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교적 일찍 취업을 했다. 만 25세. 대학교 4학년 1학기 마치고 취업이 됐으니까, 남자 치고는 이른 편이었다. 기자라는 꿈을 이루고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회사 사무실에 첫 출근했을때를 잊지 못한다. 앳된 얼굴에 양복을 입고 서울에서 직장인이 됐다는 쾌감은 쭉 이어졌던 것 같다.
초봉은 결코 적지 않았다. 대기업에 비하면 낮았지만, 사실 별로 크게 차이가 안 났던 것 같다. 용돈을 받거나 과외를 해서 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액수였다. 그돈을 차근차근 모았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러지 않았다. 내 힘으로 벌어서 내가 쓴다는 그 성취감은 오히려 내 씀씀이를 더 크게 만들었다.
특히 기자라는 명함이 내 소비생활을 더 자극했다. 취재원을 만나야 한다는 허울로 비싼 옷과 가끔은 명품을 샀다. 그렇다고 엄청 비싼 명품은 불가능하고, 메종키츠네나 아미 정도. 하긴 그 옷들도 수십만원씩 하니까 내 형편에는 맞지 않았다. 유니클로 입고 하면 됐는데, 이상하게도 허세가 가득차 있었던 것 같다.
술값도 만만치 않았다. 취재원에게 매일 얻어먹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술자리에서 기사가 나온다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자리가 잦았다. 친한 타사 기자들과 휴일에도 만나며 낮부터 밤까지 술을 마신적도 부지기수다. 기자 일은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걸 푼다는 명목으로 술에 의존했다. 내가 낸다고 객기를 부릴라 치면 다음날 수십만원이 찍힌 카드 문자에 놀라기도 했다. 그것이 낭만이라고 믿었지만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이제 30대 후반. 20대나 30대 초반에 비하면 나는 좀 성숙하긴 했다. 그래도 부족하다. 누구는 집을 샀다고 하고, 주식도 하고, 임장도 다니고 한다는 얘기를 듣기만 했다.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건 진작 알았는데, 직접 나서는게 좀 겁이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살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 컸다. 근데 살다보니 살아지긴 하는데, 그냥 살게 되는 거였다. 보다 나은 삶, 미래가 있는 그런 삶은 절대 운빨로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전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무리한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있는 청년들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그들 중 한명의 워딩이 인상깊었다. 어차피 열심히 일해봤자 근로 소득만 차근차근 모아서는 노후는 커녕 집 하나도 살수 없는데, 2030 세대가 투자를 하는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거였다. 선배 세대는 젊은 이들의 한탕주의를 비판한다. 차근차근 모아서 형편에 맞게 살라고 질책한다. 그러면 젊은 세대는 반박한다. 부모 세대는 따박따박이 가능했고, 그걸로도 어느정도 살아지긴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난 8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4억2224만원이다. KB 부동산 자료인데, 2008년 관련 통계 발표 이후 처음으로 14억원을 넘겼다. 한달 월급이 250만원인 청년이 한푼도 쓰지 않고 560개월, 그러니까 46년을 모아야 살수 있는 금액이다. 그 46년간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질 터니까 결국 집은 살 수 없을 것이다. 눈을 낮추고 서울 근교나 경기도까지 바라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곳조차 비싸다. 굴러가는 돈이 모일 곳이 별로 많지 않고, 그러니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해도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노후 준비는 커녕 집 한칸 사기도 어려운 미친 부동산 공화국에서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모든걸 내려놓고 하루벌어 하루 쓰는 것도 이해가 간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열심히 산다. 오늘을 아껴서 내일을 위해 저축한다. 그런데 아무리 아껴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자포자기하게 되는 셈이다.
나도 사실 이런 심정으로 살아온 것 같다. 조금씩 저축은 했지만, 아직도 내 힘으로 서울에 집 한칸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남들은 다 집 하나쯤은 있고, 부동산 문제를 일단 해결한 뒤에 노후 준비에 매진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한발짜국도 진척이 없지? 진지하게 고민을 할라쳐도 너무 머리가 아프고, 삶이 답답하니까 회피만 해왔다. 이제 더 이상 회피하기 어려운 나이가 됐고, 보다 진지하게 문제를 마주하고 해법을 찾고 싶다. 달라지고 싶다. 아무리 희망이 없어도 조그마한 볕뜰 자리라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잡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 절박한 심정으로 브런치도 하고, 마음도 다잡게 된 이유다.
부모님께 수십억짜리 서울 아파트를 증여받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평범한 청년들이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은 어느정도 정해져있다.
우선 월급을 착실히 모으고 꾸준히 재테크를 해서 시드머니를 만든다 -> 그 돈과 대출을 합쳐 서울 시내에 어느정도 유망하지만 그나마 좀 저렴한 부동산을 구입한다 -> 계속 돈을 모으면서 집값 오르기를 기다린다 -> 집값이 오르면 팔고 그 돈으로 좀더 비싼 부동산으로 갈아탄다 -> 이 작업을 수번 반복한다 -> 부동산 문제가 해결됐으면 이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를 더 하거나 경매나 부동산 쪽을 더 알아본다 -> 노후를 준비한다.
내가 생각할때는 이 방법 이외에는 자산가가 되기가 어려운게 현실인 것 같다. 일단 시드머니를 모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소득을 높인다 2. 소비를 줄인다.
난 항상 1번을 고민해왔다. 돈을 많이 벌어야 부자가 된다. 지속적인 소득이 이어져야 부자가 된다. 근데 사실 직장인 연봉 1억이면 통장에 찍히는 돈은 세금을 떼고 600만원 정도다. 근데 1억 연봉자가 어디 흔한가.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부장이나 임원 정도 되어야 받는 돈이다. 잘나가는 전문직은 예외로 치고, 일반 직장인이 받든 월급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직장에 발을 담근 상태에선 드라마틱하게 소득을 높일 수 없다. 그러면 창업만이 답이다. 근데 자영업도 너무 힘들지 않나. 너무 경쟁이 심하고, 예상못한 변수가 많아서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성공률이 극히 낮다. 퇴직하고 치킨집 열었다가 망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해도 소득이 계속 천정부지로 오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쓰는 돈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소득을 높이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 대학원도 가고, 고과도 잘 받으려 하고, 온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돈을 아껴야 그나마 시드머니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난 이 진리를 늦게 깨달았다. 내 월급이 적다고 징징거릴게 아니고, 미래를 위한다면 최대한 아끼고 절약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은 뒤에 새로운 경제적 퀀텀점프를 노려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절약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보상심리가 강했다. 2년전 사건팀장을 할 때였다. 너무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신경써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가끔 휴일이 되면 근처 목욕탕에 가서 세신과 마사지를 받았다. 그러면 좀 거북목도 치유되는 것 같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5~6만원 남짓한 비용이었는데 매주 갔으니 한달에 20만원 이상 쓴 것이다.
근데 그때는 그게 아깝지가 않았다. 이런거라도 안하면 내가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세신을 안했어도 버텼을 것이다. 그래도 그러기가 싫었다. 수당이 좀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내가 돈 벌어서 이정도도 못쓰면 굳이 살 필요가 있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주변 눈치를 너무 많이 봐도 문제가 된다. 원래 인케이스 가방을 들었는데 한 타사 기자 선배가 "야 대학생도 아니고 누가 인케이스를 드느냐. 투미 하나 사라"고 조언했다. 투미 매장을 가봤는데 가방이 100만원이 넘었다. 노트북을 넣는 백팩 하나 가격이 그랬다. 그때도 그냥 질렀다. 사실 인케이스 가방 계속 써도 됐는데, 주변에서 다 투미를 드니까 따라산 것도 있다. 그렇게 고야드 지갑을 사고, 린드버그 안경을 사고, 바이레도 향수를 사고 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참 흔들리기 쉽다. 재무적으로도 그렇다. 잘사는 취재원도 많고, 그들이 먹고 입고 쓰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회가 동하기 쉽다. 그래서 사실 실속이 없다. 보여지는 것에 신경쓰다보니 정작 내가 갖고 있는 건 없는데 겉으로만 번지르르 하게 된다.
그래서 늦어지만 달라지기로 했다. 일단 은행 앱에 들어가서 한달 지출을 쫙 뽑아봤다. 이렇게 돈을 많이 쓰고 있는지 몰랐다. 우선 세탁배달 앱. 이 앱은 세탁거리를 문앞에 걸어두면 찾아가서 세탁을 하고, 다시 집으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청와대 출입 당시 너무 바빠서 세탁소를 갈 시간이 없어서 이 앱을 쓰기 시작했는데 관성적으로 계속 쓰고 있었다. 근데 이게 지출이 엄청났다. 한번 입고 나갔다가 음식 국물이 튀면 모아서 바로 앱으로 보냈는데, 우선 이 앱을 끊었다.
그리고 손빨래 세제와 빨래판을 샀다. 이제 옷은 내가 직접 빨래해서 널어놓는다. 주말이 되면 빨래를 하는게 일상이 됐다. 귀찮을 것 같았는데, 빨래 시간은 은근 상쾌하다. 냄새도 좋고, 빨래를 하면서 여러 생각도 정리한다. 빨래 세제는 한통에 5000원인데 거의 세달은 쓴다. 원래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였다. 그저 내가 게을렀을 뿐이다. 세신과 마사지도 끊었다. 크게는 일단 2개만 줄여도 절약이 됐다. 앞으로 더 줄일 수 있는 부문을 나눠서 따져볼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다큐멘터리 청년처럼, 이렇게 절약해도 여전히 내 집 마련은 먼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새롭게 마음을 먹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됐다. 그리고 내 상황이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빚은 없고, 직장도 다니고, 건강에 큰 문제 없고, 아직 30대고. 늦었지만 또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잘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지 방법을 찾고 공부해야 하는건 모두가 인지하지만,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부자는 적을 수 밖에 없다. 자연히 부는 그들에게 집중된다. 불법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부자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배울 점이 있다. 남들과 다르게 노력해서 성공을 거둔 이들이기 떄문이다. 한번의 성공경험은 계속 성공으로 이어진다.
요새 경제 유튜브를 많이 본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고, 멘탈 관리도 한다. 많은 유튜버들이 말한다. 우선 1억부터 모으라고 한다. 요새 시대에 1억, 큰 돈은 아닐수 있다. 다만 그들이 조언하는 것은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1억을 달성하면, 돈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다는 거다. 돈 모으는게 재미있고, 돈 불리는 걸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미래를 더 가치있게 생각하게 된다. 즉 자산가로서 가는 첫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 정말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냥 무력감에 빠져있을 시간에 좀더 달라지려 노력하면 된다.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그 시간에 좀더 나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곧 40대가 되는 내가 늦게 깨달았으니,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더 젊은 분들은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희망을 놓지 말고 좀더 정진했으면 좋겠다. 돈을 쓰면서도 찝찝하고 불안한 기분을 느끼기 보단, 작지만 뭐라도 실천해보는게 중요할 것 같다. 나도 하루하루 더욱더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