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은 피곤하다. 좋아하는 가수가 컴백해서 그 노래를 들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탔다.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추천영상이 떴다. 영상 제목은 '40대부터 자산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였다. 홀린듯이 클릭했고, 자괴감에 빠졌다. 영상 내용은 이랬다. 2030대 절약과 저축, 기초 투자를 통해 나름의 자산을 마련하고 안정적인 투자, 부동산 공부 등을 통해 자산을 뻥튀기 하는 시기가 40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자산의 차이가 벌어지고, 노후도 좌지우지 된다는 논리였다. 누가 들으면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울림이 있었다. 제대로 돈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기자생활 13년. 주요 부서를 돌면서 많은 취재경험을 쌓았다. 그래도 다른 기자들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20대와 30대를 일하면서 보냈다. 이제 곧 마흔이 된다. 그런데 돌아보니 남은 게 많이 없다. 취재원과 인맥을 쌓고, 다양한 경험도 했다. 기자로서의 내 자신은 차근차근 성장했다. 그런데 내 자신, 그러니까 기자라는 일이 아닌 인간으로서 나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돌아보게됐다. 기자라는 직업이 나의 정체성 대부분을 차지해서 휴일에도 취재원과 등산도 하고, 술도 마시고 했다. 즐거웠지만 기자생활 10년이 지나고 나니 사실 남는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출입처에 따라 취재원과의 친소관계도 달라지고, 무쇠같던 체력도 슬슬 말라가고, 기자 말고 인간으로서 실속을 차리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사실 회피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서울 집값 최소 10억 이상인데, 내가 과연 살수 있을까 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별로 사치도 안하는데 그래도 악착같이 모아도 수십년이 걸리는 금액. 부모님에게 집이나 수억원을 받는 자녀는 별로 없을 터다. 그러면 다들 스스로 벌어서 사는건가? 근데 난 왜 이렇게 자산이 안 모이지, 하는 자괴감과 괜한 분노. 서울에 집이 이렇게 많은데 내 한몸 누일 곳이 왜 없나 하는 서글픔. 10대 청소년 가운데 20채 이상의 집을 소유한 경우도 조사됐다는 기사를 볼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처지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 같다.
난 대학생 시절 정식 기자가 되기위해 정말 노력했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꿈을 이루자 목표가 사라졌고, 그저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되, 내 실속을 더 차리자. 늦었지만 노후 준비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자. 남들 부러워하지 말고, 뭐라도 공부하고 시작해보자.
부끄럽지만, 나는 평생 주식을 해본 적이 없다. 공무원 부모님 덕이 컸다. 따박따박 적금, 예금으로 돈 모아라. 성실하게 자녀를 위해 헌신한 부모님께 감사하지만, 나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들은 개혁 전 공무원 연금을 받기 때문에 노후가 해결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국민연금자다. 특단의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비참한 말로를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자꾸 부모님의 철학을 내재화하고, 자산 형성을 게을리하며, 나의 미래를 회피해 온 거다.
주식은 도박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한탕에 빠진 사람들이 무리해서 주식투자를 했다가 패가망신한 영상이나 다큐를 많이 봤다.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유튜브도 찾아보고 책도 읽고 하니 주식이라고 다 위험한 게 아니었다. 개별주에 투자하는 건 리스크가 따른데, 지수에 투자하는 ETF 등을 통해서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이 가능했다. 단기에 치고 빠지는게 아니고, 안정적인 ETF에 돈을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 이런 포트폴리오로 모은 돈을 방어하고, 또 투자도 병행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공부하면서 노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난 항상 내가 돈을 적게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찾아보니 결코 적은 월급이 아니었다. 억대 연봉을 받더라도 한달 실수령액은 600대 초반이라고 들었다. 세금을 많이 떼기 때문이다. 그 금액과 비교하면 나의 월급도 결코 적지 않다. 난 항상 돈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하고, 그 돈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다들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저축을 하고, 그 돈을 바탕으로 투자도 하고 재테크도 하고, 부동산도 공부하면서 조금씩 점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에 더 몰두하는 척 했다.
사실 일과 재테크 공부는 양립 가능한 명제였다. 집에 와서 남는 시간에 부동산 강의도 듣고, 주말에 임장을 가고, 주식투자 유튜브도 보고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피곤하고 힘들다는 핑계로 나의 피가 되고 살이되는 돈 불리기를 게을리했다.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터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하면 뭐하겠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산 격차는 이미 시작됐지만, 그래도 따라잡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떨리지만 또 설레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아직도 투자와 재테크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도 엄청나게 많을 테니까.
유튜브 영상 하나로 상황이 달라졌다. 집에 온 나는 곧바로 주식 계좌부터 만들었다. 나는 월급을 포함한 모든 돈을 은행 계좌 하나에 넣어두고 있었다. 청약 얼마, 그리고 퇴직연금 얼마 정도. 펀드도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다. 30대 후반까지 재테크를 전혀 하지 않은 셈이다. 2000만원을 정기예금으로 묶어두고, 2% 금리를 통해 1년이 지나 60만원 가량의 이자를 받고 즐거워하는 인생이었다. 인플레이션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 돈이 녹고있다는 걸 몰랐다. 새로 생긴 60만원을 가지고 술을 마시고 하는 생각없는, 미래 고민없는 그런 인생.
주식계좌에 더해 CMA 계좌도 만들었다. 그리고 MMW 형으로 바꿨다.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하면서, 매일 적립금이 조금씩 쌓이는 계좌. 청약은 그대로 두고, 연금저축도 증권사로 옮겼다. 지금까지 연금저축도 제대로 나는 투자를 안하고 있었다. 회사가 적립하는 DB형을 택하고 있으면서 그냥 맡겨두고, 세액공제 명목으로 돈만 넣었지 어떻게 굴리는지 몰랐다. 정말 안일했다.
이제 나는 이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내가 월급이 적어서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한다는 궤변도 늘어놓지 않기로 했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면서 내 미래를 위해 좀 달라지기로 했다. 안정이라는 굴레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에 살지만 무주택자인 30대 후반, 곧 40대 미혼 남성. 초라한 나의 자산 스펙이다. 이제 달라지고 싶다. 일에 쏟았던 열정만큼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기로 했다.
이제 이런 루트에 돌입할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렇게 할 것이다. 1. 월급을 최대한 아껴서 소비를 최소화 한다. 2. 월급이 들어오면 일정 금액 (50% 이상)을 증권 계좌로 보낸다. 3. ETF 등에 분산해서 투자한다. 4. 만일을 위해 CMA 통장에는 1000만원을 남겨둔다. 5. 일반 월급 계좌에는 100만원만 남긴다. 5. 청약에는 매달 10만원만 넣는다. 6. 부동산 공부를 계속한다, 등등.
그래도 계획과 꿈이 생기니 활기도 돈다. 브런치에 재테크와 돈 모으기 매거진도 하나 만들었다. 요새 2030세대 얼마나 똑똑하고 돈과 친숙한지 모른다. 재테크도 너무 잘하고 열심히 산다. 하지만 나처럼, 일에 치여서 자산 증식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나는 유명 투자 유튜버와 다르다. 지식도 별로 없고, 이제 막 공부를 시작했을 뿐이다. 나와 같은 2030세대가 많을 터다. 내가 유튜브를 보다 새로운 꿈이 생겼듯이, 내가 쓰는 이 글이 그들에게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더 잘 살 권리가 있다. 더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 과정을 기록하면서 나도 한단계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