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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Sep 16. 2024

새싹같은 신입 기자들을 만났다


얼마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수습기자 강연을 다녀왔다. 나도 12년 전에 똑같은 교육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매체에 기자로 합격한 이는 모두 2주 가이어지는 이 교육을 들어야 한다. 기자로서의 책임감과 디테일한 취재 방법, 취재 사진 찍는 법이나 언론 윤리 등 다양한 언론 관련 주제에 대한 강의가 이어진다. 이 언진재 강의는 수습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대부분 입사 이후 본격적인 사건팀 막내 생활을 하던 도중 해당 강의에 참여하게 되는데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단 측으로부터 강연 제안이 왔을 때 감회가 좀 새로웠다. 그간 경찰이나 대학생, 언시생 상대로 강연이나 강의를 많이 했지만 언진재 강연은 처음이어서다. 큰 꿈을 안고 기자시험에 도전해 성취한 젊은 기자들에게 내가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하나 많은 고민이 됐다. 재단에서 주제는 어느정도 제시해줬다. 시경 캡으로서 사건사고 취재 방법을 좀 전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본보 사건팀에 막내가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이론보다는 실전에서 어떤식으로 경찰을 취재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이런 내용을 PPT에 담았다.


강연 30분 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언론재단 미디어교육원에 도착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었다. 재단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강의실 책상에 앉았다. 일하는 날이라 아침보고를 정리해야 했다. 정신없이 팀원들 보고를 취합하고 있는데 수습기자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두가 앳된 얼굴이었다. 5개 매체에 갓 합격한 22명의 기자들이 모두 입장했다. 재단 분이 내 소개를 하는데 나도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젊은 기자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압도됐기 때문이리라.



난 그들에게 최근 사건사고 기사의 추세부터 설명했다. 납치나 살인 등의 강력 사건의 절대적인 발생 숫자는 과거에 비해 줄고 있다. 결국 운전자 과실로 결론난 시청역 교통사고나 안산 아리셀 화재 사건 등 인명피해가 큰 사건사고도 일주일만 지나면 여론의 관심이 줄어든다. 반면 가수 김호중씨 음주운전 사건 등 연예인이나 공인이 얽힌 사건 사고는 대중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진다. 이단순히 사건 자체를 보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사건 발생과 추이를 관찰하며 이를 국가나 지자체의 제도 문제, 관행 등과 연결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그전에 사건팀 기자는 형사소송법상 사건 진행 흐름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세세한 법문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어떤식의 처벌이 어떤 단계를 거쳐 가해지는 지를 완벽하게 머리에 담아놔야 한다는 얘기다.


형소법상 사건 흐름은 대체로 이렇게 이뤄진다. 우선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경찰이 검거한다. 이후 경찰은 그를 입건해서 사건조사를 시작한다. 이후 검찰이 그의 혐의를 입증하고, 검찰에 사건을 넘긴다. 이를 송치라고 한다. 검찰은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한다. 법리적인 면을 따져서 법원에 재판을 해달라고 넘긴다. 이를 기소라고 부른다. 이후 법원에서는 1심 재판을 한다. 검찰이나 범죄자가 그 결과에 불복하면 항소하고 고법에서 2심이 진행된다. 2심 결과에도 만족하지 못하면 상고가 이뤄지고 대법원이 이를 맡는다. 대법원 판결이 최종 결론이다. 그러나 법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이런 흐름을 통해 범죄자가 잡히고, 재판을 받게 된다.


구속 여부는 이와 별개다. 범죄자가 이 과정을 통해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도주우려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을 경우 경찰이나 검찰은 법원에 그 사람을 구속시켜달라고 요청할수 있다. 이때 경찰 단계에선 영장을 신청, 검찰 단계에선 영장을 청구라고 지칭한다. 이후 구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법원은 구속전 피의자심사를 진행하는데 이게 흔히 불리는 영장실질심사다. 기자는 이런 용어 하나하나를 틀리면 안된다. 이런 사건 흐름도를 잘 숙지하고 이 과정에서 새는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단독이나 기획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수습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난 그들에게 경찰서 마와리를 도는 효율적인 방법도 전수했다. 우선 경찰서 내 부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정보과나 범죄예방대응과는 무슨 일을 하나. 형사과와 수사과는 맡는 업무가 어떻게 다른가. 기본적인 업무 분장을 알아야 사건이 터졌을때 어느 팀에 물어봐야 하는지 바로바로 떠올릴 수 있다.


경찰의 근무 패턴도 알아야 한다. 당직팀은 오전 몇시에 교대하는지, 어제 밤에 일어난 사건을 맡은 팀은 형사 몇팀인지 체크해야 한다. 다른 팀에 물어보면 자신들 일 아니라고 말을 피하기 때문이다. 경찰 계급도 숙지해야 한다. 또 경찰대와 간부후보생, 순경과 특채 출신 등은 어떻게 다른지도 알아두는 게 좋다. 경찰의 독특한 계급정년 문화를 알아야 왜 경찰들이 승진에 그렇게 몸을 던지는 지 이해가 간다. 또 자신이 맡은 라인의 경찰서장은 경대 몇기 인지, 또 다른 경찰 누군가와 친한지 등등도 알아야 대화가 된다. 이렇게 공부를 한 상태로 경찰을 만나야 그들로부터 얘기되는 기자로 인정받고 사건 얘기 하나라도 더 들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훌륭한 사건팀 기자가 되려면 일단 캡이나 바이스의 지시를 잘 듣고, 꾸준히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의문이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질문을 해야 한다. 지시가 잘 이해안될 경우에도 선배에게 한번더 설명해달라고 예의 바르게 말하면 된다. 기사를 발굴할때 인터넷에서 찾지 말고, 자신이 맡은 라인 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사례를 앞에 배치하고 이 사안으로 인해 고쳐야 하는 사회 제도 등으로 기사를 확장하면 훌륭한 원고지 7매짜리 기획을 찾을수 있다. 시의성이 있고 특이하거나 재미있는 사례면 더 좋다.




2시간 가량 강연을 했는데 조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수습들의 표정은 좀 심각해보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앞에 놓인 미래가 좀 힘들어보여서 그랬나. 질문도 많이 나왔다. 대부분 기사 발굴을 어떻게 하느냐, 선배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 등등 이었다. 나름의 답을 하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한 수습기자가 곧바로 따라나와서 인사를 했다. 평소 내 브런치를 자주 보는데 인사를 따로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나로써도 너무 감사했고, 따뜻한 마음으로 강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들 어떤 기자가 될까.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내가 브런치를 시작했던 이유처럼, 계속 내리막을 걷는 기자라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고 고민하는 청춘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 나도 힘을 얻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또 돌다가 출입처에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은 또 그들의 후배에게 조언과 고민을 공유하고 하면서 그렇게 선순환이 이뤄지고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기회 많이 생겼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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