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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06. 2024

사고 현장의 기자들


지난 2주의 기억. 3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너무나 안타깝고 허망한 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아리셀 공장 화재와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다. 경기 화성으로 보냈던 우리 팀원들을 다시 시청역과 서울시내 장례식장으로 급파하면서 나는 21세기 대한민국, 세계 경제 10위 대국이 된 우리나라서 왜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나도 지난 2주간 토하고, 수액 맞으며 간신히 버텨내 왔다. 


난 팀장이라 현장에 직접 가지 않는다. 몸이 편한데 왜이렇게 오바하느냐고 힐난하는 분도 있겠다. 다만 나는 후배들이 현장서 올려오는 보고를 본다. 그 참상을 직접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목도한다. 유가족 사연을 읽으며 기자실서 계속 눈물이 났다. 또 내일은 뭐 쓰지 하는 압박, 아니나다를까 미친듯이 쏟아지는데 확인조차 안되는 언론단독에 치이면서 2주를 보냈다. 그냥.. 내가 느낀 바를 좀 정리하고 싶었다.

 



사건팀 기자가 파견 지시를 받고 현장에 당도해 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이 있다. 세월호 당시 팽목항 언저리에 차를 대고 발을 내딛었을때 맡았던 바닷냄새가 난 잊혀지지 않는다. 저 멀리 현장이 보이고, 기자와 경찰 소방 지자체나 정부 관계자 들이 한데 엉켜 거대한 파도를 이룬다. 나도 이제 그들 중 한명의 무리로 뛰어가야 하는데 무섭고 두렵고 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는게 당연하다. 그래도 젊은기자는 유족이나 피해자를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되는 기사를 쓰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성큼성큼 그 현장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팀장으로서 좀 고민해보니 사건사고 현장에 당도한 기자의 역할은 크게 3개다. 우선 정부 브리핑을 챙기는 거다. 피해 현황은 실시간으로 어떻게 집계되고 있고, 수색이나 수습 현황은 어떠한지 등등. 또 하나는 유족이나 피해자 취재다. 황망한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고 정부의 지원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 향후 기사 거리가 될만한 단서를 모아야한다. 어차피 경찰과 소방의 사고원인 조사는 최소 1달 이상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언론이 스스로 수사를 해서 여러가지 가설과 분석을 제시해야 한다. 이때 일반적인 전문가 평가는 공허하고, 그러니 현장에서 다양한 근거가 될 만한 소스를 가져와야 한다. 사고업체 내부 문서나 관계자 번호 등등 아무거나 좋다. 그래야 서로 논의를 하고 향후 취재 스팟이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러니 현장의 기자들은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리셀 공장의 경우 안전교육이나 불법파견 문제가 이슈였다. 그러면 이와 관련해서 공장근처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날지에 초점을 두고 검색도 해보고 유추도 해보고 해야 한다. 시청역 교통사고도 원인이 가장 중요하다. 국과수 분석은 한달이상 걸린다. 그러나 경찰은 블랙박스나 EDR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니 기자들은 주변 건물 CCTV도 따보고, 직접 가해자와 통화도 해보고 하면서 정확하진 않지만 사건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젊은 기자들은 현장서 이런 역할 분담을 잘 하지 못한다. 누가 나타나서 여러명이 달려가면 다같이 몰려가는 식이다. 남들이 다 가는 곳엔 기사가 없다. 그러니 현장 파견 기자들이 서로 맡아야 할 바를 잘 분배하는 것이 좋겠다.


감정을 좀 배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유족이나 피해자에게 몰입하는 건 중요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사고 원인을 파헤치고, 문제를 들여다보겠다는 마인드는 좋다. 그러나 너무 흥분한다든지 하면 곤란하다. 그 감정의 너울 뒤에 보이는 사안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하되, 기사를 쓸때는 항상 차분하게.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코리안드림을 꾸고 넘어온 중국 동포들과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직장인들.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이웃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들이다. 난 후배들이 취재해온 그들의 사연을 읽으면서 계속 눈밑이 시큰거렸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 혹은 소중한 사람들과 더 즐겁게 살고 싶다던 근로자, 한번도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던 30대 직원.. 이런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날벼락이 떨어져야 했는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희생자에 대한 혐오가 쏟아져 나왔다. 아리셀 사고로 숨진 외국인 노동자 18명 가운데 17명이 중국인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중국인 사망자 유가족을 향해 "얼마나 돈을 더 받아 먹으려고" "정부에 책임 돌리지 마라" "정치적 이슈로 사건을 만드는 노동단체와 유족들이 결국 손을 잡았다"고 쏟아내고 있다. 


시청역 교통사고도 마찬가지다. 현장에 다양한 추모 쪽지가 놓여졌는데 그중 하나에 '토마토주스가 돼버린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혀있었다. 20대 남성은 자신이 썼다고 자수했다. 다양한 여초 사이트에도 '여성이 안 죽어서 다행이다. 안 그래도 남성은 숫자가 많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현실이 시궁창인 사회 부적응자들이 온라인상에서 한번이라도 주목받으려고 발악하는 말 치고는 좀 선을 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 혹은 가족에게 벌어질수 있는 이런 사고 앞에서 좀더 겸연해지지 못하는 걸까. 그만큼 우리 사회에 미움과 혐오가 가득차 있는 것 같다. 내 삶이 힘드니까 그런건 알겠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달라질 방법은 없는 걸까 싶다.

 



이번에도 언론의 단독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리셀 때는 불법파견 혹은 안전점검 등의 이슈가 주요 대상이 됐다. 소방청의 검사 기록과 고용노동부 내부 자료 등을 의원실 통해 받든가 해서 점검하는 기사였다. 시청역 교통사고는 아무래도 주변 CCTV를 따로 확보한다든지, 가해자 측과 인터뷰를 한다든지, 가해 차량 안전점검 내역이나 블랙박스 내용 등을 보도하는 매체들이 많았다.


난 평소 애먼 단독이 언론의 신뢰를 까먹고 국민 혼란을 부추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만 이런 사건사고 국면에서 단독은 필요한 면이 있다. 언론이 먼저 여기저기 문제점을 들쑤시고 나면 수사기관이나 정부가 그거를 일부 참고해서 대책을 짜거나 원인을 분석하는 식이다. 세월호도 그랬다. 청해진해운 뿐 아니라 세월호와 관련한 모든 정부부처나 기업들에 대해 언론의 취재가 이뤄졌고 정말 나올수 있는 기사는 다 나왔다. 언론의 단독경쟁이 보다 나은 대안 제시 등에 도움이 됐다(지금의 현실은 어떨지 모르지만..).


문제는 단독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이선균 사태 이후 경찰은 사소한 수사 상황 하나도 절대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해가 간다. 그러니 언론은 보다 더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 경찰이 하듯 우리도 현장서 증거를 수집하고 확인하고 묻고 대조하며 그렇게 기사를 만들 수 밖에 없는 취재 환경이 되어 버렸다.





언론 뿐 아니라 우리는 10년전 세월호 당시 절대 잊지 않겠다고 되뇌었다. 그 다짐은 곧 한줌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다들 먹고살기가 힘들고 지쳐 금방 망각하고 말았다.


시청역 교통사고가 나니 아리셀 화재는 곧 잊혀졌다. 내국인 누구나 시청역 인근 횡단보도에 서 본 기억이 있을 터다. 체감과 공감, 혹은 일상적 공포 연상이 가능한 사건에 더 관심이 쏠리고 아리셀은 불과 일주일전 일인데도 몇년전 사안처럼 형해화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탁상공론의 대명사 언론학자나 변상욱 씨 같은 '현장에서 도무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수 없는' 전직 언론인들은 언론탓을 한다. 잊혀지는 사건사고를 붐업해서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선후관계가 헷갈린다. 대중의 관심이 떨어져서 언론이 이에 발맞춰 보도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언론이 먼저 관심을 줄이고, 이에 대중도 주목하지 않는 것인가. 또 언론과 대중이 주목해야 비로소 더 열심히 원인을 찾고 보상을 늘리는 정부라면, 그런 보여주기식 정부부터 손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본보 사건팀원들이 쓴 기사들


본보 사건팀원들이 쓴 기사들


우리팀 팀원들도 이번 국면서 참 고생이 많았다. 인사이후 이런 사건사고는 처음이라 아마 대부분 첫 현장이었을 것이다. 우왕좌왕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유족과 대화하는 방식에서 사안의 무거움을 인지하고 기자로서 뭐라도 풀어보려는 의지가 보여서 고맙고 감사했다. 그들이 보고들은 그 현장의 경험이 그들의 뇌와 손을 거쳐 좋은 기사로 화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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