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까미노에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걸었는지 물어봐. 가끔은 그 질문이 나를 불편하게 할 때가 있어..
하지만 네가 세상의 끝지점 피스테라에 도착했을 때. 그것을 묻는 사람은 없을걸?
거기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야.
네가 한국에 돌아간다면, Where are you start from? 이라는 글씨를 적힌 티셔츠를 만들어서 입어봐.
그걸 보면 까미노가 기억이 날껄?
- 묵시아 가는길, Elisha-
모든 첫 만남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브런치스토리와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Q1 작가님이 궁금해요.
작가님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앞으로 브런치에서 어떤 활동을 보여주실지
기대할 수 있도록 알려주세요
창작을 좋아하는 연구원입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여행과 수행이며, 그래서 여행지 또한 일반적인 관광보다는 순례길을 걷거나 종주를 하거나, 다소 덜 관광화된 특별한 장소들을 찾는 편입니다.
이러한 여행 이야기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저에게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행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여정을 유튜브와 같은 영상 콘텐츠로도 남기고 있으며, 이제는 이 영상들 속 이야기를 조금 더 심도 있게 글로 풀어내고 싶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작가 신청 버튼을 누르며, 4년 전 단순한 독후감 작성자로서 거절당했던 순간을 처음으로 다시 마주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얼마나 성장했을까요?
나는 질문을 받았고, 그에 대한 첫 답변 역시 나는 질문으로 끝맺었다.
Q2. 브런치 활동 계획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발행하고 싶으신가요?
브런치에서 발행하고자 하는 글의 주제나 소재, 대략의 목차를 알려주세요.
단순한 여행 이야기가 아닌, 여행과 저의 일상을 엮어 글을 써보려 합니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호주 서부 퍼스 로드트립에서, 이전까지 해외여행에 부정적이었던 제 생각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스페인 순례길을 걷다가 만난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 순례길을 마치고 돌아온 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에 임하는 태도의 변화,
또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생각들.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해발 5,400m의 창라패스를 넘으며
만났던 인도인들과의 잊지 못할 여정까지—
이 모든 경험들을 더 깊이 있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나이 서른. 내 인생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 즈음, 나는 스페인의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스페인 북부 *둠브리아(Dumbría)*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고픈 배를 움켜쥐며 스페인의 시에스타(Siesta, 점심 후 낮잠을 자는 전통 문화로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를 원망하고 있을 때, 나는 한 이탈리아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Where did you start from?”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인삿말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어디서부터 걸었어요?"**라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800km가 넘는 거리를 프랑스에서부터 한 달 가까이 걸어온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단체 버스를 타고 근처에 도착해 잠시 걷기만 하며 순례길의 분위기를 느끼기도 한다.
직장인으로서 10일 남짓한 짧은 일정으로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나는, 가끔 프랑스 생장(대표적인 프랑스 길의 시작점, 약 800km넘는 거리로 30일이 넘는 일정 소요)에서부터 걸어온 이들을 마주할 때면 조금 움츠러들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이탈리아 친구 Elisha는 이미 순례길의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Fisterra)**까지 가본 적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까미노에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걸었는지 물어봐. 가끔은 그 질문이 나를 불편하게 할 때가 있어..
하지만 네가 세상의 끝지점 피스테라에 도착했을 때. 그것을 묻는 사람은 없을걸?
거기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끝, 피스테라에 도착해 뜨거운 태양의 역재생을 본 뒤, 비로소 나는 그 질문을 내 배낭에서 꺼내놓을 수 있었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항상 지고 다니던 그 질문이, 다소 무겁게 느껴지던 그 묵직한 덩어리를 나는 그 길의 끝에 내려놓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무수한 질문을 이고 있는 기분이다.
어떤 선택을 하려 할 때마다
"이게 맞는 걸까?",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의 행동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래?",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와 같은 의문과 질문들이 묵직하게 나를 누른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했던 선택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고,
저 상사가 왜 그렇게 짜증을 냈는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게 된다.
그렇게 질문들은 내 짐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여행은 내게 그런 삶의 묵직한 질문들을 젖은 옷에 남은 먼지를 털 듯, 나를 조금 더 곧게, 그리고 가볍게 만들어주는 행위였다. 일상에 젖어, 갓 완료된 통돌이 안에서 이리저리 얽히고 섞인 빨랫감 같은 질문들을 한 번 시원하게 털어내는 일.
이 책에서는 나의 특별한 여행 경험과 빨래하기 같은 일상을 엮어, 무거운 질문들을 가볍게 놓는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