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 401호

그녀의 방법

by 임은

서울 한복판, 한옥 한식당이었다. 마당에는 값비싼 승용차들이 차례대로 들어섰다. 날이 조금씩 어둑해지자 목조 기둥을 따라 노란 등이 하나둘 켜졌다. 야외로 이어진 복도는 정갈했고, 공기에는 비가 막 그친 듯한 습기가 섞여 있었다. 이런 곳은 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였다.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 같은 것.


기와지붕에서 물줄기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다. 그 소리를 따라 이설은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목표를 기다렸다. 이설의 손에 든 사진엔, 짧은 머리의 사람 좋은 눈웃음을 지은 사람이 있었다.


-백지헌, 서른넷, 키 178센티미터.

그의 프로필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문이 삐걱하고 열렸다. 사진 속 얼굴과 겹치는 남자. 회색 슈트의 남자가 거울 앞에 머물렀다. 이설은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헌 씨.”


그가 고개를 들었다.

“백지헌 씨.


“네?”


남자가 대답을 하곤,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이설의 얼굴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배 위의 손으로 천천히 옮겨졌다. 단정한 정장을 입은 이설은 배 위에 손을 올린 채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대부분의 남자라면 이 순간 당황하거나, 도망친다. 하지만 경험이 아직 부족한 그는 어느 것도 고르지 못한 듯했다.


이설은 바로 입을 열였다.

“이제 10주예요. 눈, 코, 입이 하나씩 생기더니 발가락, 손가락도 생겼어요. 얼핏 봤는데… 당신하고 꼭 닮았더라고요.”


“뭐예요, 당신.”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눈동자가 커지고, 미간이 좁혀졌다. 남자가 반 걸음 뒤로 물러서자, 이설은 오히려 한 걸은 더 다가갔다.


“지헌 씨.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요.”


남자의 얼굴에 짜증이 솟았다. 남자가 손목을 거칠게 잡으려는 순간, 이설은 반대로 그의 팔꿈치를 가볍게 잡았다. 사람은 팔꿈치를 잡으면 이상하게 힘이 빠진다. 어깨가 내려가고, 엉거주춤 힘을 뺀다.


“꽤 그럴듯하죠?”

이설은 낮게 웃었다.

“지금은 리허설이고, 그대로 상견례 자리에서 할 생각이에요. 양가 부모님 앞에서, 한 번.”


“뭐야. 당신… 나는 당신 몰라.”

“그렇죠? 나도 당신 몰라요.”


이설의 입가에 미소가 잠시 번졌다.

“근데, 이지연은 알잖아요. 그 남편이 어떻게 고통받았는지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겁은 언제나 미세한 떨림으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주변을 살피는 남자는 당황한 듯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신고할 거야.”


“뭘로요?”

이설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지연 남편이 신고해도 모자랄 판에, 당신이 뭘로 신고하려고요? 명예훼손? 협박? 좋아요. 하세요. 다만… 내가 먼저 말해버리면, 누가 더 망가질까요?”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결혼식 망치면 가만 안 있을 거야.”


“그렇죠. 보통 남의 결혼 망치면 가만 안 있죠. 잘 아시네요.”

남자가 손을 번쩍 들자, 이설이 그 손을 가볍게 받아내며 손목을 눌렀다.

“우리도 가만 안 있어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설은 복도 끝의 둥근 창을 턱으로 가리켰다.

“상대 부모님이 대단한 분이시더라고요. 한성유통 사장님. 나도 그 라면 진짜 좋아하는데… 오늘 아침에도 먹었거든요.”


이설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방법이 안 먹히면 다른 방법도 있어요. 근데 저는 이게 재밌어서. 결혼식 날도 한 번 더 하려고요. 그땐 더 크-게.”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숨을 들이켰다.

“당신이 원하는 게 뭐야.”


이설을 입술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그를 더 애태우게 했다. 멀리서 종업원이 우리의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남자는 재빨리 이설의 손목을 놓았다.


이설은 그의 눈을 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진심 어린 사과, 그리고 피해 보상.”


식당을 나와 오토바이에 걸터앉았다. 시동을 걸기 전, 전화 버튼을 눌렀다.


“삼억 준다는 각서, 방금 사진 찍어 보냈어요. 내일까지 입금될 거예요.”

수화기 너머로 짧은 한숨이 흘렀다.

“네. 십 프로 수수료, 잊지 마시고요.”


이설은 무언가 떠올린 듯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아, 서비스로 사진 한 장 보내드릴게요.”


메시지로 사진을 보냈다. 젖은 잔디 위에 정갈한 슈트 차림의 남자가 풀밭에 엎드려 벋쳐 있는 사진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의뢰인은 알 것이다. 그가 백지헌 임을.


“확인하셨어요?”

“… 봤습니다.”

상대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고맙습니다.”


이설은 헬멧을 눌러썼다. 차려입었던 옷이 눅눅해지고 구겨졌지만, 묘한 미소가 입가에 스쳤다. 시동이 걸리자 배기음이 낮게 울렸다. 철제 진동이 몸을 타고 흐르곤 그 리듬에 맞춰 몸이 흔들렸다. 멈췄던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져 이내 쏟아져내렸다. 노란 등이 줄지어 켜진 골목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오토바이 헤드라이트가 젖은 도로 위를 비췄다. 그가 엎드렸던 풀밭이 스쳐 지나갔다.


이설은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대신해 무언가를 바로잡는 사람.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합법도 아닌 일들. 누군가에겐 협박이고 누군가에겐 정의였다. 그것이 이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 없음]

열자마자 화면에 짧은 문장이 보였다.


-오늘 밤 자정, 다리.


이설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보단 불법적으로 닿아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니까.


오토바이가 빗길을 달려 멈춘 곳은 낡고 허름한 빌라였다. 빛바랜 외벽과 낡은 새시가 당장 허물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현수막이 눈길이 닿는 여러 곳에 붙어 있는 곳. 오래된 빌라는 그렇게 동네의 흉물처럼 놓여 있었다.


3층. 301호 고모와 함께 사는 집. 일주일에 한 번 고모는 집에 들른다. 이번 주는 조금 더 길었다. 사촌 동생이자 이모의 딸인 현아가 이번 주는 발작이 심해졌다고 했다.


이설은 집에 들어가는 길 문에서 301호 앞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깊게 숨을 내쉬며 그를 구석으로 밀었다. 술에 젖어 축 늘어진 사람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일주일째 이설은 자신의 집 앞에서 축 늘어진 남자를 보았다. 그리곤 어제 했었던 방식 그대로 집에 들어가 차가운 냉수를 한 사발 퍼왔다.


“일어나쇼”

이설의 목소리와 시원한 물줄기가 축 늘어져버린 남자의 정신을 깨웠다. 이설이 돌아서 집에 들어가자 물에 젖은 얼굴을 손바닥과 소매로 문지르며 남자가 눈을 떴다.


남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주변을 둘러봤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접은 색종이가 현관문에 붙어 있었다. 문에 붙여 있던 스티커까지 이제야 눈에 들었다. 분위기가 다른 301호.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 누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새벽. 집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열리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다시 시도하다가 결국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일주일째 반복되는 실수였다.


그의 이름은 백연. 일주일 전부터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아직도 지난번 살았던 301호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401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젖어 버린 몸을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고 집 앞 슈퍼에 갔다. 대형마트라고 쓰여 있는 동네의 작은 슈퍼. 카트에 종류대로 술을 골라 넣었다. 소주, 맥주, 위스키 그리고 마지막에 생수 한 병.


“집 잘못 찾는 윗집 아저씨.”

백연은 자신의 행적을 아는 듯한 여자를 바라봤다.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처음 보는 여자.

“아저씨 바로 윗집 사는 거 맞죠?”


이설은 매번 누워 있던 아저씨를 한눈에 알아본 것은 그가 담는 카트 안의 내용물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드시고 또 우리 집 앞에 누우실 거예요? 집에서 드시는 건 찬성. 근데 누울 거면 윗집 앞에 누우세요. 무의식적으로 ‘여기가 우리 집 같다’ 싶으면, 한 칸 더 올라가서 진짜 윗집으로 올라가시고요. 네?”


이설은 일주일째 보던 아저씨가 꽤나 무거워 몸집이 큰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는데. 키는 크지만 빼 적 마른 몸을 보았다.


“네.”


백연은 짧게 대답하고 계산대에 산 물건을 올려 두었다. 온갖 종류의 술이 백연에 손에 이끌려 줄지어 나왔다. 그러다 햇반과 김, 김치가 손에 걸렸다. 자신이 넣지 않은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이설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사람이 술만 먹고살아요. 밥도 먹어야지.”


이런저런 잔소리를 퍼붓던 아랫집 처녀. 그가 햇반과 김과 김치를 카트에 넣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설은 그의 손에서 밖으로 나와버린 햇반을 주섬주섬 그의 카트에 다시 넣어주었다. 눈을 찌푸리던 백연은 나머지 김과 김치도 다시 카트에 넣었다. 봉지를 집어 들자 여러 개의 술병이 부딪히는 청하 한 소리가 났다.


401호. 백연.

사실, 이곳은 그의 집이 아니었다.

죽은 동료의 집.


같은 경찰서, 함께 사건을 수사하던 팀원들이 모여 쉬던 공간이었다. 그중 한 명이 재개발이 되면 오를 거라고 사뒀던 집이었다. 경찰서와 가까웠던 텅 빈 공간은 우리의 아지트로 변했다. 서로를 이해하며 술잔을 부딪히고, 부족한 잠을 채우며 그들의 채취가 묻어나는 곳에 백연은 이사를 왔다.


갈 데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갈 곳이 아닌,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죽어버리고 나서 한두 달은 악몽이었다. 눈을 감으면 사건 현장이 떠오르고, 눈을 떠도 자신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그런데도 이 집에서는 이상하게 숨이 쉬어졌다. 잠도 잘 수 있었다. 그들의 냄새와 기억이 그나마 자신을 숨 쉬게 했다.


백연은 그렇게 죽지 못해 살아갔다. 그들의 목소리를 지우기 위해 먹었던 술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생각나서 술을 마셨다.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살겠다는 의지와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 딱히 먹을 이유도 없었다.


햇반, 김, 김치. 모든 것에 동료를 떠올리게 했다. 하필이면 이 음식이, 급하게 끼니를 때우던 우리에겐 주식 같은 메뉴였다. 살고자 채웠던 음식들을 내 손으로 사 들고 보니, 마음이 저렸다. 나 혼자 살고자 했구나 여태껏. 죽고자 먹었던 술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누워 잠이 들었다. 새벽, 문득 식탁 위가 눈에 들어왔다. 꺼내지도 못한 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꺼낼 수 없었다. 혼자만 살아버린 내가. 다시 혼자만 살겠다고 밥을 먹고 김을 먹고 김치를 먹으며 그렇게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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