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우리를 속상하게 한다. 하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기 일쑤다. 사회는 진실을 가리고 좋은 것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곳곳에 널린 행복은 어찌 된 일인지 좀처럼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행운의 여신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편에 서곤 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곧잘 되는데 나는 안된다. 그뿐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기까지 씻고, 먹고, 마시고, 입고, 용변을 보는 등 많은 일에서 충분히 품위 있고 존중받지 않으면 상황은 즉시 문제로 발전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있으면 좋고, 남들보다 조금 더 괜찮게 입으면 좋은 이 세계에서 늘 기분 좋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은 때로 삶에 대한 실망으로 다가와 우리의 의욕을 사그라들게 한다. 멈추어 보고 싶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그다지 담기고 싶지 않지만 담길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그래도 우리는 성장과 발전을 꿈꾸며 살아간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더 높은 곳을 향해 참고 견디고 나아가다 보면 마음에 노폐물이 쌓인다. 우리가 불안, 좌절, 무력감, 우울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우리는 아직 그런 마음의 불청객들을 처리하는 방법에는 뜻밖에 서툰 편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삶에 무기력은 그렇게 찾아온다.
삶은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인내는 사회가 우리에게 한결같이 가르치는 소중한 가치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성품이다. 인내는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 인내는 역경을 이겨내고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자기 조절능력이다. 욕구 충족을 훗날로 미루고 원치 않는 행동이나 충동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려움 속에 처해 견딘다는 점에서 ‘무기력’은 인내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인내는 어려운 상황 속에 우리를 자발적으로 머물게 한다. 인내는 목표를 향해 정서적 능력을 발휘하는 상태이고, 무기력은 어려움에 대처할 만한 능력이 없는 상태이므로 겉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마음속 상태는 전혀 다르다. 지금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어 인내하는 중인지, 아니면 무기력한 상태인지 분별해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좋은 생각이다. 삶은 곧잘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탠포트 대학의 월터 미셀 교수팀의 유명한 실험이 있다. 마시멜로 실험이다. 실험은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한 개를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부 아이들은 즉시 마시멜로를 먹었고, 일부는 15분을 기다려 추가 보상을 받았다. 이후 연구에서는 인내심을 가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학업 성적과 SAT 점수가 더 높고, 스트레스와 좌절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을 통해 월터 미셀 교수팀은 인내심이 어린 나이에 형성되며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와 같이 충동을 누르고 목표를 지향하는 인내는 무력감과는 다르다. 인내는 자발적인 자기 규제에 해당한다.
서커스단의 코끼리 발목에 밧줄을 걸어 약한 기둥에 묶어 두면 기둥을 뽑아 도망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리고 연약할 때부터 밧줄에 묶여 살아오면서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무기력한 생각이 각인된 채 성장해 버린 결과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교수는 1975년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개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무기력을 어떻게 학습하는지 밝혔다. 연구팀은 개를 닫힌 공간에 가두어 놓고 전기 자극을 가했다. 개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전기 자극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부터는 전기 자극이 주어져도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해 봐야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서 똑같이 전기 자극을 가했다. 개들은 고통스러운 공간에서 탈출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무기력을 학습한 것이다. 설사 자기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무기력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에 걸쳐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반복적으로 실패가 확인된 사건에 대해서는 재시도하지 않고 포기하게 된다. 기껏 해봐야 다시 실패할 것이므로 그런 일을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역스러운 상황을 쉽사리 단순히 참고 견딘다. 우리 사회는 인내를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나 단순히 체념적으로 참고 견디기만 하는 것은 무기력한 개들에게 가해진 전기 충격과 비슷하게 무력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람 역시 그런 과정으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멈추어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가치 있는 것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