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백디자인 드림시스템
디지털의 끝은 아날로그라는 것을 DSD를 통해 입증해 보여주겠다는 안드레아 코흐의 목표를 듣는 순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유려하며 따뜻한 사운드는 하이파이적 평가를 접어버리게 만들어버린다.
1비트 오디오라 부르는 DSD 분야에 있어서 거의 창시자, 개척자 심지어 조물주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엔지니어라면 단연 안드레아 코흐(Andreas Koch)이다. 컴퓨터 오디오에서 DSD 재생을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SACD 포맷 제정 및 DSD 녹음 편집 시스템인 Sonoma를 개발한 사람이니 말이다. 그리고 2008년 등장한 자신의 회사 플레이백 디자인스(Playback Designs, 이하 PD)의 창립작이자 자신의 첫 컨슈머 작품(!)인 MPS-5 SACD 플레이어/DAC는 세계 최초로 USB를 통해 DSD 재생을 현실화시킨 제품이었다. 오늘날 DSD 파일 재생의 첫 장을 열고 공식적인 포맷으로 대중화시킨 장본인으로, DSD 대중화에 발 벗고 나섰던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DSD 재생의 끝장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완성한 제품이 MPS-5 등장, 1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10년 만의 플래그십이자 안드레아 코흐의 역작 MPT-8 미디어 트랜스포트와 MPD-8 D/A 컨버터로 구성된 드림시스템(Dream System)이다.
PD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제품으로 기획된 드림 시스템은 올해 그 모습이 등장하기 이미 3년 전부터 준비된 제품이다. 2012년부터 DSD 재생을 널리 알려온 안드레아스는 애초부터 DSD64인 2.8MHz/1bit 가 아닌 DSD128의 5.6MHz/1bit의 재생을 자신의 레퍼런스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 점차 DSD 재생이 대중적인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하나씩 그의 아이디어를 풀어놓기 시작했고, DSD128를 기본으로 하되 DSD256까지 커버하는 DAC 회로에 대한 설계를 제품화하기 시작했다. 2016년 등장한 Sonoma 시스템은 2014년부터 설계해온 차세대 DSD DAC를 위한 새로운 DSD 필터링 알고리듬과 D/A 회로를 보여준 제품이었다. 애초에 그의 계획은 DSD256까지 재생이 가능한 새로운 레퍼런스 시스템을 내놓을지 아니면 기존 제품의 업그레이드와 새로운 개념의 회로를 구현한 대중적인 제품을 내놓을지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Sonoma 시스템부터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얻어진 기술들은 기존 플래그십인 MPS-5에 함께 공유가 되었다. MPS-5 리미티트 에디션이라 불리던 MPS-5의 업그레이드 버전과 MPS-5 유저들을 상대로 제공한 MPS-5 업그레이드 서비스는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 새로운 DSD 필터 알고리듬과 DSD256 재생 그리고 새로운 클럭 시스템이 탑재되며 MPS-5의 마지막 에너지까지 모두 불태워내는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새로운 레퍼런스 모델인 드림 시스템의 탄생을 위한 중간 과정이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설계된 모든 것들이 실제 제품으로 시장에서 결과물로써 직접 평가를 받는 과정이었고, 많은 호평 속에 그의 아이디어는 실제 레퍼런스 시스템의 완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 지난 3년의 시간은 PD의 궁극의 플래그십의 개발로 이어지며 올해 3월, MPT-8/MPD-8의 드림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지난해 말쯤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의 공급에 약간의 지연이 있었고, 마침 올해가 만으로 10주년이 되는 해가 되면서 10주년 기념작으로 드림 시스템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먼저 드림 시스템의 중핵이 되는 컨버터부터 살펴보자. 새 D/A 컨버터가 전작인 MPS/MPD-5와 크게 다른 점은 딱 3가지이다. 전원부, 새로운 D/A 회로, 아날로그 출력(아날로그 프리앰프).
제일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역시 D/A 컨버터 회로. 잘 알려진 대로, PD에서는 기존 반도체 업체의 DAC 칩이 아니라 안드레아 본인이 직접 1비트 방식의 DAC 회로를 내장시킨 FPGA라는 프로세서 칩을 사용한다. FPGA는 MPD-8의 DAC 칩은 필드 프로그래머블 게이트 어레이(Field Programmable Gate Array)라는 용어처럼, 일련의 디지털 로직 회로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구동 방식의 하드웨어 칩셋이다. 대량 생산보다는 소량 특정 분야에 딱 맞는 반도체를 직접 설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이다. 안드레아는 MPS-5 때부터 자신의 DSD 알고리듬이 구현된 커스텀 DAC 회로를 프로그램화시켜 동작하도록 이 FPGA 칩을 DAC로 사용해왔다. 이미 MPS-5에서부터 사용해왔고, 최근에 MPS-5의 리미티드 에디션 업그레이드 서비스까지 이루어진 바 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MPD-8이 전작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변화가 있다. 바로 새로운 알고리듬의 DSD 필터와 D/A 변환 회로가 핵심이다. MPD-8의 FPGA는 전작에 비해 엄청난 프로세싱 능력이 배가된 칩으로 스마트폰으로 치면 갤럭시S 에서 갤럭시 S9 정도의 프로세서로 진화한 것과 같은 프로세서의 처리 능력 차이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내부 디지털 로직 회로의 추가가 단순히 하드웨어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이에 걸맞게 새로운 알고리듬의 적용으로 내부 연산과 데이터 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무려 90 MHz라는 엄청난 샘플레이트의 오디오 데이터로 오디오 신호 처리와 아날로그 변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확한 프로세싱 알고리듬과 세부 내역은 비공개로 되어 있지만,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내부 오디오 데이터는 90MHz/1bit 수준으로 연산 처리된다고 한다. 게다가 이 모든 신호 처리의 결과는 좌우 채널이 각각 다른 프로세서 칩으로 각각 나누어 처리되고, 이 처리 결과물은 다시 +와 -의 아날로그 신호로 출력되는 밸런스드 신호와 싱글 엔드의 신호가 출력되어 최종적으로 6개의 신호 출력이 이어진다.
이후의 아날로그 출력 회로 또한 DAC에 맞춰 완벽한 더블 디퍼런셜 구성의 6개의 출력단 회로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출력 뒤에는 다시 최종 아날로그 프리앰프에 해당하는 볼륨 컨트롤과 게인 및 출력 버퍼 회로가 따로 붙는다. 이 과정 모두 채널당 3개씩 총 6채널분의 아날로그가 화려하게 수를 놓는다. 특히 이번 MPD-8의 아날로그 회로에는 IPS-3 인티 앰프의 앰프 회로를 설계한 독일 출신의 엔지니어 버트 제락(Burt Gerach)가 안드레아 코흐와 함께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쏟아부은 프리앰프 회로를 설계해 넣었다. 덕분에 MPD-8은 완벽한 아날로그 프리앰프 기능을 제공하는데, 이 MPS-5에 없던 볼륨 컨트롤이 그 결과물이다. 100% 아날로그 회로로 동작하는 MPD-8의 볼륨 컨트롤은 완벽한 풀 밸런스드 방식으로 싱글엔드와 밸런스드 모두 순수한 아날로그 회로에 의한 볼륨 제어를 제공하며, 사용 편의를 위해 총 200개의 볼륨 스텝을 제공하고 있다. 넉넉하고 안정된 출력으로, 그 어떤 파워 앰프나 액티브 스피커와의 연결에도 대응할 수 있으며, 이 출력 회로는 수 천만 원 대의 하이엔드 퓨어 아날로그 프리앰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제작사의 주장이다.
전작과 달라진 또 하나의 차별점은 DSP 회로, DAC 회로 그리고 아날로그 회로 사이에는 전체 신호 경로마다 개별 갈바닉 아이솔레이션 회로가 장착되어 디지털과 아날로그 회로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차폐 처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작인 MPS-5에는 그러한 차폐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디지털 노이즈가 아날로그 영역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미세한 곳까지 모두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차폐 처리는 신호 경로의 차폐만 구현된 것이 아니다. 전원부에서부터 최종 출력에 이르는 모든 분리와 차폐가 설계되어 있다. 즉, 분리의 시발점은 전원부부터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MPD-8의 전원부는 크게 6개의 트랜스포머로 구성된 6개의 전원 회로가 준비되어 있다. 이는 채널별, 디지털/아날로그의 영역별, 그리고 각 회로 요소요소마다 회로에 필요한 전압별 신호 분리가 모두 이루어져 있다. 크게는 좌와 채널의 분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분리, 그리고 DSP 프로세싱 유닛과 DAC 회로의 분리, 아날로그에서도 프리앰프와 버퍼 회로의 분리 등이 모두 개별 전원으로 나뉘어 있다. 실제로 6개의 전원부에서 각기 갈라져 나오는 전원의 개별 신호들은 무려 20개 가까운 개수의 전원으로 분리되어 개별 회로 각각에 가장 클린한 전기를 공급하게 된다. MPS-5에서는 디지털 회로에 스위칭 전원을, 아날로그 회로에 리니어 전원을 쓰는 2개 전원부 설계였던 것과 비교하면 MPD-8의 전원부는 100% 풀 리니어 방식에, 웬만한 파워 앰프에 준하는 넉넉한 용량과 하이엔드 부품들만으로 이뤄진 엄청난 전원부 설계를 시도했다. 양적, 질적 수준이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모든 전원부가 분리되어 전체 시스템의 성능이 이에 걸맞게 향상되었다.
이 외에도 MPD-8에는 언급할 만한 요소들이 더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클럭 시스템으로, 지난 MPS-5 리미티트 에디션에서 처음 도입한 MEMS 방식의 클럭 회로가 MPD-8에도 사용되었는데, 그 수준과 성능은 훨씬 뛰어난 회로로 일신되었다. 동작 주파수도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훨씬 정교하다. 게다가 이 클럭 회로는 단순히 DSP와 DAC 뿐만 아니라 회로 동작에 필요한 다른 디지털 회로의 메인 클럭으로 함께 사용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디스플레이 회로나 입출력 회로 및 다른 디지털 부가 회로들에 모두 이 클럭 하나로 동작되도록 한 것이다. 대개 디지털 기기에는 디스플레이, 마이컴, DSP, DAC 등의 여러 디지털 논리 회로들이 동작하게 되는데 이 회로들마다 고유의 클럭들이 함께 설치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제품 속에 적게는 2~3개에서 많게는 5~6개의 클럭들이 사용된다. 이는 오디오와는 상관없는 회로들로 디지털 노이즈를 발생시키는 주범으로, 전체 음질을 떨어뜨리는 신호의 오염원이 되어버리는 필요악 같은 존재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클럭이 최대한 적은 것이 좋은데, 안드레아 코흐는 전체 디지털 회로들을 세심히 선별하여 각 디지털 회로의 동작 주파수가 메인 DAC에 사용되는 클럭 주파수의 배수에 맞는 부품과 회로를 찾아냈다. 덕분에 MPD-8에는 여러 디지털 회로들이 동작하고 있지만, 정작 클럭은 DAC에 사용되는 메인 클럭 하나로 디스플레이나 기타 회로들이 연동되도록 하는 묘수를 발휘하여, 음질과는 상관없는 디지털 회로의 노이즈 발생 및 오염을 없애버렸다. 덕분에 시스템의 아날로그적인 순도는 비약적으로 올라갔고, 이는 뒤에서 언급할 아날로그적 음질에 큰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미디어 트랜스포트인 MPT-8은 과거 MPS-5가 단순히 SACD/CD 플레이어였던 것과 달리 현존하는 모든 미디어들을 재생하는 기능을 갖추었다. 안드레아 코흐가 설계 초기부터 오디오파일들이 원하는 미디어 포맷에 대한 많은 내용을 받아들였고, 특히 DSD를 비롯한 최신예 포맷에 대한 대응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SACD/CD 트랜스포트를 시작으로 네트워크 스트리밍 보드 도입을 통해 Roon Ready를 비롯하여 DLNA/UPnP, Tidal 및 Qobuz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 지원 등이 모두 탑재되었다. 게다가 디스크 플레이어와 스트리밍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Sonoma 시리즈에서 처음 내놓았던 PD의 뮤직 서버인 시라(Syrah)까지 MPT-8에 탑재시켰다. 게다가 시라에 한 가지 개선 사항을 더 추가했는데, 바로 Roon Core 탑재이다. 기존의 Roon 사용자들의 경우, Roon을 즐기려면 Roon Ready 플레이어나 DAC와는 별도로 Roon 서비스를 제공하는 Roon 서버인 Roon Core를 구입하거나 NAS로 Roon Core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MPT-8의 사용자라면, 제품 구입 시 Roon Core를 주문하면 시라에 Roon Core가 설치되어 MPT-8이 Roon Core 이자 Roon Ready 스트리밍 플레이어로 동작하도록 완성되었다. 특히 이 Roon Core는 Roon에서 판매하는 누클리어스(Nucleus) 상위 모델과 동일한 인텔의 NUC가 그대로 탑재되었다.
Roon의 누클리어스 보다 시라의 Roon Core가 더 좋은 점은 같은 하드웨어지만, 전원부가 스위칭 방식의 어댑터를 쓴 누클리어스와 달리 MPT-8의 Roon Core는 자체 설계한 100% 리니어 방식의 자체 전원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Roon Core의 전원부는 SACD/CD 트랜스포트 및 스트리밍 회로와는 완전 분리/격리된 Roon Core 전용 리니어 전원부로 일체 다른 미디어 재생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뿐더러, 다른 디지털 파일 재생 시 Roon Core가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완벽한 갈바닉 아이솔레이션 차폐 처리가 되어 있다. 한 마디로 가격에 걸맞는 최고급 사양의 Roon Core가 MPT-8에 제공되는 셈이다. MPT-8의 기본 사양은 DLNA/UPnP 서버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구입 시 업체에 요청을 해야 Roon Core 사양의 서버 셋업이 제공되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SACD/CD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은 일본 데논/마란츠의 메커니즘이 새롭게 도입되었다. MPS-5에서 썼던 에소테릭의 메커니즘은 단종된 상황이라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몇몇 업체의 메커니즘을 테스트해 본 뒤 특별히 엄선해서 고른 결과물이다. 특히 기본 메커니즘에 몇 가지 트위킹을 가해 자체 사양으로 맞춘 메커니즘이 최종 탑재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다소 난항이 있었고 이를 위한 개선과 새로운 프로그래밍 작업에 시간이 소요되어 제품 발매가 다소 지연되어 올해 MPT-8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제품의 완성도나 신뢰도가 높아진 결과물이 MPT-8의 SACD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인 셈이다.
스트리밍 보드 또한 최신예 포맷들에 대응하도록 제작된 네트워크 오디오 재생 전용 보드로 이미 미국의 댄 다고스티노의 미디어 서버/플레이어에 탑재된 솔루션과 동일한 하드웨어를 도입했다. 물론 기본 사양은 같지만, 최종 미디어 재생은 PD에서 자체 제작한 디지털 출력 보드와 결합, 여기서도 갈바닉 아이솔레이션 처리와 함께 PD의 자체 디지털 출력 회로인 PLINK와 연동 처리되어, 디지털 노이즈와 지터가 대폭 줄어드는 PD의 디지털 출력 처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PLINK 출력이 이루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MPT-8은 오디오파일들이 원하는 모든 사양의 파일과 포맷 및 재생 시스템(DLNA/UPnP, Roon)이 모두 지원된다. 한 가지 아직 추가하지 않은 것은 MQA 정도일 뿐이다. 사실 MQA는 포맷 자체의 논란과 더불어 MQA를 지원하게 되는 순간 DAC의 동작이 안드레아 코흐의 90MHz/1bit 같은 고유의 처리 알고리듬이 적용되지 못하고, 메리디언의 아포다이징 필터와 384kHz/24bit로 출력을 낮춰야 하는, 하위 변환 과정을 적용해야 한다. 기능을 위해서는 추가할 수 있지만, 음질적으로 오히려 단점을 껴안아야 하고 자신이 지닌 고유의 알고리듬과 장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아직 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PD 뿐만 아니라 CH Precision, Linn 을 비롯한 다수의 하이엔드 디지털 소스 기기 업체들이 갖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실제 제품이 지닌 하드웨어적, 소프트웨어적 성능을 MQA에 맞춰 다운그레이드 시켜야 하기 때문에 설계상 변형과 많은 논란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이러한 하이엔드 업체들은 MQA에 대해 거부를 표시한 바 있고, 이는 PD 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가 풀어야 할 논란 요소이다.
테스트에는 ATC의 모니터 스피커 150의 액티브 버전을 준비했다. 연결은 MPD-8의 아날로그 XLR 출력과 150 액티브 간의 직결. 즉, 소스 기기가 액티브 스피커를 다이렉트로 구동하는 구성으로, 소리를 결정할 모든 요소를 완전히 배제했다. MPT-8/MPD-8의 음질을 곧바로 알 수 있는 구성이자 이 기기의 아날로그 프리앰프 기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구성을 준비했다.
음질에 대해서는 별 말을 쓸 필요도 없을 듯싶었다. 몇 곡만 들어도 금방 결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소리다. 지금까지 디지털 소스 기기들에서 들어보지 못한, 가장 따뜻하고 유려한, 리퀴드하면서도 실키한 사운드의 정점이 바로 이 드림 시스템의 사운드다. 그 어떤 아날로그 기기들, 고가의 턴테이블이나 하이엔드 포노 앰프를 사용한 시스템의 사운드도 이 MPT-8/MPD-8의 사운드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드림 시스템의 비교 대상은 하이엔드 디지털 기기들이 아니라 최고의 아날로그 시스템들이다! 높은 온도감, 매끈하고 부드러운 질감, 디지털과 같은 차가움이나 위화감이 없는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사운드. 물과 같은 유려한 흐름에 실키한 톤의 매끄러움이 들려주는 음악은 고음이 어떻고 저역이 어떻고 하는 음의 파라미터를 일일이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디지털의 끝은 아날로그라는 말을 기기로 입증한다면 바로 그것이 이 드림시스템 그 자체이다!
사실, 제품의 발매 이전에 해외 오디오쇼에서 이 기기의 프로토 타입으로 많은 데모가 지난 1년간 있었다. 당시 몇몇 쇼에서 들려준 데모들은 늘 음반 하나를 정해서, 이것을 턴테이블로 틀었던 것과 이것을 녹음한 파일 또는 이미 발매된 해당 음반의 파일을 블라인드 테스트 식으로 비교 시연하는 것이었다. 두 소스를 재생한 뒤, 어느 것이 아날로그인지 맞추는 것이 늘 이 시스템의 데모의 마지막이었는데 매번 결과는 대부분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구분하지 못했다. 당시의 음도 충분히 좋았는데, 이번 완성된 발매 제품은 데모 기기의 음과는 또 한 번 다른 수준의 음을 들려준다. 물론 그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DSD가 들려줄 수 있는 한계점이 무엇인지, 디지털의 끝은 아날로그라는 것을 DSD를 통해 입증해 보여주겠다는 안드레아 코흐의 목표를 듣는 순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유려하며 따뜻한 사운드는 하이파이적 평가를 접어버리게 만들어버린다.
대개 이처럼 아날로그적이라고 하면, 고역 끝의 다소 무뎌지고 중역의 보컬은 두툼하고, 공간감이나 스테이징은 약간 머드하게 변하지만 따뜻하고 유려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음악을 듣기 편하게 만들어준 소리를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드림 시스템은 다르다. 디지털이 지닌 가장 높은 수준의 해상력, 디테일 그리고 디지털 기기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스테이징과 무대 깊이감 같은 요소들이 정말 최고 수준으로 구현되어 있으면서도 앞서 소개한 아날로그적인 요소들이 웬만한 아날로그 LP 재생음보다 더 아날로그적으로 나온다.
지금까지 쉽게 보기 힘들었던 아날로그적 장점과 디지털적인 장점이 하나로 완성된 것이다. 게다가 저역의 해상력이나 리듬감, 어택, 아티큘레이션들이 아주 또렷하게 명확하게 살아있다. 코플랜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나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 같은 팀파니의 초저역과 저음 악기들이 난무하는 레코딩들에서 어느 하나 부족하거나 아쉬움이 없다. 하이엔드 디지털 소스기기가 들려주는 최고의 리듬감과 저역 해상력이 빠르고 정교하게 살아있는데, 현과 금관 악기들의 울림과 뻗침은 따뜻하고 매끈하며 벨벳 같은 질감의 부드러움이 정말 사실적으로 살아있다. 디지털적인 딱딱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은 하나도 없다. 궁극의 디지털은 아날로그라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그리고 DSD가 지닌 포텐셜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MPS-5와의 차이다. MPS-5가 얼마 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DSD256이나 MEMS 클럭 등의 업데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MPT-8/MPS-8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바로 MPS-5의 팀킬 가능성이다. 유사한 알고리듬과 유사한 DAC 회로 그리고 유사한 클럭 시스템을 지닌 MPS-5 이니 말이다. 제작자 본인이 MPS-5를 훌쩍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가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듯이, 아마도 MPS-5의 최종 업데이트를 받은 유저들은 나름 선방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감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금방 사라져 버렸다. 두 기기의 수준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제품이다. 해상도, 공간감에서부터 아날로그적인 질감, 온도감 등 모든 면에서 둘은 경쟁 상대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MPS-5는 드림 시스템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그냥 MPS-5는 MPS-5일 뿐이다.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 없다.
다소 장황한 리뷰가 되어버렸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아직 드림 시스템의 모든 것이 전달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이 사운드는 직접 들어보기 전까지는 리뷰의 의미나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체감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뷰를 쓰기 전에 서너 차례 이 제품을 경험할 수 있었다. 최초의 시청은 처음 개봉한 상태로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그다음 시청은 첫 시연회에서 데모를 할 때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이 리뷰를 쓰기 위해 하나하나 이 제품들을 들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세 차례에 걸쳐 드림 시스템의 사운드는 모두 달랐다. 당연히 마지막 시청했을 때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풀 리니어 전원부로 설계된 제품인 바, 제조사의 말로는 최소 한 달 정도는 번-인을 거쳐야 제대로 된 포텐셜이 올라올 것이라고 했다.
마치 와인을 열어 놓고 디캔팅 과정을 거치듯 드림 시스템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경험해 본 드림 시스템이 보여주는 소리의 변화는 공기와 함께 풀려나가는 와인의 화사함 그 이상의 화려한 변신을 안겨주었다. 그 과정은 대단히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디지털의 끝은 아날로그라는 말을 의구심에서 확신을 거쳐 종교적 믿을이 될 정도로 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올해 디지털 소스 기기 시장과 프리앰프 시장에서 여기에 경쟁이 될 제품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지금까지의 디지털 소스 기기들의 정의를 새로 내릴 준비들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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