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힘과 다이내믹스에 훌륭한 음악성을 더한 튜브 앰프의 등장
캐리 오디오(Cary Audio Design)의 창업자이자 앰프 대부분을 직접 만들어냈던 엔지니어 데니스 햇(Dennis Had)는 2009년 은퇴 후 회사를 떠났지만 함께 회사를 운영하던 빌리 라이트(Billy Wright)가 대표직을 물려받아 여전히 회사를 이끌고 있으며, 홈시네마 시대에 이어 네트워크 시대에 맞춰 새로운 오디오 기기로 여전히 캐리 오디오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최근에는 네트워크 관련 플레이어/스트리머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이들은 본업인 진공관 앰프에 대한 개발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2018년 상반기에 발표된 캐리의 새로운 인티 앰프 SLI-100은 이 회사가 20년 동안 이어온,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SLI-80 인티 앰프의 후속 모델이다. SLI-80은 1998년 등장한 캐리의 중급 인티 앰프로 20년에 걸쳐 여러 차례의 마이너 체인지를 거쳐 시그니처 버전 등이 있었던 이 회사의 핵심 인티 앰프였다. 그런 긴 역사의 대표작을 새로 바꾸었다는 것은 뭔가 사운드에 대한 새로운 변화 내지는 새로운 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SLI-80은 20년 동안 여러 미묘한 변화로 사운드의 꾸준한 진화가 이루어졌지만 증폭 회로 자체는 데니스 햇이 설계한 뼈대 자체가 변한 적은 없었다. 기본은 신호의 입력과 버퍼 역할을 하는 초단은 6DJ8/6922로 구성한 션트 정류 방식의 푸시풀(Shunt Regulated Push Pull, SRPP) 회로를 사용하고 이후 출력단을 드라이브하기 위한 전압 증폭 회로는 6SN7으로 위상 반전 증폭을 시키고 최종 전류 증폭의 출력단은 KT88의 Class AB 푸시풀 증폭으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기본 증폭 회로는 출력 트랜스포머와의 연결에 따라 트라이오드 모드와 울트라 리니어 모드를 제공했는데, 트라이오드 모드에서는 채널당 8옴 기준 50W를, 울트라 리니어 모드에서는 80W를 제공했다.
트라이오드 모드와 울트라 리니어 모드를 굳이 선택적으로 골라 쓰도록 만든 이유는 트라이오드 모드는 Class A 로 동작하는 영역이 더 확장되어 300B 싱글 엔드 앰프와 유사한 미려한 음악성의 사운드가 있기 때문이며, 좀 더 높은 출력과 다이내믹스의 성능을 높이면서 진공관의 개성 사이의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울트라 리니어 모드를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SLI-80은 캐리 오디오 인티 앰프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오랜 세월 시장에서 자리를 잃지 않았으며, 전원부와 정류 회로 그리고 부품의 업그레이드로 음질적 개선이 이루어진 시그니처 버전 등이 존재하기도 했다.
20년 만에 새롭게 바뀐 새 앰프 SLI-100은 전작과 완전히 다른 새 앰프가 아니다. 숫자의 변화가 의미하듯이, 새 모델은 전작에 비해 채널당 20W의 출력이 더 높아진 것이 스펙적인 차이일 뿐이다. 실제로 내부 회로를 보아도 큰 회로의 뼈대,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6922의 초단 증폭, 6SN7의 전압 증폭까지는 똑같다. 흔히 진공관 앰프들이 초단 뒤에 콘덴서나 인터스테이지 트랜스포머를 거쳐 출력단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많은데, 이처럼 3단계 증폭 회로를 거치는 편이 밸런스적으로 더 미려하고 깨끗하고 스무드하다는 평가들이 있다. 물론 설계 능력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체적인 평이 그렇다는 말이다.
SLI-100의 입력단에 사용한 SRPP 회로는 프리앰프에 흔한 12AX7 대신 6922을 사용했다. 12AX7은 전압 증폭률이 높은 반면 전류 증폭율은 낮은데, 반대로 6DJ8/6922은 전압 증폭률은 평이한 반면에 전류 증폭률이 높다. 전압 증폭은 크지만 전류 증폭이 적은 진공관은 전압 증폭 회로용으로는 좋지만 아주 작은 스케일의 신호 정보를 재생하는 데에서는 그런 섬세함 대신 평범함 내지는 단순함의 사운드로 그칠 공산이 크다. 반면에 6922은 12AX7 보다 전류 증폭률은 10배 정도 더 큰데 이는 전류 증폭 회로를 통해 훨씬 더 작은 소신호들을 10배 더 크게 그려내어 텍스처나 미세 디테일의 깨끗한 증폭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같은 전압으로 동작하는 신호에서 1볼트 출력당 1mA의 출력 전류가 나오지만, 6DJ8은 같은 전압에서 10mA의 전류를 얻어낼 수 있다. 6922로 구성된 SLI-100의 초단은 매우 안정적이며 노이즈가 거의 없고 조용하며 깨끗하고 리니어하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감도가 높은 스피커에 연결하고 무음 상태로 트위터나 미드레인지에 귀를 가깝게 해도 노이즈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사운드적으로도 마치 돋보기로 악기군 속을 들려다 보거나 보컬의 음정을 살펴보는 느낌을 준다.
한편 출력관은 달라졌다. KT88에서 KT150으로 바뀌었다. 텅솔의 KT150 진공관을 채널당 2개씩 푸시풀로 구성한 출력단은 Class AB로 동작하는데, 이는 과거 SLI-80의 출력 회로를 큰 변경없이 세부 조정으로 출력을 한층 배가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KT150은 신관으로 가격도 비싸지 않고 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으며, KT88이 2개가 KT150 하나와 비슷하다는 말처럼 출력과 성능의 개선을 얻을 수 있다. 출력관의 교체와 더불어 설계상의 변경이 생겼는데 앰프의 동작 모드 스위치가 사라졌다. 전작에서는 트라이오드 모드와 울트라 리니어 모드 중 자신의 스피커나 음악에 맞춰 자신에게 맞는 음색을 둘 중 골라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SLI-100에서는 울트라 리니어 모드 고정이다. 더 이상 트라이오드 모드는 없다. 굳이 트라이오드 모드는 없앤 것은 울트라 리니어 모드 설계로도 과거 KT-88 보다 충분히 아날로그적 사운드에 여유있는 출력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있다는 자신감으로 보인다.
내부 회로는 100% 하드와이어링 방식의 제작이다. PCB 대신 모든 연결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케이블링과 땜질을 통해 제작된 방식이다. 덕분에 내부 모습은 그리 이뻐보이지는 않지만 신호의 최단 연결과 기판 패턴이 아닌 케이블링 연결이라 진공관 설계에 알맞은 훨씬 높은 전력 전달이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바이어스는 고정 바이어스 방식이며, 출력 트랜스포머로부터 걸리는 글로버 피드백은 4dB로 크지 않다는 점도 전작과 그대로이다.
SLI-100 인티 앰프는 전통적인 캐리 오디오의 인티 앰프의 관 배치 및 트랜스포머 배치 등의 외관이 고스란히 유지되어 있지만 보호 커버를 씌워 놓으면 마치 장갑차처럼 보이는, 산업용 철제 박스처럼 보인다. 상당히 투박하고 커다란 박스로 보이는데 마치 험비처럼 강건하고 튼실한 이미지를 준다. 특별히 관을 보호하기 위해 커버 박스를 씌워 놓아야 할 상황이 아니면 KT150의 이쁜 관 모양을 볼 수 있도록 커버를 벗겨 놓고 쓰는 편이 낫다. 외형적인 모양새나 발열 효과를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관에서 나오는 발열이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라서 발열에 대한 부담을 심하게 갖지 않아도 된다.
새 인티 앰프의 섀시는 내구성이 뛰어난 철제 섀시 위에 파우더 코팅을 입힌 마감 처리를 단행했고, 전면 패널은 알루미늄 소재로 과거의 모델들에 비해 좀 더 세련된 마감과 파란색 LED의 파워 버튼 불빛으로 디자인적인 모양 개선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전면에는 정중앙에 볼륨 노브가 있고, 좌우에 각각 셀렉터와 밸런스를 담당하는 노브가 있고, 우측 끝에는 헤드폰 단자와 헤드폰 앰프용 전원 버튼이 있다. 앰프 뒷면에는 4개의 RCA 입력이 좌우 대칭형으로 분리되어 자리 잡고 있으며, 1개의 서브우퍼 프리아웃이 있다. 양 끝에는 스피커 터미널과 스피커 매칭 임피던스 스위치가 있어서 출력 트랜스포머의 탭을 4옴과 8옴 스피커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테스트에는 매지코의 A3 플로어스탠더를 사용하고 소스 기기로는 린데만의 뮤직북 10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음악은 Tidal/Qobuz의 스트리밍을 사용하고, 네트워크 브릿지로는 라즈베리파이의 Roon Ready 브릿지를 이용했다.
가장 먼저 특기할 만한 점은 노이즈다. 매지코의 A3는 플로어스탠더로 그래핀 드라이버와 베릴륨 트위터 같은 현대적인 드라이버들을 사용함에도 감도가 90dB로 매우 높다. 노이즈 레벨이 높은 앰프를 물리면 여지없이 히스 노이즈와 전원 노이즈가 트위터에서 그대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SLI-100은 마치 잘 설계된 트랜지스터 앰프마냥 미드레인지와 트위터에 귀를 갖다 붙여도 노이즈가 거의 없었다. 매우 적막한 배경과 히스 노이즈가 거의 없는 앰프의 출발점은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만 했다.
실제로 음악을 틀자마자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이 앰프의 매력은 넓고 큰 음장 및 스케일 그리고 저음, 그것도 탄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저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코플랜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레’에서의 팀파니는 매우 깊고 단단한 저음이 나왔다. 소리만 요란한 저음이 아니라 탄력과 찰기가 매우 뛰어나면서도 뒤 끝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깨끗하고 빠른 저음이었다. 팽팽하게 조여진 가죽 헤드 위를 콜크 같은 북채로 힘차게 두드리는 자연스러운 울림의 저음이 멋지게 흘러나온 것이다.
흔히 Class D 앰프나 트랜지스터 앰프들에서 나오는 강건하고 단단하지만 날카로움이 있는 듯한 딱딱한 저음이 아니라, 드럼 헤드가 출렁거리는 울림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한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저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의 꼬리는 매우 정확하고 빠르게 음의 시작과 끝이 매끈하게 마무리되는 것이다. 부드러운 질감에 팽팽한 에너지가 겸비된 아날로그적 저역의 울림은 정말 인상적이다. 같은 팀이 녹음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 중 '피날레'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팀파니의 깊이감과 에너지는 100W의 진공관 인티 앰프라고 느껴지지 않는, 대단한 힘과 임팩트로 매지코 A3를 갖고 놀면서 탄력과 질감이 갖춰진 저역으로 공간을 가득 매워주었다.
놀라운 저음 컨트롤 능력과 힘은 스탠리 클락(Stanley Clark)이 담당한 영화 <패신저 57> OST의 주제곡 그리고 같은 음반의 ‘Lisa' 같은 곡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베이스의 리듬과 탄력 넘치는 연주에는 에너지와 힘이 실려 있는데, 절대 포화되거나 둔중한 저음이 아니라 탄탄한 리듬을 힘과 스피드의 균형을 잡고 매력적인 저음으로 음악에 젖어들게 만든다. 이 가격대의 앰프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순히 저음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진공관 앰프로서 고역에 대한 투명도와 매끄러운 질감도 함께 담겨있다. 커트 엘링이 부른 <The Questions> 중 ‘Endless Lawns'를 들어보면 남성 보컬의 톤 컬러에 진하면서도 부드러움이 담겨있고, 무엇보다 배음과 잔향이 살아있어서 편안함을 더해준다. SLI-100의 고역은 첨단 디지털 기능과 트랜지스터 설계의 앰프들이 자랑하는 기기들에 비하면 고역 끝이 예리하거나 좀 더 확장된 고역의 선예도를 내세우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둥글고 무든 고역이라는 것은 아니다. 해상력, 투명도, 디테일은 모두 수준급인데 인위적인 에지와 고역의 강조 대신 부드러움과 매끄러움 그리고 유려함으로 고역의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매지코 A3의 중고역이 갖는 장점들에 진공관스러운 색채를 더하여 현대적 고음질 음원의 장점과 아날로그적 음색과 질감이 더해진 사운드를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키스 그리닝거가 부른 'Looking for a Home'을 들으면 도입부의 기타 소리는 높은 해상도와 투명도에 아날로그적인 기타의 울림을 아주 명료하면서도 유려한 기타 사운드로 들려주고 보컬의 진한 울림과 높은 선명도로 힘을 실어 중역의 힘을 그려낸다.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의 선율과 보컬의 노랫 소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등의 어쿠스틱한 클래식 녹음들을 들어보면 진공관에서 원하는 유려함과 아름다움, 아날로그적 면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며, 여기에 투명한 입체감과 넓은 스테이징 그리고 탄탄한 저음의 힘으로 더 이상 하이파이적인 장단점을 지적하기 어려운, 순수하게 음악 자체만을 듣게 만드는 사운드를 느끼도록 해주었다. 특히 매지코 A3와의 매칭은 매우 인상적인 수준으로, 특별히 하이엔드급의 고가 앰프에 대한 필요성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게 해주는, 음악적으로나 하이파이적으로나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애초에 캐리 SLI-100의 시청에는 별 다른 기대감은 없었다. 워낙 많은 진공관 앰프들과 올드한 디자인 그리고 평범한 스펙 등은 평이한, 그저그런 진공관 앰프일 것이라는 정도의 선입견으로 시청에 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는 순간 최근 테스트한 앰프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뭔가 음악적인 새로움 그리고 누구나 진공관에서 원할 만한 장점과 반도체 앰프에서 기대할 만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담겨있는, 새로운 차원의 사운드적 감흥을 얻게 되었다. 사실 새롭다기 보다 음악적인 사운드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탁월한 힘의 저음은 이런 매끄럽고 유려한 사운드의 원천이라 생각된다. 안정된 단단하고 탄력넘치는 저음의 토대 위에 배음과 잔향이 풍부한 중고역이 더해져서 전반적으로 풍성하면서도 일체의 둔중함이나 둔탁함은 찾아볼 수 없는, 투명하면서도 유려한 색채의 사운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색은 진하고, 결은 부드럽고, 무대 위의 공간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하나하나의 레어어로 악기군을 형성되고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하나가 됨으로써 음악적인 사운드를 연출해준다.
물론 이 앰프를 더 많은 스피커들과 테스트해봐야 알겠지만, 매지코의 A3와의 조합은 두 제품 모두에게 각별한 시너지를 불러 일으킨다. 투명함과 치밀함 그리고 탁월한 다이내믹스를 지닌 알루미늄, 베릴륨, 그래핀 소재의 차가운 사운드 박스에 6922과 KT150이 끓여낸 따뜻한 온도감이 가득한 리퀴드한 음악의 주입은 그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들어도 모두 하이파이적인 쾌감과 탁월한 음악적 즐거움이 가득한 감성 충만한 사운드를 체험하게 해준다. 이 구성을 이겨낼 만한 경쟁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 가격에 만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가성비가 놀라운), 가장 하이엔드적인 즐거움과 음악적 감흥이 넘쳐나는, 동급 최고의 음악적 시스템의 탄생이다!
Type : Push-Pull Ultra-linear / Pure Class AB1
Power Output : 2 x 100W
Tubes : 2 x 6922 Input Buffer Preamp / 2 x 6SN7 Pre-Driver/Phase Inverter / 4 x KT150 Output Tubes
Frequency Response : 19Hz - 23Khz (+/- 0.5dB)
Output Tabs : 8 Ohms, 4 Ohms
Maximum Gain : 34dB
Power Consumption : 166W (On)/ 83W (Standby)
Inputs : 4 x RCA
Preout : 1 x RCA for Subwoofer
Headphone amplifier : Yes
Dimensions(HWD) : 198 x 438 x 406mm
Weight : 19kg
수입원 : (주)사운드솔루션 www.sscom.com, 02-2168-4500
오디오플라자 매거진 카톡채널 바로가기 : http://pf.kakao.com/_uDRBC
하이파이 오디오 최신 리뷰
제품이나 리뷰에 대한 문의는 오디오플라자 카톡채널로 해주세요!
오디오플라자 카톡 채널 바로가기 : https://pf.kakao.com/_uDR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