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걸의 데이팅앱 사용기

틴터? 범블?

by 하이코드슬럼프

온라인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불신이 있던 나는 데이팅앱 따위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백마 탄 왕자님을 꿈꿨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더 넓은 세상에 왔으니 나름의 낭만적인 이야기가 하나쯤은 생길 줄로 알았지.

그러나 그것은 경기도 오산이었고, 현실에서 멋진 남자는커녕 그냥 멀쩡한 남자조차도 흔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것은 나의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내가 사는 도시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내 생각엔 후자의 영향이 좀 더 큰 것 같다.

아무튼 우중충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독일의 혹독한 겨울을 끝끝내 버티지 못한 나는 데이팅앱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

주변에 틴더나 범블을 통해 연인이 된 사례를 많이 보았는데, 틴더는 어쩐지 꺼려져서 범블을 설치했다.

범블의 경우 결혼까지 성공한 한국인들의 사례가 있어서 뭔가 좀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하거나 연인을 만들고 싶다거나 그런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독일의 데이트 문화를 알아가 보자, 원어민과의 대화를 통한 독일어 실력 향상 대충 뭐 이런 취지였다.

그리고 범블은 매칭이 되면 여자가 먼저 선톡을 해야만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도 뭔가 참신했다.

시작 전 나는 스와이프를 할 수 있는 조건들을 먼저 생각해 봤다.

독일어 또는 영어가 모국어, 학사 이상, 머리숱이 많고 날씬한 체형, 종교 없음.

그리고 프로필이나 사진에 아시아와 관련된 것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제외.

나의 언어 향상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원어민이어야 하는 건 제일 중요한 사항이었고,

나머지는 내가 원래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다.

종교는 사실 크게 상관없었는데 독일에 와서 중요해졌다. 특정 종교 때문에.

그리고 아시아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옐로피버일 확률이 농후하여 무조건 거르자가 내 철칙이다.

이건 꼭 데이팅 앱에서 뿐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알게 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확인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데이팅앱이란 게 아무래도 남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아서인지 꽤나 쉽게 매칭이 된다.

내 생각에 그들은 일단 어지간하면 다 스와이프를 하는 것 같다.

암튼 나는 심사숙고를 하고 또 해서 몇 명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첫 번째 데이트 상대는 독일인으로 나랑 동갑이었다. 수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보다 어려 보여서 조금 놀랐다.

아마 모자를 쓰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어쩌면 머리가 벗어지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일단 모자를 쓰고 있으면 한 번쯤 의심을 해봐야 한다.

그는 예의 발랐고 다정했다. 특히 그의 눈은 뭐랄까 멜로눈깔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대화할 때마다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데 그 눈빛이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해서 사실 좀 설렜다.

객관적으로 잘생긴 편이었는데, 이런 남자가 왜 데이팅앱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멀쩡했다.

알고 보니 삼 년 사귄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 삼 개월이 되었다고. 확실히 독일은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면 단번에 끝인 것 같은 게 주변에서도 꽤나 많이 목격했다. 오 년을 사귀었든 어쨌든 헤어지기로 한 이상 다시 만날 여지는 서로 두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얼른 회복하는 데 더 집중한다.

독일은 데이트 때 더치페이를 한다고 알고 있어서 현금을 준비해 갔는데, 내가 먹은 부분에 대해여 지불하려고 하니 그럼 네가 다음에 사면되지 하며 그가 계산을 다 하였다.

산책만 하고 헤어질 수도 있었는데 근사한 곳에서 저녁도 먹고 그가 계산을 했기에 좋은 신호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바로 헤어지지 않고 다시 산책을 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더 나눴는데,

계속 나에게 데이팅앱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 묻는 거다.

나는 아까 분명 얘기한 것 같은데, 다른 문장으로 같은 질문을 중간중간 계속하는 게 아닌가

첨엔 내 독일어가 시원찮아서 얘가 내 말을 잘 이해를 못 했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는 나의 의중을 나름 젠틀하게? 알고 싶었던 것이다.

섹스의 가능 여부에 대하여.

아무리 데이팅 앱이 암묵적으로 그런 목적이 있다고 한들 나는 그래도 이렇게 첫 만남에 그러는 줄을 몰랐지.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다음에 또 산책을 하자며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했지만 그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아니 그럴 거면 번호는 왜 묻고, 산책은 또 왜 하자고 한 건지 허허.

독일사람들 직접적이고 맘에 없는 말은 안 한다고 들어서 좀 의아하긴 했지만, 나름의 예의 혹은 체면을 차리고 싶었던 것 같다.

암튼 이렇게 나의 첫 데이팅 앱의 첫 데이트는 이렇게 안전하고 유익? 하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