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눈이 멀어버린 날
별똥별을 본 적이 있다.
여름, 고등학생 때였다.
성당 고등부 전원(중고등부 교리수업을 듣는 인원)이 음성 꽃동네 봉사를 갔다. 수녀님은 인솔자 없이 우리끼리 방문한 것에 기특해하면서도 엄격함을 유지하며 봉사활동으로 할 일과 규칙을 읊었다.
남자 숙소는 이쪽, 여자 숙소는 저쪽.
8시 이후로 방에서 나오지 말 것.
하지만 우리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고 남녀가 섞여있었고 충분히 용감했다. 남자애들은 할아버지들 쪽으로, 여자애들은 할머니들 쪽으로 가서 수발을 들고 씻겨드리고 방을 청소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수녀님이 방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가 몰래 재회했다.
하지만 그런 스릴도 잠시였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곧장 수녀님이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쫓겨났다. 정말로 우릴 쫓아낼 생각이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우리는 짐을 챙겼다. 반항심과 객기 그리고 철없는 모험심으로, 그 깊고 캄캄한 음성 꽃동네 대문을 열어젖히고 나와버렸다.
열다섯 명 남짓한 우리 무리는 처음엔 들떠있었다. 시끌벅적 웃고 떠들며 열심히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두가 알아버렸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각이었고, 이 길이 숲길인지 도로인지 구분도 안되며, 지나가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이 길을 언제까지 걸어야 터미널이 나올지도 모르며, 설령 터미널에 가더라도 버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한두 명씩 말이 없어졌다. 둘셋씩 짝을 지어 팔짱을 끼고, 그저 뚜벅뚜벅 걷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야. 하늘 좀 봐.”
이제껏 본 적 없던 하늘이었다.
그렇게 많은 별을 맨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별들이 하늘에 촘촘히 가득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친구의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하늘로 향한채 뒤뚱거리며 걸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아니 하늘에 눈먼 사람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봤다.
“또르르” 라고 해야 할지, “샤랄라”라고 해야 할지.
마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천천히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별똥별이 떨어졌다. 그야말로 슬로모션처럼, 조용하게.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며 너도 소원을 빌라고, 내가 대신 같이 빌어주겠다고 우리의 소원을 빌었던 게 생각난다.
어느새 그 밤의 두려움은 별똥별이 지나간 자리처럼 사라졌다.
살아오면서도 그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문득문득, 이유 없이 떠오르곤 했다.
내 어린 시절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힐 만큼 선명한 밤이었고, 평생 단 한번 봤던 별똥별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짧은 찰나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우연이었고, 그래서 더없는 행운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종종 밤하늘을 올려다보지만, 그런 별똥별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평생 단 한번뿐일지 모를 행운을 그날 다 써버렸대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그 장면은 완벽했다.
세상이 너무 빠르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음성 꽃동네의 밤’으로 돌아간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우연이기에 더 애틋한, 내 생에 가장 짧으면서도 길게 머물러 있는 그 아름다웠던 순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