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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Nov 21. 2020

AUNE - 재스퍼(Jasper)

가슴이 웅장해진다

  어느 브랜드가 몇 년 동안 꾸준히 내놓는 제품들마다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면 그 브랜드는 믿을 만한 브랜드라고 생각해도 될 겁니다. AUNE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저 브랜드명을 어떻게 읽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무슨 포터블 앰프에 진공관을 달아 클래스 A 방식으로 제작하나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저도 제품도 눈에 익고 AUNE 하면 적어도 그 가격대 값어치는 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AUNE에서 이어폰을 만들었답니다. 재스퍼라고 하는데 셰에 MD인 내공 님이 가격을 듣고 놀랐다며, 한번 들어보라며 자신있게 보내 주셨습니다. 평소와 다른 자신감에 제품이 많이 궁금해졌습니다. 얼마나 괜찮길래 그렇게 강추하셨는지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합지요. 다른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외관



  재스퍼의 공식 판매가는 44만 9천 원입니다. 가격대로 본다면 보급기에 만족하지 못한 분들이 고급기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선택할 만한 가격대라 하겠습니다. 사실 포터블 분야가 워낙 고일 대로 고인 취미인지라 이런 이어폰 리뷰를 찾아 보실 분들이라면 아마도 이어폰 가격에 대한 경제 관념이 일반인과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 괜찮아 보이는데 50만 원도 안 해?’라고 생각하시는, 바로 여러분 말입니다. 


  에어팟 프로 덕분에 대중들의 이어폰 가격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해도 여전히 30만 원 이상의, 그것도 유선 이어폰은 고가에 속합니다. 따라서 여러모로 꼼꼼하게 살펴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재스퍼는 동 가격대 제품들과 함께 놓고 비교했을 때 외관으로는 뒤쳐지지 않습니다. 이어폰 유닛 전체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 같은데, 굉장히 견고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이음새 부분을 봐도 유격이나 단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일 일이 없을 만큼 견고합니다. 


  유닛의 사이즈는 제법 작은 편입니다. 그리고 어느 하나 각진 곳 없이 둥글궁글합니다. 덕분에 착용감이 굉장히 편합니다. 아마 어느 분이 착용하더라도 착용감에 크게 불만을 표할 분은 없을 듯합니다. 전반적으로 매끈한 페이스플레이트의 가장자리에 ㄱ자 모양으로 그물 무늬를 새겨 두었는데 브랜드의 배경 때문인지 저는 중국풍의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어폰 유닛을 손으로 잡고 또 착용하는 과정에서 이 무늬가 생각보다 그립감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조금은 미끄러울 수 있는 유닛을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제품을 귀에 정착용시키기 위해 조절할 때에도 양 검지 끝이 무늬에 닿아서 보다 매만지기 수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MMCX 방식의 탈착형 케이블을 빼고 끼울 때에도 은근히 이 무늬가 자기 몫을 단단히 합니다. 



  제품의 구성품으로는 재스퍼 이어폰과 케이블, 이어팁, 청소 툴, 그리고 하드 타입의 원형 가죽 케이스로 간단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도 채워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케이스의 내, 외부 재질이 참 마음에 듭니다. 속은 스웨이드 재질로 스크레치를 방지했고 겉은 가죽으로 마감했는데 만져보면 표면의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단, 이대로만 사용하기에는 재스퍼의 깨끗한 스틸 하우징이 너무 스크레치에 취약해 보입니다. 스틸 하우징은 원래 자연스럽게 긁히면서 사용하는 멋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아니라면 별도의 유닛 싸개를 구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예 케이스 내부에 좌우 유닛을 나누어 보관할 수 있도록 파티션을 만들어 두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스펙 


  재스퍼는 1개의 다이내믹 드라이버(DD)를 사용한 가장 기본적인 구조의 이어폰입니다. 이어폰의 드라이버 구조도 트랜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DD가 대다수였던 시절에서 BA 드라이버가 점차 세력을 넓혔고, 이후 다중 BA가 유행하면서 이어폰 유닛 안에 누가 더 많은 BA 드라이버를 구겨 넣는지 경쟁하는 듯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보다 발전된 기술의 사용이라는 명목 아래 EST가 추가되면서 하이브리드에 이어 트라이브리드 이어폰들이 고가 라인업에 자리 잡았죠.  


  어떤 드라이버를 사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 이미 다들 아실 겁니다. 드라이버의 종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구조에 맞는 튜닝 실력, 그로 인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소리입니다. 여전히 이어폰 시장에는 1DD 구조로 매우 좋은 평을 받는 제품이 많습니다. 제가 최근에 들었던 이어폰 중 그에 해당하는 것은 파이널의 A8000입니다. 당시 리뷰에서 밝혔듯 저는 A8000의 소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드라이버 구조라든지 스틸 하우징의 사용 등 재스퍼와 파이널 이어폰들은 공통점이 제법 있네요. 



  AUNE는 재스퍼에 사용된 DD에 ‘MG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Multi Gradation Diaphragm의 약자라고 하는데요. 뜻풀이 그대로 이해한다면 복수의 소재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결합시킨 다이어프램이라 하겠습니다. AUNE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정확히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만 제품 상세 페이지의 그림을 보면 얇은 필름 소재의 다이어프램 가장자리에 금속 테가 둘러쳐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문제점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것이 분할 진동입니다.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빠르게 진동할수록 다이어프램의 중앙 부분과 가장자리 부분이 서로 다르게 진동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밀어줄 때 밀고 당길 때 당겨져야 하는데 엇박자가 나 버리니 다이어프램이 출렁거리게 되고, 이는 결국 부정확한 소리로 이어지는 것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제조사들이 다양한 소재를 사용합니다. 얇고 가볍지만 단단한 다이어프램을 만들기 위해서요. 대표적으로 베릴륨 드라이버가 있지요. AUNE에서는 분할 진동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소재 대신 복수의 소재를 적절히 혼합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아마도 금속 테는 댐핑 향상을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밖에 마그넷 부분 역시 ‘울트라 리니어 마그넷 시스템’이라 하여 무언가 시도를 한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 역시 설명이 너무나 불친절합니다. 그림으로 추측하자면 마그넷에 홈을 파 두고 그 공간에 코일를 배치시켜 안과 밖에서 동일하게 자력을 가하는 것을 지칭하는 듯합니다만, 자신있게 무언가 개발해서 이름을 붙였으면 그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지막으로 유닛 내부, 소리가 울리는 챔버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역시나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런 불친절한 친구 같으니라고.. 궁금하다고 대여 제품을 뜯어볼 순 없으니 그저 외관과 올려진 내부 사진만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시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재스퍼의 유닛은 작은 축에 속합니다. 두께도 얇습니다. 이 안에 드라이버가 배치되면 실상 앞뒤 공간 여유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은 공간이라면 노즐 부분 정도겠죠. 경험상 이런 녀석들 중 울림 표현을 강조하는 식의 튜닝을 적용하는 이어폰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소리 파트에서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소리 



  이 녀석은 1DD 이어폰입니다. 그리고 제품 설명에서도 ‘리니어’라는 부분을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음악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제품의 설명, 그로 인해 제가 재스퍼를 듣기 전 예상했던 소리와 실제 재스퍼가 들려주는 소리 사이의 갭이 좀 큽니다. 미리 말씀 드리자면 예상 밖의 소리라는 것이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는 금물, 여기까지만 읽고 나가시면 안 돼요. 


  재스퍼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풍만한 양감의 저역입니다. 저역만 놓고 보자면 글래머러스한 여성이 떠오릅니다. 양감은 많은 편이지만 타격감이 강한 편은 아니고 음의 끝이 부드럽게 울려 퍼집니다. 일단 저역이 무대를 가득 채워주니 전반적인 토널 밸런스는 살짝 무거운 쪽에 속합니다. 그런데 중음역대 이상의 표현력은 이와 다릅니다.  



  가령 베토벤 트리플 콘체르토를 들었을 때 곡의 초반부 오케스트라는 보다 묵직하게, 그리고 보다 가득 무대를 채워줍니다. 마치 관객석의 앞열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는 듯한 거리감입니다. 이후 등장하는 첼로 파트는 현의 질감보다는 중후한 울림이 조금은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바이올린 파트를 들으니 제가 왜 중고역이 또렷하게 들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평소 제가 들었던 바이올린 파트보다 톤이 살짝 높게, 그리고 조금은 도드라집니다. 아마도 저역의 양감에 묻히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약간의 피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아노까지 등장하며 합주가 시작되면 재스퍼가 형성하는 무대가 각 악기들의 소리로 가득 찹니다. 좋게 말하자면 웅장함, 물밀듯이 쏟아지는 소리에 몸이 푹 잠기는 듯한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스퍼를 듣다가 바로 다른 리시버로 바꾸어 들으면 뭔가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연주가 다소 과장되게 포장되어 들립니다. 이 앨범이 원래 이렇게 가까이에서, 이렇게 웅장하게 들렸었나 따져보니 제 기준에서는 그렇진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생각하는 재스퍼는 “음악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이어폰이라기보다는 음악을 보다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도록 표현하는 개성이 뚜렷한 이어폰에 가깝습니다. 



  이번에는 또다른 삼중주를 들어봅니다. 칙 코리아,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브라이언 블래이드의 <Trilogy2>에 수록된 'Crepuscule With Nellie’라는 라이브 연주입니다. 개인적으로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밸런스가 굉장히 잘 잡힌 레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악기 소리의 정위감뿐 아니라 악기별 질감도 매우 정밀하게 표현됩니다. 등장하는 악기의 수가 줄어든 만큼 앞의 곡보다 디테일한 표현력을 살펴보기에는 이 곡이 더욱 알맞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평소보다 연주자와의 거리가 가깝습니다. 그리고 세 악기 중 상대적으로 피아노의 존재감이 살짝 줄어듭니다. 베이스의 묵직한 울림, 드럼 심벌의 시원한 찰랑거림에 비해 피아노 소리의 울림이 그리 멀리 이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저역과 고역의 강조로 인해 라이브 앨범이 들려주는 현장감은 보다 잘 살아납니다. 재스퍼는 어떠한 곡들 듣든지 음악 자체를 청자 가까이에서 재생해주는 능력은 발군인 듯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재스퍼는 장르를 타는 편입니다. 사실 장르를 탄다기보다는 성향을 탄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얼마 전 카일리 미노그의 신보가 나왔습니다. 앨범명이 <DISCO>입니다. 앨범명처럼 전통 디스코 리듬의 곡들이 가득 채워진 앨범입니다. 참고로 카일리 미노그는 1968년생입니다. 찾아보니 요즘 한창 핫했던 환불원정대에 참여해 여전한 실력을 뽐낸 엄정화보다 프로필상 한 살이 더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유튜브에서 이번 앨범을 찾아보면 세련미가 넘칩니다.  


  비트가 강조되는 곡에서 재스퍼의 부드러운 저역은 단단한 질감의 타격감을 가진 리시버에 비해선 딱 맞아 떨어지는 맛은 덜합니다. 하지만 재스퍼는 이 모든 것을 교묘한 음역대 튜닝으로 커버합니다. 우선 저역의 충분한 양감을 좋아하시는 분들, 재스퍼에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고요. 깨끗한 여성 보컬을 선호하시는 분들, 역시 재스퍼에 관심을 가지셔도 좋겠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정도의 저역 양감을 단단하게 뭉쳐서 들려줬다면 부담스럽고 피곤해서 듣기 꺼려졌을 듯합니다. 그리고 음선이 살짝 얇지만 청량하게 들리는 카일리 미노그의 보컬도 저역에 묻힌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음악에서 저음역대 재생되지 않는 파트에서는 오히려 중고역 성향의 이어폰이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결론


  AUNE는 사운드 튜닝에 있어선 이미 노선을 명확하게 잡은 몇 안 되는 차이파이 브랜드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제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음악과 AUNE의 음악이 조금 달랐지만 이 가격대의 제품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성능과 개성을 모두 잡았다는 점은 앞으로 AUNE가 내놓을 이어폰(또는 헤드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리뷰를 진행하면서 저는 주로 요즘 사용하는  린(LINN) 기기에 물려 들었는데요. 리뷰를 거의 마무리할 즈음에 코드 제품에 물려 들었더니 린 기기보다는 코드와의 궁합이 더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재스퍼의 저역 양감이 많다보니 깔끔한 성향의 기기와 매칭했을 때 서로 잘 보완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저는 재스퍼의 기본 케이블이 길이도 그렇고 부드러운 재질도 그렇고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소리만 놓고 봤을 때에는 저역을 조금 타이트하게 잡아주는 케이블을 물려주는 것도 고려할 만하겠습니다. 그 정도 투자는 해줄 가치가 있는 이어폰입니다. 


  이 정도면 내공 님이 이 가격대에서 적수가 없을 만한 이어폰이라고 극찬을 한 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만, 완전히 맞습니다!라고 말하면 내공 님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실 듯해서 조금은 박하게 대하렵니다. AUNE에서 역시나 이번에도, 본인들의 이름에 걸맞는 괜찮은 가성비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이 글은 셰에라자드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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