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Apr 14. 2024

세월호와 나


10년 전 이 맘때 세월호 사태가 터지자마자 진도로 내려갔다. 당시 입사 2년차 사건팀 막내 기자였던 내 역할은 하나였다. 진도군청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였다. 해경과 주고받은 문서, 범정부 합동 대응팀이 매일 어떤 안건으로 회의하는 지 등을 살피라는 지시다. 


매일 저녁을 먹고 해가 어둑어둑해질 즈음 차를 타고 군청뒤편 쓰레기통으로 갔다. 경찰 순찰자를 피해 잽싸게 쓰레기 더미를 챙겨 트렁크와 뒷자석에 싣는다. 숙소로 돌아와 잘라진 종이를 맞춰본다.


3일이 지나자 뒷자석 뿐 아니라 내 몸 전체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숙소 주인 할머니에게는 부모님이 주신 반지를 모르고 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마음씨 좋은 할머니는 자신이 같이 찾아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기자인걸 이미 알고있던 듯 했다.



할머니와 둘이 모텔 로비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조각을 찾았다. 성과도 있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동기 박은애가 찾는 걸 도와줬던 공문 조각 하나가 단독을 달고 기사로 나갔고, 거의 우리나라 모든 매체가 다 기사를 받았다. 해경이 사태 초반 침몰 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았다는 증거가운데 하나였다.


정말 미친듯이 온갖 기사와 단독이 쏟아지던 당시에는 타사와의 경쟁도 중요했지만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찾아 정부를 압박하면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겠지, 하는 순수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사건팀 막내 기자로 맞이했던 세월호 사태가 벌써 10주년이 됐다. 나도 사건팀장이 됐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진도군청을 쏘다녔던 그 옛날 기억을 다시 어렴풋이 떠올려 본다.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그 팽목항의 풍경도 오래된 액자처럼 흐릿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때에 비해 나아지고 있는가를 더 고민해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찰팀장(시경 캡) 발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