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맑았다.
미세먼지 농도는 내려가고 하늘이 깨끗했다. 마스크를 벗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괜찮을 것 같았다. 괜히 결과가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11:40분 예약이었지만 10분 먼저 도착했다. 친절한 간호사는 오래 기다리셨는데 죄송하게도 앞 진료가 늦어져서 10분에서 20분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초음파를 오늘 또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어서요. 그래서 이따 다시 초음파를 보게 될거에요.”
그 말의 의미가 무겁게 느껴졌다. ‘오래 기다렸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을거라고 생각하시나보네.’ 그렇지 않았다. 그럴 일이 없을거라 믿었고 만약 그렇더라도 지금의 삶과 크게 달라질게 전혀 없을거라 가볍게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초음파를 다시 봐야 한다고? 결과가 좋으면 굳이 다시 볼 필요가 없을텐데.’ 결과가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꺼내 캘린더를 봤다. 앞으로의 일정을 보며 한주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빠르게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음. 일단 누워보실까요? 작년 8월에 엑스레이도 찍으셨었잖아요. 거기서는 특별한 이상은 안나왔어요? 치밀유방에 대한 이야기나 뭐.”
나는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다.
“아… 없었어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나요.”
“일단 일어나셔서 옆으로 오시면 설명해 드릴께요.”
우리는 진료실 책상에 대각선으로 앉았다. 의사의 모니터를 보려면 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의사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기다렸다.
“음. 결과가 조금 안 좋게 나왔어요. 이게 이제… 유방암으로 나왔는데.”
거기서 잠시 멍해져 버렸다. 의사는 유방 단면의 모형을 보여주고, 그림을 그려서 유방암의 종류와 나에게 해당하는게 어떤 형태의 암인지 설명했다.
“그런데 사실 두 개를 비교하자면 이 형태가 조금 더 착해요. 그리고 초음파상에서 크기는 1cm보다 작아서 지금 되게 초기에 발견된 거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의사는 마스크를 썼지만 위로를 전하는 눈빛으로 티슈를 뽑아 나에게 건넸다.
“치료 잘 받으면 돼요. 지금 되게 빨리 발견된 거라고 보면 돼서. 그러니까 정말로 굉장히 초기에 발견한 거거든요. 너무 걱정 안하셔도 돼요.”
나는 담담히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이후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들었다. 수술할 대학병원을 결정하고 병원에 알려주면 관련 서류와 예약까지 도와준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이후의 일들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순간, 공포가 조금 작아졌다.
하지만 그대로 집에 갈 수 없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 눈물을 감출 자신이 없었다. 그 시간의 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무언가가 필요했다.
길건너 스타벅스로 갔다. 평소에 마시지 않던 티를 주문하고 진료내역서 뒷면을 펼치고 얼마전 교보문고에서 샀던 2000원짜리 샤프를 꺼냈다. 내가 지금 정리해야 할 두가지를 적었다.
1. 암의 종류와 내 진단암에 대한 특성
2. 대학병원 고르기
휴대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의사가 말한 것처럼 내 암이 ‘착한 암’인지부터 찾아봤다.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초기에 발견됐다는 것. 그리고 내 암 종류의 특성상 영상으로 발견되기 어려울 수 있는데, 나는 운이 좋았다는 것.
수술 방법도 찾아봤다. 후기에는 입원 기간이 제각각이었다. 3일인 사람도 있었고, 4주인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을 정해야 했다.
의사는 세 곳을 추천했다. 모두 저명한 전문의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중 친한 지인의 가족이 의사로 일한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라, 나는 바로 연락했다. 사정을 알렸더니 도와줄 수 있으니 정해지면 알려달라고 했다. 고마웠다. ‘가족 중에 의사가 한 명 있으면 좋다’는 말이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 말이 호들갑도, 자랑도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됐다.
전화를 끊고 결과를 들은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대학병원을 정했다고, 날짜가 잡히면 알려달라고. 그제서야 그날 내가 할 일이 끝났다. 이제 진료 날짜가 잡히면 염색검사, 분자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본 뒤에 수술 유형을 결정하고 수술 날짜를 잡으면 된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된다.
주말이 끝나간다. 평소와 다름없이 또 한 주를 지내면 된다. 앞으로의 일들을 미리 걱정하지 말자. 나는 운이 좋았고, 빠르게 발견된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