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프림의 베블렌 마케팅
'수요보다 1대 적게 팔아라'
슈퍼카 페라리(Ferrari)의 철학이다. 이 말은 단순히 적게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필요할때 언제든 살수 있다면, 필요 이상으로 살 수 있다면 지금 사야할 이유도 설렐 마음도 없다.
지금 사지 않는다면 돌아서는 즉시 마음 속 구매 욕구는 증발된다.
경제용어로 인플레이션은 물건의 가격(물가)가 오르는 것, 디플레이션은 물건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뜻하는데, 유감스럽게 요즘은 디플레이션의 시대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제품들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소비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소비를 미룬다. 이러한 시대의 지상과제는 지금 파는 것이며, 팔지 않으면 처치불가 재고로 남는다는 사업의 기본을 뼛속에 또 새기는 것이다. 물건이 과다한 시대에 재고만큼 재앙은 없다. 많은 회사들이 재고를 회사를 죽게 만드는 암덩이에 비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수요보다 적게, 사고 싶을때 모두 팔아야 한다. 생존의 제1법칙이다.
'지금 여기서 모두 판다'는 Now sell 전략을 가장 잘 실천하는 교과서 같은 브랜드가 있다. 바로 슈프림(Supreme)이다.
‘슈프림Supreme’ 은 L.A. 출신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가 뉴욕 스케이트보더를 타깃으로 출시한 브랜드인데, 비싼 가격과 한정된 유통채널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선 핫한 브랜드로 유명하다. 언론들은 창업주 제임스 제비아를 ‘맨해튼의 킹핀king pin’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다. 1994년에 문을 연 이후로 25년이라는 시간동안 강력한 컬트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의 전설이다.
이 회사가 수요보다 적게, 완전히 제품을 완판시키는 것을 보면 거의 묘기에 가깝다.
슈프림이 어느 날 벽돌을 만들었는데 그조차 완판되었다는 것에는 할말을 잃을 정도다.
30달러에 팔린 슈프림로고벽돌은 재판매 사이트에 100달러 ~ 999달러까지 팔린다. 그렇다면 당초 이 것을 비싸게 팔면 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바로 그 차이가 슈프림과 일반브랜드와의 사고의 차이다.
슈프림은 과도한 가격을 취하지도, 더 많이 팔기 위해 브랜드의 자리에서 내려오지도 않는다. 지켜야 할 선을 알기에 그들은 지금도 슈프림이다.
일반적으로 가격과 공급의 법칙에서 가격이 오르면 사고 싶은 사람은 줄어든다. 따라서 일반적인 브랜드는 가격을 내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판매하려고 한다. 작은 수요 하나도 잡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판매점에 내놓고 온라인에서 까지 쉽게 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한다. 하지만 이런 열렬한 구애에도 소비자들은 얼음처럼 냉정하기 그지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의 시기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슈프림은 절대 수요 이상을 팔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부 파는 것이며, 고객들의 요구가 모두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모두의 연인은 어느 누구의 연인도 아니라는 속담에 여기도 적용되는 걸까.
그렇다면 슈프림의 전략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다시 가격과 수요의 곡선을 돌아가보자.
우리는 가격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한다.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감소하지만 가격이 기대하는 수준이상으로 크게 올라가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한다.가격이 올라갈 수록 더 쉽게 팔리는 현상. 우리는 이런 현상을 슈퍼카라던가 초프리미엄 가전에서 종종 본다. 두번째는 수요측면이다. 공급보다 수요가 부족해지면 사람들은 안달을 한다. 줄을 서고 그 제품을 손에 넣었을때 크게 기뻐하며 소중하게 그 제품을 즐기며 만끽한다.
이 두가지를 묶어 베블렌 효과 (Veblen effect) 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이 처음 이야기한 개념으로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다이아몬드와 같이 귀하고 비싼 제품에 적용이 된다고 하여 과소비 현상과 같이 이야기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우리는 종종 돈을 줘도 살 수 없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우정, 사랑, 부모님, 자녀 등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것들은 무척이나 많다. 물건의 경우에도 물질적 가치 이상의 정신적 가치와 철학은 인정받는 경우 가격을 초월하는 경우가 가능하다.
슈프림은 11개의 소매점만을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도 판매단위를 철저하게 제한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1인당 1개씩 밖에 살 수없다. 따라서 이들이 제품을 내놓으면 몇분, 또는 몇초만에 온라인에서 완판된다.
결국 슈프림은 단 1개의 재고도 남기지 않으며 완판시키면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다. 중요한 것은 모두 팔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뿐한 몸으로 다시 다음번 전투를 준비한다. 납덩어리같은 재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다시 뛰어야 하는 기업들과의 경쟁은 보나마나다. 슈프림 같은 기업은 더 좋은 디자인 더 좋은 컨셉의 제품을 연이어 내놓을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재고를 처리하느라 그럴 여유조차 없다.
슈프림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뉴욕 뒷골목 스케이트 보더'라는 아웃사이더에서 출발한 저항, 신선함, 도전과 같은 컨셉 그리고 '질이 좋아야 팔린다'는 품질기본주의 등 그들만의 초기 정체성을 지금도 지켜내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컬트브랜드이면서 브랜드중의 브랜드로 여전히 대접받는 이유다.
슈프림은 2017년 10월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에서 5억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사람들은 슈프림의 장기인 이 베블렌 전략이 이제 용도폐기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하지만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전략을 쓰냐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를 원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늘리느냐이며 이들에게 매출 욕심에 휘둘려 자신들의 정신을 싸게 팔아 넘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영혼 없이 파는 순간 영혼은 산산히 쪼개지기 때문이다. 슈프림이, 역사상 많은 기업들을 쓰러뜨린 '싸게 많이'의 유혹에 변함없이 꼿꼿하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