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비를 그리고, 엄마는 비를 쓴다.
내 딸아, 너는 비를 네 마음대로 표현하렴
친정엄마께서 그린 그림에서 나의 마음을 바라보다
친정엄마는 유난히 꽃을 많이 그리신다.
그러나 수북한 꽃그림들을 뒤로하고,
어느 날 내 눈에 띈 그림 한 점.
비 오는 날 여인의 뒷모습에 시선이 멈추었다.
그림 속에 나의 이야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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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걸어가는 그녀 앞에 비가 내린다.
모처럼 만에 끈 달린 원피스로 기분을 낸 그녀가
흥건한 물 앞에서 어떻게 걸어갈지 생각 중일까.
가야 하는 목적지를 생각하니 아찔하고,
발에 물이 들어와 질척이는 기분 탓에
한발 더 내딛지 못하고 멈춤하고 있는 것 같다면,
그 걱정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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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는
빗소리의 반가움에
준비해 두었던 샛노란 우산을 펴고 나섰다.
오늘은 살짝 젖어도 좋다며 가벼운 옷을 입었다.
투명 우산을 가져올 걸 그랬나 싶단다.
비가 더 좀 내리면 투명 우산을 창문 삼아
안에서 또로록 흐르는 비를 바라보게.
가끔은 빗소리도 제 마음을 터놓고 싶다는 것 같아 종종 비오기를 기다려주는 그녀다.
비가 세차면 세찬대로,
주르륵 내리면 흘러내리는 대로,
천둥과 함께라면 더 마음이 타서 그런가 싶어서
그녀는 투정 없이 비를 지켜봐 준다.
준비된 우산으로 비를 받아내며
그렇게 원 없이 마음을 쏟아부어라
기다려준다.
그리고 날이 개일 때즈음
그녀는 살짝 이야기해 본다.
비,
네가 와줘서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걸 아느냐고.
너무 날이 맑으면 내 마음 한 편의 소리가
너무 잘 들릴세라 시원스레 열지 못하다가
비, 네 소리에 묻어 내 마음을
편하게 쏟아낸 걸 아느냐고.
네 덕분에 네가 다시 올 때까지
개운하게 잘 살아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