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살이
늦은 나이였을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39세의 나이에 독일로 떠났다.
작정을 한 것이었다. 이제 떠나면 정말로 한국에서의 삶은 더 이상 없다는 마음으로
도피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계획이 있었고, 뚜렷한 계획이 있었나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캐나다에서 잠깐 지내봤던 경험이 독일행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언어가 다를 뿐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니까.
영어를 유창하게 잘했다면 독일에서의 시작이 많이 순조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나는 서툰 영어로 그리고 독일어로 4년째 독일 남부 도시인 프라이부르크에 살고 있다.
독일어가 조금 유창해졌지만 그만큼 영어실력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나는 지금 독일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우스빌둥이라는 직업훈련과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시스템이다.
나의 경우는 일주일에 이틀은 유치원에서 근무를 하고 사흘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이건 내가 독일행을 결정했을 때 생각해 뒀던 계획이 전혀 아니었다.
아우스빌둥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이걸 당당하게 플랜에 넣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많다고만 생각했던 그 숫자가 이방인인 나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서 기능했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한국에서 충분하게 살았던 시간이 그리고 경험들이 타국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으니까.
시간은 어찌어찌 흘렀고 그 시간을 버텨낸 지금 나는 이제 마지막 일 년만 남겨둔 상태이다.
논문을 써야 하고 그것에 대한 구두 평가와 또 졸업 필기시험이라는 버거운 과제들이 주어졌지만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 또한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 나이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시작함에 있어서 아무도 나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독일 사회가 다 그런 건지 나의 경험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한국보다는 나이에 대한 편견이 적다.
그리고 그걸로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다시 대학도 가고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미 마흔이 되어버린 내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