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함과 미안함
글쓰기 워크숍을 신청했다. T와 S의 연결로, S와 M과의 연결로, 작가님들이 쓴 책과의 연결로 여기까지 왔다.
책방연희라는 작은 서점이었고,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지하철을 타고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차를 끌고 갔다. 가는 길이 흐렸다. 날씨 탓도 있지만 지금 내 눈이 유행성각결막염에 합병증까지 와서 단백질이 자꾸 낀다는 게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었다. 왼쪽눈만으로 보면 정말 모든 게 뿌옇게 보였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낫지 않는 눈병에 걸리고 난 뒤 나는 요즘 쓰지 않던 안경을 쓴다. 고등학교 때 쓰던 안경과 비슷한 디자인이라며 T와 S는 반가워하고 재밌어했다. 25년 만에 안경 쓴 내 모습을 보고 거의 예뻐해 줬다. 오랜만에 안경을 쓰고도 시야가 흐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안경을 비벼버렸다. 눈이 안 보여 손을 댄 게 안경으로 갔다. 사람은 이렇게 생활습관이 무섭고도 단순한 동물이구나 싶다. 나만 그런가?
주차를 하고 지도를 켜고 목적지를 찍고 따라 걸었다. 신촌과 홍대의 좁은 골목골목 계단과 길목을 따라서 책방연희에 도착했다. 평강 작가님이 있었고 몇몇의 다른 참가자들도 도착해 있었다.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자 나머지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유림작가님도 자리를 잡았다. 그 틈과 공간이 주는 설렘에 마음이 조금은 긴장됐다.
간단한 설명과 소개가 이어지고 명찰에 이름을 쓰고 옷에 꽂아 달았다.
'고수진'이라 썼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쓴 그 이름.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어색하면서도 금세 편안했다.
짧은 명상을 하고 5분 글쓰기가 주어졌다. 명상을 하며 느꼈던 감정을 쉬지 않고, 펜을 떼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가기. 명사든 형용사든 감정을 문장으로 써보기. 5분 동안.
명상하는 동안 평강 작가님이 몇 가지 말을 하며 가이드해 줬는데 그중에는 '이해받지 못했던 마음' '그 감정은 내 몸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말들이 있었다.
나는 내 몸 어딘지도 모를 한 구석에 엄마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했던 마음에 대해 떠올렸다. 명상이 끝나고 5분 동안은 정말 펜을 뗄 세도 없이 글을 써내려 갔다.
"나는 서운했어. 섭섭하고 원망스러웠어. 나를 사랑해 주는 내 가족이 나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것 같았어. 미웠어. 그렇지 않은 척했어. 이해하는 척을 했지. 엄마아빠 다 이해한다고, 생각도 해보고 말로도 뱉어봤어. 하지만 아니야. 이해하지 못하겠어. 아직도,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왔으면서도 아직까지도 더 중요한 게 타인의 시선이라니.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라니. 아니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어. 내가 그렇게 상처받고 홀로 서게 됐는데. 그게 내 잘못도 아닌데 이혼은 창피한 거야? 좀 창피한 게 나쁜 거야? 내가 엄마아빠한테 나쁜 딸이 된 것만 같았어. 이혼하기 전까지는 좋은 딸이었다가 이혼이란 걸 하게 된 이후로는 엄마아빠한테 못나고 부끄러운 딸이 된 것만 같았어. 사실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크지. 당연해. 엄마아빠는 나에게 대체로 너무나 좋은 부모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거 같아서.."까지 썼는데 시간이 다 됐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 글을 읽고 왜 이런 글이 나왔는지, 그 감정은 내 몸 어딘가에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부모님께 서운했던건 아주 잠깐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감정이 내 몸 어딘가에, 해마이든 심장쪽에 있는 핏줄이든, 어딘가에서 계속 남아있었던 거였다.
이 감정을 뱉어내고 나니 후련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나머지를 여기에 이어간다.
미안해.
엄마아빠가 나에게 부끄럽다는 말이나 표정을 지은적도 없는데, 단지 내 구석에 남아있는 조금의 서운함으로 내 못난 마음이 들통나버렸네.
나는 결국 아빠가 바라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그런 딸이 되지는 못했어. 그런데 아직 나는 인생의 절반밖에 살지 않았잖아.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잘 지켜봐 줘. 난 오히려 최근에서야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어.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금 알게 됐다는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가족이었던 누구 한 사람이 지워지더라도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새삼 더 알게 됐어. 용기를 내고 싶어. 나를 나대로, 타인을 타인대로, 있는 그대로 알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어. 나에게 힘을주는 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역시 가족이었고 지금도 그래. 지금의 나 그대로를 봐줘. 엄마 아빠의 응원이 무척이나 큰 힘이 될 거야. 미안해. 원망하는 마음은 잠시뿐이지만 항상 미안해. 고마워 엄마, 고마워. 엄마아빠는 항상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