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장강명 작가가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을 SNS 상에서 공개 저격한 것을 두고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두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글을 읽으며 평소 온화한 느낌을 줬던 장 작가가 마음속의 응어리를 사자후로 쏟아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2012년 겨울 동아일보에서 인턴기자로 일하면서 먼 발치서 장강명 작가를 몇 차례 본 적이 있다(당시 경제부 소속이셨던 듯 하다). 인상이 좋으셔서 기억에 남았는데, 이듬해 퇴사 후 작가로 승승장구하는 게 멋져 보였다.
아무튼 장강명 작가와 홍기빈 소장이 '팩트풀니스'라는 책(읽어보진 못했다)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이게 언론관 토론으로 비화한 것 같다. 불과 하루전 장강명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주 긴 분량의 글을 올려서 2번 가량 정독한 뒤 내 생각을 좀 정리해보고 싶었다. 우선 장강명 작가의 글을 못 보신 분을 위해 내용은 간략히 정리하면서, 동시에 내 생각을 덧붙여 보겠다.
기자 출신인 장 작가는 한국의 낙후된 언론 구조 상 현장서 뛰는기자들이 완벽한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맞는 말이다. 하루하루 기사를 발제하고, 기사를 막으면 또 다음날 기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분석 기사, 날카롭게 현안을 통찰하는 기획 기사,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단독 기사가 충분히 나오기 어렵다. 수익 구조가 약하고 외국 언론과 비교해 적은 기자 인력으로 신문을 찍어내고 리포트를 만들며 온라인 기사를 쓰는 한국 언론만의 고질적인 병폐다.
수년전 출장에서 만난 일본 아사히 신문 기자와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분은 일주일에 기사를 1~2개 쓴다고 했다. 놀란 내가 "왜 이렇게 조금 쓰느냐"고 하자 그는 "이것도 많이 쓰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사히 신문 소속 기자는 2000명에 달한다. 출판와 인쇄 문화가 여전히 중요한 일본에서 종이신문의 입지는 탄탄하고, 자본 상태도 양호하다. 지면은 한정돼 있는데 기자가 많으니 당연히 매일매일 신문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사건이나 발표 위주로 처리하고, 그 시간에 여유를 갖고 기자들이 한 사안에 대해 심층 취재를 해서 질 높은 기사를 보도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일본과 같은 고품격 언론 문화를 형성하지 못했나? 이건 언론사만의 책임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인터넷 문화, IT 산업의 발전과 함께 기사는 온라인 위주로 소비된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도 최대한 이런 트렌드에 발맞추려 노력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취재, 조판, 편집 과정을 유지하고 있다. 기술 발달로 미디어 대격변 시대가 도래했고, 우리 언론사도 이에 발맞추려 노력하고 있지만 미비한 부분이 있다. 이 가운데 온라인에서 잘 먹히는 연예인, 가십 기사를 쓰면서도 한편에선 레거시 미디어 본연의 권력 비판 기사 류를 동시에 소화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부동산 자본을 소유하고 임대 사업 등을 통해 돈을 벌기 때문에 광고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일본의 일부 유력 매체들과 비교해 대기업 광고로 수익 대부분을 메우는 한국 언론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장강명 작가는 현실 구조 상 완벽할 수 없는 한국 언론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무작정 비판만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장 취재 경험이 없는 언론학자나 언론사 내 취재 부서마다 취재문법이 다른 것도 모르는 시민단체 활동가 등의 언론 비판은 설익은 비판이라고 장 작가는 지적했다.
글의 후반부 내용도 비슷한 결로 이어진다. 대형 사고가 터졌을때 언론은 여러 아이템을 가지고 사고를 분석하는 기사를 쓰는데, 이 가운데 '유가족이 받게 될 보험금' 류의 기사도 가끔 포함된다. 당연히 기사들 사이에서 큰 비중은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온라인 기사 송고가 중요해진 지금, 해당 기사는 취재가 더 많이 필요한 다른 기사에 비해 빠르게 마무리되고 온라인에 먼저 뜬다. 그러면 일부는 '사람이 죽었는데 기레기가 이런 기사나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장 작가는 온라인 기사 제목 등은 취재기자가 달지 않는데, 이를 모르는 일부 독자가 기사를 지적하는 점을 지적했다.
장 작가는 모든 현실사안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건 잘못됐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모델은 기초 교육과 교양 공부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언론 기사는 이미 이런 사상적 모델을 갖춘 사람들에게 새 소식을 업데이트하는 역할만 할 뿐이라는 게 장 작가 글의 핵심이다.
일선 언론현장의 고충과 지난함을 잘 아는 장 작가가 기자들을 비호하는 글을 작성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다만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그 순간부터 억울해도 견디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살이 기사를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쁜 건 분명 우리 현직 기자들의 탓은 아니다. 인력 투자 노력 없이 최대한 적은 인원을 걸레처럼 짜내고 짜내 효율을 찾으려는 우리네 언론 매체나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 '한국 언론이 이렇게 힘들어. 그러니까 현실을 좀 알고 떠들라'고 하면 독자나 일반인은 반문할 것이다. '왜 우리가 너네 사정까지 봐줘야 하는데?'
맞는 말이다. 언론들은 아직도 많은 권한과 힘을 갖고 있다. 유력 언론이 각 잡고 한 이슈를 캐고 연속 보도하면 여론과 시국이 그리로 끌려가는 경향이 크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책임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기사를 쓰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제대로 된 기사를 쓰고 있는지, 독자가 어떻게 우리를 평가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러니 녹록치 않은 취재 현실을 어필할 필요는 굳이 없어 보인다.
물론 수용자는 각자의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놓겠지만 그것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기사야 기자의 손을 떠난 이후에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칭송하든, 씹든 그 기사를 읽는 사람의 자유다. '나 이렇게 힘들게 썼는데 좋게 평가해 주세요' 말하는 것도 민망하다. 그저 팩트에 최대한 근접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이다.
장 작가는 아마도 언론에 대한 억울한 공격과 십자포화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언론이 잘못한게 아닌데도 자꾸 언론을 욕하는 세태를 향해 '언론에 모든 책임을 지우지 말고, 언론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식으로 글이 읽혔다. 독자가 먼저 교양을 갖추고, 언론은 세상과 현실을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로만 참고하라는 논리였다.
역설적이게도 난 대중들이 언론에 대해 더 기대를 해줬으면 좋겠다.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나 행정에 실패한 행정가, 정치를 못하는 정치인과 경영을 말아먹은 경영인 등이 언론 탓을 하는 행태를 많이 봐 왔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의 궁여지책은 여론이나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 한건 생각안하고 애꿎은 언론 탓이네' 하고 만다. 그만큼 대중은 스마트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등을 제외하면 독자들이 더 언론 탓을 해줬으면 한다. 그래야 언론도 바뀌고 달라질 수 있어서다. 다수결의 여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기사를 쓸 우려도 있겠지만 여전히 언론은 시민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큰 렌즈 중 하나다. 세상을 바꿀 힘과 권력이 있고, 그러니 권력자들도 언론을 향해 겉으로는 존중의 의사를 표한다. 그러니 수용자와 독자도 편하게 언론을 비판할 수 있다.
아직도 언론은 마음껏 누구를 비판하면서 누군가 언론을 비판하면 견딜수 없어 하는 경향이 있다. 성역을 깨고 싶어하면서 자신은 성역안에 가둔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일 것이다. 내가 옳다, 내가 하는일이 다 맞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견디기 쉽지 않은게 언론판이긴 하다.
그래도 그럴수록 더 비판와 지적을 겸허히 듣고 낮은 자세로 독자의 의견을 경청해야 맞지 않을까. 그런 소소하지만 중요한 기자들의 모습이 과거 갑질과 구악이 만연했던 언론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억울한 비판도 수용하면서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나은 기사를 써야지, 다음달엔 독자들에게 좀 더 유익한 보도를 내놔야지.. 하는 절차탁마 혹은 주마가편의 자세가 더 필요할 듯 싶다. 그래도 이번 장 작가의 사자후를 통해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도 우리나라 언론에 대한 이해도를 좀더 높여도 좋을 것 같고..
나는 장 작가가 글 내내 자신의 기자시절을 회고하며 훌륭한 기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관훈언론상, 이달의기자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동아일보 대특종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장을 비롯해 각종 언론상을 10회 이상 수상했고 동기중 유일하게 정당팀과 법조팀을 동시에 경험한 뛰어난 기자였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그만큼 언론을 잘 알고, 언론사에 있을때도 에이스였기에 언론 환경에 대해 논평할 전문성과 자격을 갖췄다는 뜻을 강조하고 싶으셨나 보다.
근데 좀 서글픈 이야기다. 일단 나는 기자상 수상 여부가 좋은 기자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힘으로만 받는 상도 아니고, 상을 못 받았어도 우리 사회를 바꾼 좋은 기사가 많다. 또 주요 부서에 있었다고 뛰어난 기자라는 생각도 약간 우습다. 각자 자신에 맞는 곳에서 흘러가면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문화부 기자는 에이스가 아닌가? 산업부 기자는 능력이 떨어지나? 국제부나 경제부 기자는 정치부와 법조팀 기자에 비해 고생을 덜하나? 절대 아니다. 각자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고, 사명과 기대도 있다. 맡은 분야가 다를 뿐이다. 그냥 어찌저찌 하다보면 여러 부서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일부 정치부나 법조팀 기자들의 '회사일은 우리가 다한다'는 식의 오만이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본인들은 과연 능력이 뛰어나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게 맞나? 언론사 인사는 그렇게 치밀하지 않아서 다양한 변수가 개입한다. 운 좋게 들어온 치들이 본인의 능력을 과시하며 짐짓 허세부리는 작태를 수없이 보아 왔다.별다른 성과도 없으면서 다른 부서나 다른 매체를 폄하하고 비하한다. 어차피 그런 기자의 언론 수명은 짧다. 곧 도태되고 방출된다.
아울러 에이스 기자만 언론계 현황에 대해서 논평할수 있나? 그건 아닐 터다. 장 작가도 누군가에게 밑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기자 이력을 나열하셨을 테지만, 그 또한 수년전에 기자를 하신 분이고 현재 언론계 트렌드는 MZ 세대 유입과 함께 달라지고 있다. 법조팀 등은 기피 부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사실 장 작가도 동아일보를 퇴사할 2013년까지의 언론 현실 까지만 잘 아는 걸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 우리는 묵묵히 우리 일을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지적하고 해도 어쩌겠나. 우리 잘못도 아닌데 욕을 먹어서 억울해도 어쩌겠나. 그만큼 우리에게는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기사를 생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선민의식이 아니라, 기자들은 사회적 공기인 언론사라는 특수 조직에 소속되면서부터 그런 의무를 갖게 된다. 그 책임이 사라지면 우리는 더이상 레거시 언론이 아니라 블로그 수준으로 떨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말도 안되는 비판은 자체적으로 거르고, 들을 만한 내용에는 귀를 기울이며 성찰하고 자성하며 나아가면 된다. 장 작가님의 과거 직장 사랑은 충분히 알겠다만, 조금더 흥분을 가라앉히고, 굳이 그들과 똑같이 대응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현직 기자에겐 내일 뭐 쓸지 고민하는 게 더 급하다. 누가 기레기라 부르든 말든, 나만 기레기가 아니면 된다.그런 마인드로 계속 뛰는 것이야 말로, 헛소리로 나와 언론을 비판하는 그들에게 가하는 가장 날카롭고 확실한 반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