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복수를 대신해주는
정수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눈썹을 타고 흘렀다. 차가워진 물방울은 속눈썹에 잠시 머물다 이내 볼을 타고 사라졌다. 곧이어 썩은 냄새가 가까워지더니 그 정체가 곧 이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무겁고 축축한 감촉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런 꼴은 처음은 아니다. 남들이 피하고 싶은, 더럽고 불쾌한 일들은 언제나 이설의 몫이었다. 그런데 지난밤, 받은 의뢰는 조금 달랐다. 낯선 종류의 해결 방법이었다.
“학창 시절, 학폭 가해자에게 진짜 사과를 받아내고 싶습니다.”
의뢰인의 말은 겉보기엔 여느 의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엔 흔한 분노도, 절망도 없었다. 구차한 이유도 감정의 잔여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설이 느낀 건, 그의 말이 가진 온도였다. ‘살려달라’는 절박함 보단 더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은 냉기.
이설은 그 일을 ‘재연’이라 이름 붙였다. 단순한 폭력의 되갚음이 아니었다. 그때의 공포와 수치 그리고 모멸을 가해자의 몸에 새겨주는 일. 피해자가 당했던 장면을 가해자의 기억 속으로 옮겨주는 일. 단순한 복수가 아닌, 더 이상 살아갈 힘조차 잃은 의뢰인의 삶에서, 기억을 덜어주는 일.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의 균형을 맞춰주는 일이었다.
처음은 그녀의 회사 구내식당이었다. 과거의 가해자는 이제 ‘팀장님’이라 불리고 있었다. 어쩌면 의뢰인이 가장 기다렸을 추락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젊잖은 미소와 반듯한 말투. 팀장님이라 부르는 이들을 살뜰히 챙기며,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는 듯한 눈과 입. 그 웃음 뒤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깔려 있었을까. 그녀에겐 과거란 오직 피해자의 몫으로 남았다. 기억은 짐이 되고, 행복한 미래만 자신 앞에 펼쳐졌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점심시간. 직원들이 가장 많이 모인 시간이었다. 긴장이 풀리고. 많은 시선이 모인 곳에 이설은 그녀를 기다렸다. 계산대를 지나 국물과 반찬을 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설은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박미연 씨.”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네?”
“이주고등학교 44회 졸업생 맞으시죠?”
“네 그런데… 무슨 일로.”
“기억 안 나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4월 20일 수요일 교내식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이상하죠. 너무 선명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데, 상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이설은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때를 재연하려고요.”
“네? 그게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설은 그녀가 들고 있는 식판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뜨거운 국물이 흘러냈고, 시뻘건 반찬이 그녀의 핑크색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를 덮쳤다.
짧은 비명이 터졌다. 그 소리가 식당의 공기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분주하게 식판을 부딪히던 소리도, 웃음 섞인 대화도, 하나씩 멈춰버렸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식당 한가운데 엉망이 된 옷을 바라보던 그녀가 소리 질렀다.
“10년 전, 사람 많은 교내식당에서 피해자에게 식판을 엎어버린 게 시작이었죠. 그 일로 당신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당신이 장난으로 엎어버린 식판인데.”
멱살을 잡으려는 그들의 일행이, 이설이 꺼낸 말에 순간 멈칫했다. 그리곤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 기억나죠? 당사자가 되니 기분이 다를 거예요. 엎었던 그날, 당신은 몰랐겠지만.”
그리곤 돌아서려는 이설이 그녀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근데, 이게 첫 번째예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로 그녀를 찾아갔다. 지난번 일은 어떻게 지워 버렸는지.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웃음과 장난, 쓸모없는 말들과 허세가 뒤섞이는 공간에서 그녀는 오늘도 중심에 있었다.
이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다가갔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대, 그녀의 놀란 동공과 이설의 눈이 맞주쳤다.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와 달리, 그녀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이설은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두 번째는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모카향이 코끝을 스쳤다. 이설은 잔을 기울여 향을 맡았다가, 그 안에 침을 뱉었다.
“먹던 거에 침 뱉는 거요.”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달아올랐다. 이설의 행동은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았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설은 가해자의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조차 헤아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피해자가 된 그녀는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뭐야, 당신 미쳤어?”
그녀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설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의 먹던 거에 침 뱉는 건 예의가 아니죠. 근데 당신은 그걸 장난이라 불렀잖아요. 철없다고 치부해 버리는 10년 전에.”
이설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혹시라도 이 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때 단 한 음절도 틀리지 않게, 준비해 온 문자를 또박또박 읊었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악을 썼다.
“무슨 말이야. 당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피해자의 기억처럼 말이다.
이설은 조용히 덧붙였다.
“그게 두 번째예요.”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자신에게 쏠린 수많은 시선이 보였다. 고통이 전가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설은 카페를 나섰다.
문이 닫히자 잔잔했던 공기가 폭발하듯 흔들렸다. 웅성거림이 쏟아졌다. 그녀의 회사 근처 카페. 누군가는 그녀를 알았고, 누군가는 단지 이야기를 옮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저 사람, 구내식당에서 그 일 있던 고 팀장 아냐?”
“설마, 진짜야? 뭐야, 식판 엎고, 침도 뱉고?”
그녀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오해야… 그게, 내가 한 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나 그녀의 말보다 빠르게 사람들의 입이 움직였다. 진실이 아니라, 기억이 퍼지고 있었다.
십 년 전의 피해자의 혼자만의 악몽이, 이제는 그녀의 이름을 타고 다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세 번째 날이었다.
박미연의 집 앞.
고급 아파트 단지의 자동문이 열릴 때까지, 이설은 벤치에 앉아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고통이 이런 날씨를 닮았다면, 그건 아마도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일 것이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박미연 씨.”
세 번째였다. 그녀가 놀랄 눈으로 돌아보았다. 이설이 다가가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당신 신고할 거야! 이거 불법이야!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어렸을 적 기억? 그런 게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그럼. 기억을 떠올릴 때까지 도와드려야죠.”
이설은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곤 발로 힘차게 밟고 종이를 발바닥으로 비볐다. 종이의 마찰음이 건조하게 울렸다.
“당신이 그랬죠. 공책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던 거. 딱 10년 전 여름이었어요.”
그녀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친-!”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청소 중인 양동이를 끌고 와 이설의 머리 위로 부었다. 구정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냄새가 코 끝에 스며들었다. 치욕과 분노, 그리고 오래된 고통이 뒤섞인 냄새였다.
이설은 그대로 서 있었다. 움직이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다 알아. 다 안다고.”
박미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두렵고 지친 그녀의 목소리가 겁에 질려서 떨고 있었다. 잃을게 많은 사람일수록, 쉽게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사과로 끝낼 거야. 당신이 뭔데?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당신 같은 사람, 사과는 이렇게 받아주면 돼.”
그녀는 주변의 쓰레기통을 가지고 왔다. 오물이 섞인 찌꺼기들이 이설의 어깨와 얼굴을 덮쳤다. 냄새와 더러움이 섞여 피부에 달라붙었다.
이설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십 년간의 피해자의 고통을 한꺼번에 받게 된 그녀는 감당할 수 없었겠지. 한 번도 자기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던 일들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최고급 아파트 단지.
이런 사람들은 이상하게 돈도 많고, 운도 좋다. 그리고 한결같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갚아주는 쾌감. 처음엔 분명 그런 게 있었다. 그런데 항상 결말은 이렇다. 의뢰자에겐 사과와 위로를 얻고, 이설은 그 자리에 남았다. 남의 분노를 대신 씻어내다 결국 그 오물 속에 자신이 잠기는 일. 깔끔하게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지저분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더러웠다.
이설은 젖은 머리를 쓸어내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받을걸.”
그때, 갈색 구두가 한 켤레가 눈앞에 멈췄다. 광이 번진 구두 끝이 이설의 오물에 젖어버린 신발에 닿았다.
“괜찮으세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굵고 낮은 목소리의 부드러운 시선이 이었다. 이설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깐, 인상 깊었어요.”
이설은 짧게 웃었다. 그리곤 그가 건넨 손수건을 받아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그의 시선과 따뜻한 천의 감촉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이대로 집에 가긴 곤란하죠? 괜찮다면 제 집에서 잠깐 씻고 가요.”
한치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말투, 단정한 옷차림에서 흘러나온 그의 호의는 이설에게 오히려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이런 꼴이 아니었다면, 더 그랬을 것이다. 지금처럼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니, 그의 불편함 따윈 모른 척하고 싶었다.
멀리, 자신의 오토바이가 보였다. 페인트가 벗겨진 탱크 옆면엔 분노의 발길질이 닿은 자국이 선명했다. 타고 갈 수도,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상태. 아무리 이설이라도 무작정 집으로 돌아가긴 어려웠다. 더구나 머릿속엔 여전히 모욕적인 말들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었다.
“그래도 돼요…? 저한테 원하시는 거라도 있나요?”
“아뇨. 그런 건 없어요. 단지 상의드릴 일이 조금 있어서요.”
이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증오의 대상이었던 고급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묘하게 가벼웠다. 낯선 남자의 호의는 불안했지만, 그가 건넨 말과 온기는 왠지 오랜만에 사람 냄새처럼 느껴졌다.
아파트 고층에서 바라본 세상은 동네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그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백만 개의 창과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 그 사이에서 잠깐의 눈길이 묘한 착각을 만들었다.
욕실 호텔처럼 깔끔했다. 이곳에 서있는 난, 습하고 꿉꿉한 냄새를 풍기는 낡은 빌라였다. 뜨거운 물이 몸을 적시며 향긋한 비누 향이 몸의 구석구석 달라붙은 냄새들을 씻겨 버렸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그 중간에서 화해 아닌, 용서도 아닌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는 역할에 빠져 있던 시간들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여기요.”
문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아입을 옷, 문 앞에 둘게요. 제일 작은 사이즈는 이것뿐이라, 우선 입고 나오세요.”
이설은 말끔히 씻은 얼굴로 남자가 건넨 옷을 입었다. 정갈한 거실이 눈에 보였다. 빛이 고르게 번진 공간, 반듯한 가구, 그리고 고용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
“앉아요. 따뜻한 코코아예요. 몸 좀 녹여요.”
남자의 조용하고 나긋한 말투는 이곳과 어울렸다.
“한 시간쯤 지나면 입던 옷이 세탁되어 올 거예요. 불편하겠지만 잠시 쉬어요.”
이렇게까지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따뜻한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뒤,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질 때 물었다.
“아까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셨죠?”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김지혁입니다. 변호사예요.”
이설도 손을 내밀며 짧게 웃었다.
“이설입니다. 뭐, 보시다시피 이런 일 하고요.”
“이런 일이란 게… 누군가의 복수를 대신해주는 일인가요?”
“네 뭐, 그런 셈이죠.”
“저도 그런 일 해요. 대신 합법적인 절차로요.”
그의 배려는 행동 아닌 눈과 입에서도 묻어 났다.
“전 반대예요. 법은 느리잖아요. 사람은 빠르지만.”
지혁이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의뢰인의 싸움을 대신 정리해 주는군요.”
“네, 저만의 방식으로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따뜻한 코코아의 김이 둘 사이의 공기를 천천히 채웠다. 지혁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복수는 불처럼 뜨겁고, 내 복수는 얼음처럼 차갑죠. 감성적인 이야기들도 차갑게 판단해야 할 때, 당신의 불같은 복수가 참 부럽게 느껴져요.”
이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당신도 불같이 화내면 되지 않나요?”
그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긋하게 말을 했다.
“불같은 분노는 법의 편이 아니에요. 법은 감정이 아니라 증거와 절차가 중요하니까. 그래서 한때는 변호사가 되려 했죠. 법으로 심판받게 하려고. 그런데 법 안에서 손쓸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더군요. 이설 씨,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내 복수를… 당신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