했다. 이제 중학생으로 컸으니 곧 성인이 될 테고, 그렇게 엄마 없이도 이만큼 자랐으니 이후의 삶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지만 그날 밤, 내가 잠결에 중얼거렸던 말 한마디가 이모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그렇게 이모는 내 손을 잡았다.


허름하고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빌라였지만 이상하게 좋았다. 그 안에는 이모와 나, 그리고 동생이 있었으니까. 어느 날, 늦게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동생은 입가에 피를 머금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동생은 계속 입원해 있어야 했다. 그 후로 매일 밤, 엄마가 나를 지켜주던 것처럼 이모는 동생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