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유튜브 알고리즘에 계속 뜨는 영상이 있다. 바로 노인 빈곤 관련 다큐멘터리다. 사례자가 등장하는데, 대개 비슷하다. 자식 낳고, 사업도 열심히 하다가 잘 살았는데 어느순간 몸이 아프고, 가족과도 단절되어 지내다 쓸쓸히 독방에서 사망하는 그런 얘기. 그들의 나이가 막 80세, 90세인 것도 아니다. 60~70대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사회에서 단절된 채, 하루하루 밥때를 걱정하며 눈물로 보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노인이 많다. 이미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전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왔다갔다하는 한국 치곤 너무 잔인한 성적표다.
나는 가끔 유튜버들이 현재 노인 빈곤을 언급하며, 2030세대를 향해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경고하는 것을 보며 부아가 치민다. 맞는 말이긴한데, 2025년 현재 노인들은 과연 게을러서, 또 미련해서 빈곤해졌나를 따져봐야 한다. 물론 모으는 소득을 족족 펑펑 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은 그냥 이 한국에서 태어나 취업하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부모로서의 소임을 다하다가 갑작스럽게 노인이 되고, 빈곤에 빠지는 케이스다. 준비를 못한 잘못은 있지만, 준비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그저 가족을 위해 죽어라 일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난 그래서 제발 학교에서 쓸데없는 과목좀 줄이고, 경제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야 살수 있고, 돈을 어떻게 모으고 불리고 절약해야 하는지 누군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근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알아서 배우는 것이 좋겠지만, 그래도 이미 사회적 비용이 되어버린 노인 빈곤이나 젊은 세대의 자포자기한 삶을 개선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제발 좀 경제 교육을 시행했으면 싶다.
아무튼,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처음 20%를 넘어섰다. 이제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넘쳐난다. 이걸 보면서 30대 후반인 나도 슬슬 걱정이 된다. 앞길 창창한 20대를 지나, 열심히 일만 했던 30대를 거쳐 곧 나도 40대, 50대가 되고, 결국 60대 노인이 될 터다. 지금부터 노후를 어떻게 준비할지가 걱정이 된다.
일단 현재 나의 재정적 상태부터 진단해봐야 한다. 미혼이고, 아직 서울에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돈을 얼마간 모아놨지만 집을 살 정도는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노후를 준비하는 과정은 다를 것이다. 다만 나로서는 우선 열심히 저축하고 절약하고 주식을 비롯한 재테크를 하고, 계속 옥죄어지는 대출 규제를 고려하며 대출을 받아 집을 한칸 마련하는 것이 우선일 터다. 그 이후에야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서울 집값은 계속 널뛸 터이고, 나이 50이 될때까지 집을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전세나 월세를 전전하며 돈을 더 모을 가능성도 있다. 어찌저찌 50살 정도에 집을 산다고 해도, 은퇴가 이제 얼마 남지 않게 된다. 만약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다고 하면 교육비와 생활비는 뻥튀기 될 터이고 정년을 채운다고 해도 제대로 된 노후 준비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 눈 앞이 캄캄해진다.
어느 조사를 보니까, 노후 준비에는 약 7억원 정도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집 문제를 해결하고 7억이다. 주택연금도 고려해 볼 수 있겠다만, 너무 큰 금액 아닌가. 국민연금만으로는 제대로 먹고 살수가 없는 우리나라, 이쯤 되면 오래사는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 수준인 것 같다.
노후를 헤쳐갈 자산이 없다면, 지속적인 소득이 발생해야 한다. 나는 한국기자협회가 내는 기자협회보를 자주 본다. 거기에는 기자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사는 선배 기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창업을 하거나 파일럿이 된 사람도 있고, 작가나 셰프라는 직업을 택한 이도 있다. 다들 멋지고 대단한데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기자라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수는 없겠구나, 였다.
물론 명예기자 등으로 일할 수는 있곘지만, 지속적인 소득원이 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기자를 계속하고 싶다면 종소 매체로 옮겨서 기존 매체에 있던 인맥과 명성을 동원해 광고를 끌어오며 사는 그런 방법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도 언론계에서 어느정도 이름을 떨친 기자나 가능한 일. 기자는 평생 직업이 될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난 은퇴이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50대나 60대가 됐을때 갑자기 언론계를 떠나서 날 것의 사회에 던져졌을 때 어떤 일을 하며 소득을 벌어 노후를 대비하거나, 생활비를 벌어야 하나?
난 13년 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기자들야말로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매일 이슈를 취재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실속이 없다는 게 정확하겠다. 약간 기자들만의 리그가 있어서, 단독 기사도 나오고 경쟁도 치열한데 오히려 기초적인 경제 지식은 없다. 일부 눈치빠르고 뛰어난 기자들은 일과 실속을 둘다 잡는데, 그게 아닌 이들이 훨씬 더 많다. 투자를 제대로 모르거나 오히려 그런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걸 미덕처럼 얘기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우리는 그런 큰일을 하고 있다는 낭만은 좋은데 결국 퇴임 직전 돌아보면 가족이나 나 자신에게 소홀했다는 얘기를 한 선배도 있었다.
그러니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나의 인생을 좀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활용해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이권을 따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정체성을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생활인으로서의 나 자신도 고민해야 은퇴 전후 충격이 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최근에서야 이런 교훈을 깨달았다. 나는 기자 일을 열심히 해온 것 같다. 세상을 바꿀만한 대단한 기사를 써본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주어진 직무에는 최선을 다한 건 확실하다. 출입처를 배정받으면 지기 싫어서 별짓을 다했다. 우리보다 큰 언론사 기자들을 한번이라도 물 먹이고 싶었다. 주말도 반납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쫓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정도 인정도 받고, 좋은 기회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슬슬 10년차가 넘어가니, 나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거의 매일 취재원과 저녁을 하고 정보를 하나라도 더 들으려 했다. 또 주말에도 시간나면 술판이었다. 처음에는 정보를 얻는게 목적이었는데 어느샌가 취재원과의 친목으로 끝나는 자리가 됐다.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차츰 나의 실속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기자들은 책도 내고, 대학원도 다니고, 재테크도 하면서 기자 일 말고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계속 기자라는 낭만만 쫓고 있었다.
그러면서 기자일에 소홀해보이는 선후배들을 속으로 책망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에 따르는 직무는 획일화된 게 아니다. 모두가 다를 수 있다.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기자만 대단한게 아니다. 법조 출입을 안했다고 해서 기자의 능력이 떨어지는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기자일에 몰입하다보니 사고가 닫히고, 시야가 제한된다. 회사 밖에는 어마어마한 세상이 있는데 회사 안의 승진에 목숨을 걸게 된다. 후배의 실수도 그냥 주의만 주고 너그러히 넘어갈 수 있는데 죽일듯이 갈구게 된다. 내가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는데, 너무 회사에만 몰입하면 그러지 못한다. 실속이 없으면 좋은 기자라도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그저 현실과 동떨어진 꼰대가 될수 있다는 우려가 너무 많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론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누구보다 열심히 하되 나의 인생에도 좀 눈을 돌려야 한다는 자각이 왔다. 좋은 기사도 열심히 찾고, 대신 일 이외의 시간에는 나의 미래에 더 투자를 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재테크도 알아보고 하면서 브런치에 내 결심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전문직 시험에 합격했다면 이런 노후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됐을 터다. 전문직은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경험과 인맥이 쌓일수록 일이 더 많아지고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아쉽기도 하다. 젊은 패기로 선택했던 직업의 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학생 시절 좀더 고민하고 시간을 투자해서 전문직이 됐더라면 노후 준비가 조금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자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좋은 분들을 만나 또래와 비교할때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아오며 깨달은 것도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삶의 방향을 조금 틀어서, 일과 함께 나의 노후와 미래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노후 문제를 두고 개인이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탓이라고만 몰아가는 건 너무 단순하다. 지금의 노인 세대는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국가를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과 자산은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회 탓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개인이 대비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냉정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생활인으로서의 나’를 진지하게 준비하려 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보람은 크지만, 은퇴 이후까지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직업인으로 열심히 사는 동시에 생활인으로서 투자하고, 공부하고, 실속을 챙기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내 과제다. 동시에 후배 기자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좋은 기사 쓰는 것만큼, 네 삶도 챙겨라”고.
또 한편으로는 사회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처럼 국민연금이 제대로 된 노후 안전망이 되지 못한다면,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경제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하고, 노인이 된 이후에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다.
나는 지금 당장 집 한 채 마련하기도 벅차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준비할 생각이다. 작은 돈이라도 투자하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내가 가진 글쓰기와 기자 경험을 노후의 자산으로 만들겠다. 누군가는 그것을 ‘발버둥’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 부르고 싶다. 개인이든 사회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후회할 틈조차 없을 것이다.
결국 답은 명확하다. 개인은 삶을 치열하게 챙기고, 사회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지켜내야 한다. 나는 오늘부터라도 내 몫을 다할 것이다. 작은 기록 하나, 작은 투자 하나가 쌓여 언젠가 나의 노후를 버텨줄 버팀목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