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의 연기
원산시 뉴스입니다.
최근 한 달 사이 실종 신고 건수가 50건으로, 평균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경찰은 실종자 대부분이 퇴근 혹은 하교 시간대인 저녁 여섯 시 이후에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며, 시민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특히 인적이 드문 주택가나-
라디오의 목소리가 끊겼다. 짧은 ‘딸깍’ 소리와 함께, 차 안이 고요해졌다. 백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잠깐 노래만 들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라디오만 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건 사람의 이름과 숫자 그리고 사라진 시간의 목록이었다.
백연은 잠시 핸들 위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았다. 유리창 너머로 희뿌연 안개가 번졌고, 매캐한 냄새가 차 안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창문을 내리자 바람 대신 연기가 들어왔다.
쇼핑몰을 건설 중인 공사장이었다. 불길이 휩싸여 공사장 전체를 덮었다. 거대한 화염이 철골을 삼키며 무너지는 쇳소리와 타오르는 불꽃이 하늘을 높게 치솟았다. 소방차가 불길을 잡으려 물을 쏟아냈지만, 검은 연기는 공기를 삼키며 하늘로 번져갔다. 백연은 그 안에, 그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있었다. 진우, 성재, 도윤, 태성. 그들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떠올랐다. 그러나 입 밖으로 부르기도 전에, 이미 불길이 그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백연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팀을 지켜야 할 그가, 지금은 팀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야, 성재야, 도윤아, 태성아!!!!”
목이 찢어질 듯 외쳤다. 이름이 허공에 닿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온통 붉은색의 검은 연기가 그의 앞을 가렸다. 불길을 그들의 울음 같았고, 쇳소리는 그들의 비명이었다.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잡을 마지막 기회였다. 다섯 달 동안의 잠복과 추적 끝에 얻은 한 줄짜리 첩보. 불법 시술이 진행되고 조직의 보스가 직접 나타난다는 정보가 그들을 오늘 다 모이게 했다. 사라지는 실종자들을 멈추게 할 단 한 번의 작전. 몸을 욱여넣을 공간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이들이 오늘 완전체로 모였다. 이른 새벽 출근길에 진우가 말했었다.
“오늘 끝나면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요.”
그 말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또다시 금속이 터지고, 유리가 깨졌다. 화학물질들이 가득하던 공사장이었다. 폭발음이 이어지며 바닥이 흔들렸다. 백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는 찰나, 소방복을 입은 사내들이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녹슨 쇳내가 코를 찔렀다. 시야가 붉게 물들어가는 가운데, 오직 그 안에 있는 팀원들의 얼굴이 선명했다. 그들의 단단한 손길에, 그는 팀원들을 불길 속에 남긴 채, 홀로 살아남았다.
살아도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숨을 쉬고, 음식을 삼키는 일조차 죄처럼 느껴졌다. 백연의 시간은 그날의 불길 앞에서 멈춰 있었다. 몸은 여전히 움직였지만, 마음은 잿더미 속에 붙잡여 있었다. 이제 그는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 죽지 못한 자였다.
비밀리에 만들어진 특수수사팀. 그들이 드나들던 곳은 경찰본부 근처, 태성이 혼자 살던 빌라였다. 그 집은 우리의 숙소이자 아지트였다. 이제 그곳은 사람의 냄새가 빠져나간 빈 공간이 되어 있었다. 거실과 방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불 사이로 몸을 뺐다가 다시 누웠던 자국, 덩그러니 놓여 있는 머그잔, 매번 잃어버리던 펜이 창틀 옆에 끼어 있었다. 비록 땀 냄새와 먼지뿐이었지만, 그 냄새만은 그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3개월 전, 미처 닫지 못한 찬장과 개지 못한 이불마저 그대로였다.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홀로 남겨진 채, 머릿속에서만 되풀이되던 그날의 기억을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목소리와 웃음, 그들이 생각나는 조그마한 추억까지 치워지자 더욱 괴로웠다. 그 무렵 깨달았다. 기억을 붙잡는 일만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일주일 전, 나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비밀번호 여섯 자리를 누를 때 손끝이 떨렸다. 문은 여전히 같은 소리로 열렸고,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기억이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방 안의 적막이 낯선 평온으로 다가왔다. 이불 위의 손을 대자, 그날 아침의 온도가 손 끝에 닿았다.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과 함께하는 공기에 오랜만에 그날 이후 조금은 잠들 수 있었다. 삶이 점점, 백연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던 때였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연아, 잘 있니?”
익숙한 목소리였다. 부장님이었다.
“네 뭐. 그렇죠.”
“언제든 복직해. 네가 원하면 언제든.”
“사표 수리 안 하셨어요? 저 안 해요. 아시잖아요.”
“그리고… 미안하다.”
“부장님이 미안할게 뭐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가늘었다. 진심이 묻어나는 사과일수록, 말은 늘 이렇게 작아진다. 백연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역시 팀원들은 누구보다 아꼈던 사람이었다. 책임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방 안은 묘하게 텅 비어 있었다. 전화기의 진동이 멈췄지만, 손끝은 계속 떨렸다. 그 떨림은, 오래된 슬픔이 다시 깨어나는 신호 같았다.
그때 누군가 보낸 메시지 알림이 떴다. “CBC뉴스-공사장 폭발사고 관련.” 무심코 눌러 버린 화면 속에서 낯익은 풍경과 단어들이 이어졌다.
“CBC뉴스입니다.
최근 원산시 한 공사장에서 폭발물 취급 부주의로 인한 화재 사고가 발생해, 잠복근무 중이던 김 모 씨를 비롯한 경찰관 네 명이 숨졌습니다. 경찰은 사망한 이들이 특수수사팀 소속으로, 내부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압박 수사가 시작되자, 이들이 증거 인멸을 시도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의 또렷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느새 숨이 막혔다.
[부주의, 비리 연루 의혹]
그 짧은 문장이, 우리의 삶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심판처럼 느껴졌다. 백연의 가슴이 천천히 조여왔다. 그 문장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대신할 낙인이었다. 말이 없는 죽은 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죄인으로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언어였다.
백연은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 않았다. 방 안의 공기가 굳어 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백연의 숨소리만 거칠게 적막을 밀어냈다. 팀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불길 속에서 사라진 이름이, 이제는 기사 속 문장으로 남아 있었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 각처에서 선발된 고급 인력들이, 이제는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백연은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었다. 그러나 죽어 버릴 이유도 없었다. 살아 있는 고통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잿더미가 된 진실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되찾는 것. 오직 그것이 백연이 홀로 살아 있는 이유였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문쪽 수납장에 나란히 세워진 술병들이 서로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백연은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냉기가 얼굴에 닿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마음 한편이 서서히 식어갔다.
초록색 술병을 모두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뚜껑을 하나씩 따서 전부 싱크대에 부었다. 투명한 액체가 쏟아지고, 알코올 냄새가 공기 속으로 빠르게 번졌다. 그 냄새는 오래된 슬픔처럼 방 안을 채웠다. 쏟아버린 병들을 봉투에 담아 묶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곤 냉장고에 있던 김과 김치를 꺼내고, 햇반을 데워 밥을 먹었다. 배고파서 먹는 것은 아니었다. 숟가락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한 숟가락씩 입으로 밀어 넣었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몇 달 만에, 물과 술이 아닌 음식이 몸에 흡수되었다. 삼킬 때마다 목이 뜨거웠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몸속 깊은 곳에서 미약하게 되살아났다. 식탁 위에 놓인 빈 그릇을 치운 뒤, 백연은 방과 거실을 뒤덮은 동료들의 흔적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벗어놓은 운동복, 널브러진 수건, 그리고 접히지 않는 이불 한 채가 방 안의 공기처럼 남아 있었다.
조심스럽게 이불을 접고, 수건을 개어 올려두었다. 하나씩 정리할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들의 냄새가 묻은 물건과 흔적을 걷어내자, 마치 그들을 한 번 더 떠나보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정리해야 했다. 남겨진 흔적이 자신을 살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붙들어두고 있었다. 그들의 흔적이 백연을 살게 한다고 믿던 지난날들이 눈물 나게 아프게 느껴졌다.
텅 비어버린 방에 앉아 그들을 생각하며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잿더미가 되었던 날 이후, 장례식의 모든 일정 속에서도 백연은 이렇게 한탄스럽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분노로 다음엔 멍한 공허로, 그들을 진심으로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 울음이 끝나자 방 안에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정적이 조금은 따뜻했다. 마치 누군가 다녀간 자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