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Sep 30. 2023

놀이기구 타기 좋은 날


동호가 버튼을 누르자 '끼릭끼릭'하는 날선 효과음과 함께 출입구 덮개가 올라 올라갔다. 오전 7시. 풀숲이 무성한 유원지 주변은 조용했다. 귀신이 나올 것처럼 스산했다. 동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열쇠를 꺼내 매표소 문을 열었다. 매표소 앞에는 '해피 유원지'라는 노란색 글자가 박혀 있었다. 세상 최고로 행복했던 사람도 매표소 간판만 보면 불행해질 정도로 녹슬고 볼품없는 간판이었다. 매표소를 정리하던 동호는 멜론 앱을 켰다. 첫 노동요는 애프터스쿨의 데뷔곡인 'Ah'로 정했다. '이렇게 둘이, 너와나 둘이, 언제나 우린 달콤한 이야길 하고파...' 이 놀이공원이 문을 열었던 2009년, 당시 초등학생 이었던 동호가 TV에서 듣던 노래였다.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동호는 '해피 유원지' 개장식을 똑똑히 기억한다. 석탄 수요량 급감으로 전국 각지(특히 강원도)에 퍼져있는 광산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정부는 동호네 지역의 광산도 폐쇄 조치했다. 광부였던 동호네 아버지도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동호는 오히려 좋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손톱에는 까만색 석탄가루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손으로 자신을 끌어안는 아버지가 싫었다. 정확히는 그 스산한 철냄새가 싫었던 거다. 아무튼 아버지는 큰 돈을 위로금 명목으로 받았지만, 한순간에 먹고 살 수단이 사라진 시골마을은 심하게 분주했다. 사람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서울까지 가서 시위도 했다. 동호는 '이제와서 폐광이냐 정부는 각성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엄마 아빠의 뒤를 따라야 했다. 


총선을 코앞에 둔 강원지역 국회의원들의 압박으로 정부는 결국 새로운 대책을 내놨다. 동호네 지역에 놀이공원을 만들어 새로운 관광벨트로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누가 자연농원(현 에버랜드)과 롯데월드 등 근교 유원지를 버리고 강원도 두메 산골까지 청룡열차를 타러 오겠느냐는 반대도 있었지만 당시 지역균형발전과 폐광 지역 경제 살리기라는 미묘한 두 가치가 어우러지면서 정부는 놀이공원 조성에 속도를 내게 됐다.


자본이 문제였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놀이동산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조성할 여력이 없었다. 안그래도 예산이 적은데 왜 저 지역에만 특혜를 주느냐는 비판도 우려됐다. 그때 한 복지가가 나타났다. 강원도 출신인 이 기업가는 섬유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고 했다. 모든 비용은 자신이 제공할테니 정부는 행정처리만 신속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조성 결정 4년 만에 해피 유원지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개장식엔 대통령과 강원지사, 그리고 돈을 댄 기업가 까지 참석했다. 대통령은 "이 유원지가 지방과 중앙을 잇는 하나의 가교가 될 것"이라며 "에너지 산업 변천이 낳은 새로운 기회의 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도 안 무서운 높이의 바이킹을 타며 대통령은 환하게 웃었다. 옆은 물론 아이들로 채웠다. 동호는 대통령 뒷자리에서 목이 떨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놀이공원 내 박물관은 고마운 기업가의 이름이 붙었다. '김봉철 박물관'. 그게 그의 이름이었다.


야심차게 문을 열었지만 놀이공원은 사실 별거 없는 규모에 그저 그런 기구 뿐이었다. 바이킹, 소규모 콜러코스터, 청룡열차, 범퍼카, 회전목마 등등. 있을 건 다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초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해피 유원지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위치해있었다. 이에 리프트와 관람차가 오히려 인기였다. 동호는 중학생 때 처음으로 관람차를 탔다. 너무 느려서 그다지 재미가 없었지만 꼭대기에 오르자 동호네 도시전경이 그대로 내려다 보였다. 그래봤자 다 초록색이었지만. 동호의 추억은 그렇게 이 유원지와 함께였다. 동호는 방학 때마다 이곳에서 알바를 했다. 안 해본 알바가 없다. 청소부터 바이킹 작동 알바, 동물원 청소까지 했다. 


시간이 흐르자 전국의 관심을 받던 이 해피 유원지도 점차 쇠락해갔다. 동호에게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동호의 아버지는 폐광 위로금으로 땅을 사자던 아내의 조언을 뿌리치고 친구의 사업에 투자했다가 돈을 홀딱 날렸다. 매일 매일 술로 지새던 그는 동호를 앉혀놓고 탄광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누가 깔릴 뻔했던 것을 날렵하게 구출했다든지, 조난을 당했는데 30여시간을 버텨냈다는 얘기였다. 그러다 동호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밤 도로를 거닐다가 차에 치여 사망했다. 공교롭게 발견된 지역이 해피 유원지 바로 앞이었다. 울부짖던 동호의 어머니는 친정인 경북으로 함께 내려가자고 했다. 이 마을보다 더 깡촌인 곳이었다. 


근처 대학을 다니던 동호는 망설이다 일단 여기 남겠다고 했다. 학업은 끝내야 되지 않겠느냐는 핑계였지만 더 시골로 가기가 일단 싫었다. 정부가 지방 국립대 명목으로 학비는 어느정도 지원을 해줬지만 생활비가 문제였다. 결국 군청에 수소문해 이 유원지 매표소 알바 자리를 다시 구했다. 동호도 이 유원지를 가지 않은지 꽤 된 시점이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차를 몰고 수년만에 유원지 주차장에 도착한 동호는 황폐화된 놀이공원의 모습에 놀랐다. 매일 수천명이 드나들던 출입구는 아주 조용했다. 매표소로 향하자 무표정한 중년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아 연락주신 알바죠?" 매표소 한쪽에 놓여있던 그의 휴대전화에는 한 RPG 게임 자동사냥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인수인계는 금방 끝났다. 남성의 설명에 따르면 하루 방문객은 100명 내외였다. 오전 8시에 개장해 오후 10시까지 숨가쁘게 돌아가던 이 곳은 이제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문을 연다.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 청룡열차 등은 이미 수지가 맞지 않아 폐장됐고 관람차와 범퍼카, 회전목마 정도만 운영하고 있었다. 전체 직원은 20명 내외였다. 해피 유원지를 후원했던 김봉철 씨의 회사도 쇠락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언제 이 놀이공원이 문을 닫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호는 적잖이 놀랐지만 그냥 매표소에 앉아 있으면서 토익공부도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도 틈틈히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매표소 남성은 읍내 치킨집을 오픈했다며, 놀러오라고 권한 뒤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전임자의 말대로 놀이동산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가끔 근황 유튜버 등이 찾아와서 놀이동산 내부를 찍겠다고 해서 실랑이를 벌이거나, 만취한 중고등학생들과 충돌한 적도 있다. 또는 누가봐도 불륜인 중년 커플이 종종 왔다. 그들은 관람차 등에서 끈적한 애정행각을 벌여 몇 없는 관람객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동호가 할일은 별로 없었다. 운영하는 기구들마다 알바가 따로 있었고, 기구 정비사 등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호가 무료한 알바 생활을 두 달쯤 했을까. 그날도 오후 3시 20분 정도까지 매표소를 지키다 폐장 준비를 하려고 일어난 참이었다. 이미 직원들은 다 퇴근한 참이었다. 유튜브에 몰입하다가 퇴근 준비가 늦어졌다. 그때 누군가 매표소 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돌린 동호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남루한 복장의 노인이 기묘하게 웃으며 손으로 출입문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호가 "영업이 끝났다"고 하자 그 노인은 "새로 온 알바시구나. 저는 이 놀이공원을 만든 김봉철이라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동호의 기억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 말쑥하고 점잖던 김봉철 아저씨. 폐광 지역의 희망으로, 도청과 군청에서 감사패를 만들어 전달하고, 지역신문 1면을 장식하며 일부 지역 학교에선 그를 초청해 꽃다발까지 전달했던 그 김봉철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은 눈과 시원시원한 콧날, 웃는 얼굴형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럼 이 놀이공원의 주인이신 겁니까?"

"말하자면 그렇지요."

"아 그런데 지금 저희가 영업이 끝났는데.."

"제가 가끔 이렇게 영업 이후에 와서 유원지 상황도 점검하고 있습니다. 전임자가 말씀을 안해주셨나 봅니다."

"아 그럼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될까요?"

"네네 한시간 정도만 보고 나오겠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동호가 문을 열자 김봉철 씨는 지팡이에 의지해 발을 절뚝이며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동호는 그 노인을 의전하며 함께 내부를 돌아야 할까 생각했지만 김봉철씨가 필사적으로 만류했다. 동호는 일단 매표소에 앉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김봉철을 검색했다. 암울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가 경영하던 섬유회사는 국내외 경쟁업체에 밀려 도산 직전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법정관리만 남은 상태였다. 일부 이사진은 놀이공원 같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너무 많이 쓴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놨고 김봉철씨는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언론은 한물 간 독지가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동호는 그가 좀 불쌍하고 측은하게 생각됐다. 이제 그에게는 남은 게 이 곳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다.


한시간이 흘렀는데 김봉철 씨는 출입구에 나타나지 않았다. 동호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매표소를 나와 유원지 입구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이곳은 행복만 가득한 해피 유원지'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간판을 뒤로하고 동호는 뛰기 시작했다. 폐쇄된 바이킹을 지나고, 청룡열차도 스쳐갔다. 정신없이 뛰고 있는데 저쪽 멀리로 돌아가는 관람차가 보였다. 분명 세워놨는데, 김봉철 씨가 스스로 작동한게 틀림 없었다.


동호가 관람차 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은 벌어져 있었다. 김씨는 형형색색 관람차 가운데 빨간색 관람차에 탑승한 뒤 안전장치에 줄을 묶어 목을 매어 죽어 있었다. 시체를 처음 본 동호는 몇 차례 토악질을 한뒤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김봉철 씨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A4 용지에 자필로 적은 유서였다. 내용은 이랬다.


"놀이공원에 가는 것은 내 오랜 꿈이었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란 나는 한번도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 근처 유원지에 가보니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을 우리 고향의 소년 소년들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중략) 회사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다. 해피 유원지도 공격 대상이었다. 그래도 이 곳 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중략) 누가 발견할지는 모르겠지만 소중한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 이 놀이동산의 마스코트 동상 밑에 얼마 간의 금괴를 숨겨두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 혹은 고객이 이 유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 소중한 곳에서 일하거나, 내 소중한 곳을 찾아둔 대가로 그 금괴를 드리겠다."


동호는 손이 떨렸다. 하긴 김봉철씨가 회삿돈 상당부분을 횡령했다는 소문이 지역사회에서 퍼진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이 죽음을 신고하면 경찰은 아마 놀이동산을 폐쇄하고 수사를 벌일 것이다. 그러면 이 유서도 증거물로 내야 할 테다. 금괴가 발견되면 김봉철 씨의 가족에게 가거나 자칫하면 국고로 회수될 것이다. 동호는 그럴바엔 이 유원지를 어릴적부터 사랑했고, 좋아했고 지금도 이곳에서 일하는 자신이 가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호는 묶여있던 줄을 풀고, 노인의 시체를 들쳐 멨다. 어차피 대부분의 CCTV가 고장나서 증거도 남지 않을 터였다. 동호는 바이킹까지 노인을 들고 와서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놀이동산 뒷편 차량 출입구로 차를 끌고왔다. 동호는 노인을 트렁크에 실은 뒤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후 삽을 들고 동상 앞으로 뛰어왔다. 


동호는 5시간 넘게 동상 앞 땅을 팠다. 하지만 걸리는 건 없었다. 오후 10시가 조금 넘었을까. 잠시 물을 가지러 매표소로 향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동호가 급하게 몸을 숨기자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놀이공원 한가운데에 있던 귀신의 집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동호도 그의 뒤를 밟았다. 남성은 능숙하게 자물쇠를 연 뒤 귀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동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후레쉬를 들고 한걸음 한걸음씩 발을 떼는데 갑자기 그 남성이 동호 앞으로 달려왔다. "자네 후임 아닌가?" 후레쉬를 비추자 동호의 매표소 알바 전임자였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세요? 그만 두셨잖아요"하자 그 남성이 의미심장하게 동호를 쳐다봤다. "김봉철 씨 안 왔었어?" 동호는 눈이 흔들렸다. "누구요? 여기 설립자 김봉철 씨?" 


남성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된거 얘기해줄게. 언젠가 한번 김봉철씨가 왔었어. 자신이 얼마나 이 놀이동산을 사랑했는지. 그러면서 나한테만 비밀을 말해준거야. 지금은 문을 닫은 귀신의집 지반 바닥에 금괴를 숨겨놨다고. 그말을 듣고 내가 몇년간 폐장 시간 이후에 여기와서 바닥을 판거야." 실제로 바닥쪽 나무는 다 뜯어져있고 흙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그런데 나 혼자하니까 도저히 진척이 안되는 거야. 협동이 필요한 시점같아. 혹시 같이 한번 파보지 않겠어? 금괴가 나오면 우리 둘이서 나눠 갖자고. 그쪽 섬유회사쪽에 물어보니 김봉철 그 양반이 횡령한 돈이 한두푼이 아니라는 거야. 가족한테도 하나도 안 나눠줬고. 그게 다 어디있겠어? 자신이 사랑했던 여기에 묻혀있는거지."


동호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금괴가 당췌 귀신의 집에 있는지, 동상 밑에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이 남자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 남자가 내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네 좋아요. 대신 오늘은 이정도로 하고 내일 개장도 해야 하니까. 일단 집에갔다가 내일 폐장 후에 다시 여기서 만나기로 해요." "비밀은 꼭 지켜. 널 위해 특별히 알려주는 거니까."


동호는 귀신의집 밖으로 쫓기듯 나왔다. 매표소를 나와 차에 탔다. 트렁크에 있는 저 건 어떻게 하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금괴는 정말 있는 걸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 걸까. 나말고도 저 노인네가 여러 직원에게 참인지 거짓인지 정확치도 않은 정보를 흘린건 아닐까.. 떠나는 동호의 뒤로 '해피 유원지'라는 간판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사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