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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노 Jan 04. 2020

옷이 아니라 피부, 기타가 아니라 기쁨을 판다

샐프리지 백화점과 팬더 기타 


fender guitar domo


동양란을 고를 때 매우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잎의 색깔을 보지 않고 뿌리의 상태를 집중해서 보는 것입니다.


초심자들은 잎의 색깔과 윤기에 현혹되어 난을 덥석 집어 들지만 전문가들은 뿌리를 샅샅이 살핍니다. 줄기에 흰 뿌리가 3~4개 정도 붙어 있어야 하고 상처나 검은 얼룩이 없는 것을 최고로 칩니다. 잎이 아무리 예뻐 보여도 뿌리가 부실하면 절대 사지 않습니다. 과일 묘목을 고를 때도 가장 중요한 원칙이 뿌리는 보는 것입니다. 잔뿌리가 많아야 안착하기 쉽다고 판단합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상대적으로 봤을 때 실용적으로 결과를 내는 응용과학, 실용 과학에 비해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기초과학이 뿌리입니다. 그러나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은 선진국이나 하는 사치로 보입니다.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 대학교(OIST)의 팀 헌트 교수는 공공연히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럭셔리 Luxury, 사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필수적 럭셔리인듯합니다.  실제 노벨과학상 수상 기술은 보통의 이익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전 세계 최대 제약 시장인 미국에서 약 17조 원이 팔려 판매 1위에 오른 '휴미라'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조지 스미스와 그레고리윈터 교수 덕분에 만들어졌습니다. 팀 헌트 교수의 말로 생각하자면 당장 없어도 되고 필수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제품들이 사치재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정작 그 세상을 바꾼 기술들은 처음에 사치재의 카테고리에서 시작합니다.


럭셔리는 배척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대체 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주목하는지 그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그것이 시간이 지나 대중 시장으로 올 때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물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뿌리 사고의 하나입니다.
영국 백화점 브랜드 셀프리지 (Selfridge)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매장은 '보디 스튜디오'입니다. 마치 헬스클럽 이름처럼 들리지만, 이곳은 의류 편집매장입니다.


셀프리지 백화점


기존에는 란제리, 운동복 등 기능적인 측면으로 매장이 나누어져 있었다면 보디 스튜디오가 매장을 정의하는 방식은 좀 다릅니다. 보디 스튜디오는 옷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객의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피부에 닿는 감촉, 입술에 닿는 감촉, 머리에 닿는 감촉이 중요합니다. 자신들의 정의를 고객 입장에서 완전히 다르게 정하자 취급하는 품목이 엄청나게 확대되었습니다. 보디 스튜디오는 현재 속옷, 잠옷, 수영복에서부터 액세서리까지 피부에 닿는 모든 의류를 팝니다. 피부에 닿는 것이니 품질은 당연히 기본입니다. 또한 셀프리지의 보디 스튜디오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푸드 전문 작가가 균형 잡힌 식사를 구성해주기도 하고 셀레브리티들의 헤어디자이너가 직접 머리를 손질해 주기도 합니다. 옷이라는 열매가 아니라, 고객의 피부라는 뿌리를 보기 시작하자 완전히 다른 시장이 열린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블루레몬처럼 단순히 에슬레저 스타일의 옷을 파는 것이 아닌 고객에게 맞춤형 경험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같이 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요즘 대두되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특징입니다.
‘펜더’(Fender Musical Instruments Corporation)는 세계 최고의 기타, 베이스, 앰프 및 관련 장비 제조브랜드입니다. 이들은 그간 자신들의 확고한 제품 철학에 입각한 정도 마케팅만 해왔습니다. 할 수 있는 혼신의 기술력을 다 동원해 새로운 기타를 만들고 진열대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소비자들을 기다렸고 매장에 온 손님들에게 정열을 다해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전략 계획을 수립하거나, 소비자 타겟팅을 하거나 캠페인을 진행하여 소비자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자신들이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뿌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뿌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팬더 기타

어느 날 마케팅 담당자는 모바일로 한 여성 기타리스트의 소셜 미디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와 팬들은 SNS 대화를 통해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진지하고도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펜더는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그들의 사명은 기타만 잘 만드는 게 아니란 것을요. 기타와 음악을 사랑하지만, 아직 펜더를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소명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진정한 기타를 연주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펜더의 미션을 “기타 치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여성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인 Nik West가 Fender 베이스를 연주하는 비디오 영상 뒤에 홍보하는 등 적극적으로 SNS상에 어필해나갔습니다. 단순히 좋은 기타를 만들고 판매로만 지나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는 기쁨이라는 ‘뿌리’를 통찰한 순간 회사의 새로운 미래가 열렸습니다. 단기간의 매출과 성과에만 집착하는 '열매 사고'는 오래가기 힘듭니다. 이제는 근원에 집중하는 '뿌리사고'를 할 때입니다. 올곧은 고집으로 나아가는 뿌리 사고는 장기적으로 반드시 승리합니다.



당장의 매출 욕심에, 눈앞의 고객을 잡고자 우리는 본질을 외면하고 달콤한 마케팅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는 뿌리를 보지 않고 색깔 좋은 난의 잎만 보거나, 빨간 열매만을 탐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과 같습니다. 칙칙하고 흙투성이인 뿌리야말로 푸른 잎과 빨간 열매를 매년 열리게 할 수 있는 근원인 셈입니다. 결국 잎사고, 열매 사고가 아닌 뿌리 사고가 가장 오래갈 수 있는 정공법입니다. 인기가 높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는 정말 다양하게 어려움에 처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기 매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재료의 단가를 낮추고 더 빠른 테이블 회전을 위해 “빨리빨리”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을 보다보면 매출에 급급한 ‘열매 사고’라는 개념이 절로 떠오릅니다. 반면 성공리에 솔루션 처방이  끝난 '변신식당'들은 재료의 가격보다 신선도와 맛을 신경 쓰며, 많은 손님이 밀려와 벅찰 때도 억지로 음식을 더 만들어내지 않고 한정된 음식만 파는 등 속도를 조절합니다. 너무 지친 몸으로는 최선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기 다는 평범하고도 무서운 진리를 알고, 눈앞의 이익보다 더 멀리 보기에 오히려 장기적으로 롱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매가 아니라 계속 열매를 맺기 위한 뿌리를 키우고 있는 건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by 이동철 (하이엔드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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