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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pr 20. 2024

서울대서 강의하고 온 날


엊그제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서울대학교 본캠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왔다. 철학 관련 교양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께서 언론 자유의 의의와 실천에 대해서 강의를 부탁하셨다. 학생들과 함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있는데 그와 접목해서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사유를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좀 부담이 됐다. 우선 내가 누구한테 뭘 가르칠 역량이나 깜냥이 되지 않고, 또 강의 대상이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 서울대 학생들이라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서울대학교 안에 들어가 본적이 한번도 없었어서 구경도 해보고 싶었고, 젊은 학생들의 언론관이 어떠한지도 궁금했다. 매일매일 일에 치여서 제대로 연습도 못해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서울대 인문관으로 향했다.



참 서울대는 크고 넓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갔는데도 인문관이 잘 안 보였다. 헤매다가 자하연이라는 분수대까지 갔다가 겨우 길을 찾아서 강의실에 들어섰다. 5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교양수업이라 경제, 경영학과나 언론정보학과 등 철학과가 아닌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교수님이 내 소개를 했고, 드디어 강단에 섰다. 머리속이 백짓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앞에서 보니 학생들은 엄청 앳되어 보였다. 눈이 모두 초롱초롱했다. 이미 기에서 눌려서 혀가 바싹 말랐다. 그래도 강의를 맡겨주신 교수님께 누가 되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차분히 강의를 시작했다.



목차는 이랬다. 우선 언론 자유를 논하려면 매일매일 기자들이 어떤 기사를 어떻게 발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기자가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한다는 말 자체의 어폐를 지적하며 시작했다. 우리가 국민들 맘속으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모집단이 너무나 많은데 그들의 관심을 어떻게 정확히 알겠는가. 그저 기자나 언론이 관심가는 사안을 찾아보면서 저런 수식어구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사건 기사의 경우 읽었을때 분노를 유발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배웠지만 이것도 100% 맞는 얘기는 아니다. 연말정산이나 부동산, 세금 등은 국민들이 매우 궁금해하는 실생활 사안이고 정치 관련 기사는 무조건 많이 읽힌다. 한국인은 정치과잉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기자들은 매일 기사를 발굴해내고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질문. 언론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하는가? 객관성이랑 주관성을 배제한채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올바르게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언론의 객관성이란 기자나 언론의 주관을 빼고, 정부가 발표하거나 하는 사안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될 테다. 나는 이런 객관성은 언론 생태계에서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부가 전국민 대상 재난지원금을 뿌린다고 가정해보자. A언론은 나라 곳간을 걱정하며 이를 비판할 테고, B언론은 경기부양이나 지친 국민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정책이라고 옹호할 것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기사를 쓸 것이다. 객관성을 담보하려면 이런 주관을 다빼고 정부 발표만 쓰고, 판단은 여론에게 맡겨야 한다. 나는 그런 천편일률이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태가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반면 공정성은 공평하고 올바른 성질이다. 언론의 공정성은 중요하다. 만약 선거 시즌에 여야 관련 기사를 쓸 경우 여당 부분을 3매로 썼으면 야당 부분도 3매 정도로 맞추는 식이다. 언론 특유의 논조를 담아 기사를 쓰되 그래도 공평한 분량 할애 등을 통해 공정하게 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강의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어느 매체가 그나마 읽을만한가?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 학생은 열심히 참여해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그는 디스패치라고 했다. 비록 연예 기사지만 발로 뛰어서 그들만의 단독 기사를 내놓기 때문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몇달간 잠복하고 하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열애 기사를 찾아낸다. 그 열정을 사회나 정치분야에 접목하면 더 좋을것 같지만 그래도 열심히 저널리즘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그 학생의 말에도 일리가 갔다. 

 


다음으로 한국언론의 자유도를 논의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47위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 10대 대국인 우리나라의 위상과 비교하면 낮은 기록이다. 


나는 일괄적으로 한국 언론의 자유를 해치는 주체 5개를 꼽아봤다. 우선 정권이 있다. 또 기업과 국회, 검경 등 수사기관, 일부 여론도 한국 언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청와대에 나가던 시절, 나쁜 기사를 쓰면 바로 수석이나 비서관이 전화와서 그 의도나 배경을 궁금해했다. 제목도 고쳐달라고 했다. 나는 저연차여서 청와대와 싸우면 우리 회사가 어마어마한 손해를 볼것이라 지레짐작하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 했던 기억이 난다. 언론사 매출의 60%가 광고가 된 상황에서 대기업의 입김은 상당하다. 나쁜 기사를 쓰면 광고를 끊고 압박해 온다. 국회의원들은 사진 바꿔달라, 내 이름을 더 앞에 써달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민원을 한다. 검찰과 경찰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기자들에게만 사건을 흘린다. 그런식으로 출입 기자들을 길들인다.


언론자유를 해치는 가장 큰 주체는 여론이다. 황우석 사태 당시를 떠올려보자. MBC PD수첩이 첫 의혹을 제기 했을때 황우석 팬클럽은 MBC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황우석의 성과를 질투한다며 맹공했다. 마치 중국의 문화대혁명 같은 광기 속에서 언론은 맞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다만 언론 자유를 위해선 언론 윤리가 전제돼야 한다. 배우 이선균씨 사망 당시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사가 계속 인터넷을 자극시켰다. 본질에서 벗어난 기사였다. 전청조와 남현희 사례에서 왜 언론은 국민들이 알지 않아도되는 성생활 문제까지 끌어 올렸나. 기사를 하다가 기업 임원으로 넘어가거나 정치권으로 직행한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전화해서 기사 수정을 비롯한 이것저것을 요구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까지 지적할 마음은 없으나, 그들도 어찌보면 언론 자유를 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인문관 전경 


그렇다면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경청하는 것이다. 다양한 정치주체의 자연스런 요구와 목소리를 포용하는 것이다. 언론 자유도가 커지면 당연히 민주주의 확립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윤리를 저버린 언론이 자유를 내세우며 특정 정치집단이나 누군가를 모욕하고 폄하한다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퇴보할 수 있다. 그러니 윤리를 지키는 언론에 한해 자유를 논할 권리를 줘야 한다. 한국기자협회가 기자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있지만 구속력이나 강제력이 없다. 2021년 언론 윤리 확립을 내세우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상정돼 세간을 뜨겁게 달궜지만 결국 폐기됐다. 언론 자유를 해칠수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다양한 가치 속에서 언론 자유와 윤리 문제는 쉽게 규정하거나 마무리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한시간 반 가량 이어진 강의를 마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사실 제가 이렇게 강의를 할 주제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세월호 사태 이후 기레기라는 말이 통용됐다. 독자들이 더 똑똑해서 언론을 잘 믿지 못하고, 주체적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언론사 경영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고 미래가 없다는 말도 들린다. 기자 지원자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기자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기성 레거시 언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중간쯤 앉은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는 않지만 온라인으로 신문 기사를 소비하고 있다.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는 지금에도 이를 보기좋게 정리하고, 확인된 팩트를 쓰려고 노력하는 기성 언론에 대한 수요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기자분들이 더 분발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순간 약간 울컥했다. 이렇게 젊은 학생들도 우리 언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틀리지 않고, 더 열심히하면 된다고 그 어린 학생들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후에도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날씨나 시황기사를 AI가 쓰기 시작했는데 위기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언론사 지배구조는 어떻게 정해지는지, 언론사가 힘이 없어서 언론자유를 해치는 주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힘을 길러야 하는지 등등. 평소 나도 느끼고 있던 언론 현실을 학생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놀랐다. 역시 대한민국 1등 대학이라서 그런걸까..


맨날 서울지방경찰청 기자실에 박혀서 앉아있다가 이렇게 밖으로 나와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니 확실히 리프레시가 됐다. 그들에게서 받은 기를 쟁여뒀다가 또 우리 팀원이나 회사 사람들, 경찰분들께도 그 생생한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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