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느렸던 희수.
난생처음 “엄마”라는 말을 희수의 목소리로 들었을 때까지, 나는 21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별생각 없이 했던 발달검사에서 '언어 지연'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진단이라고 해야 할까. 나에게는 통보였다. 나를 더 벼랑으로 몰아넣겠다는 통보.
그날 이후, 죄책감과 두려움 같은 무거운 마음들이 나의 하루 하루를 조용히 파고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제일 유명하고 잘 본다는 옆동네 언어센터를 찾아갔다.
언어센터에서는 아이의 성향과 부모의 유전적인 요인일 뿐, 지나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고 19개월부터 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모든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입모양을 크게 보여주고, 동물 소리를 흉내 내고, 장난감 이름을 불러주고,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을 함께 읽었다. 아이의 언어 발달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갑자기’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울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희수가 자신있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모니, 할브지, 꼬꼬, 꽥꽥, 어흥, 야옹…”
휴대폰 메모장에는 그때 아이가 처음 내뱉었던 단어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단어들을 하나씩 기록할 때마다, 내 마음속 우울도 조금씩 걷혀갔다.
말을 하는 아이가 그렇게도 기특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건넸다. 그저 내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조금이라도 더 닿기를 바랐다.
아이는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아니 거의 온종일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건네왔다. 그 수만 가지 질문 중엔 간혹 나를 멈칫하게 만드는 질문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아름다운 게 뭐예요?”
“스트레스는 뭐예요?”
“행복은 무슨 뜻이에요?”
그럴 땐 나도 특히 진심을 담아 설명해 줬다. 그때마다 희수는 내 장황하고 두서없지만 의미를 가득 담아 전해주고픈 그런 긴 말을 가만히 듣고는
“네~”라고 대답해 줬다.
그냥 무미건조한 단호박 “네”가 아니라
'아 알겠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엄마'라는 뜻이 담긴듯한 아주 성의 있는 목소리와 말투로
“네~”라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 수다쟁이 어린이가 된 희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양치를 하면서도, 하교 후 만난 순간에도, 저녁을 준비하는 내 뒷모습을 보며 애교를 가득 담아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네라는 한마디도 사랑을 가득 담아 말해주는 희수.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을 이야기해주는 희수.
사랑해 희수야. 그래. 넌 정말 최고로 사랑스러운 아이야.
정말 정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