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지만, 지금껏 나는 예금 혹은 적금과 연금저축만 운용해왔다. 내가 피땀흘려 번 돈, 그러니까 원금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예금자 보호라는 말이 너무 든든했다. 아무리 금리가 낮고, 이자가 작더라도 꾸준히 차근차근 모으다보면 언젠가는 목돈이 생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왔다. 가끔 사치도 했지만 그래도 절약을 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원금을 조금씩 불려왔는데, 현타가 왔다. 아무리 모아봤자 서울에 집을 살수가 없는 거였다. 2000만원을 정기예금으로 묶어놨더니 1년 만에 만기가 됐고, 세금을 떼고 이자로서 들어오는 돈이 60만원 남짓이었다. 나는 매우 큰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그냥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현상유지도 제대로 안되는 금액이었다.
그때 느꼈다. 예금자 보호라는 허울을. 널뛰는 서울 집값. 강남도 아니고 그냥 서울 외곽의 썩다리 아파트도 못사는 상황에서 원금 보호, 예금자 보호가 도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열심히 번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지금껏 차근차근 돈을 모아온게 너무나 후회가 됐다. 더 공격적으로,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투자는 하지 말고 남들이 다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다짐했다.
절약하면서 매달 소득을 열심히 모으되 -> 이걸 어떻게 조금씩 불려나갈지를 고민하는 차원이었다. 그 첫 걸음이 파킹통장과 CMA였다.
성인 누구나 첫 월급을 받았을 때가 있었을터다. 통장에 찍힌 그 숫자가 마치 승리의 증표 같았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이 돈을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을까”라는 불안감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모은 돈이 1000만원, 5000만원을 넘기면 이런 불안은 더 커진다.
적금이던 예금이던 이자율은 낮고, 주식이나 부동산은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럴 때 한가운데 마주치는 선택지가 파킹통장과 CMA다. 둘 중 하나를 택하든, 혹은 두 개를 병행하든, 초보의 첫 경험에 중요한 선택지다.
파킹통장
파킹통장은 기본적으로 입출금 통장의 기능을 가지면서도 이자를 제공하는 통장이다. 일반 입출금 계좌는 거의 이자가 없거나 매우 낮은데, 파킹통장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금리를 제공한다. 마치 차를 주차해 놓듯 돈을 넣어 두고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구조니까, 이름에도 ‘파킹(parking)’이 붙었다.
파킹통장의 큰 강점은 안정성이다. 은행 예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는다. 다만 이 보호 한도도 알아둬야 하는데, 보통 한 은행, 한 사람 기준으로 1억원까지 보장된다. 그러니까 만약 그 은행이 도산하더라도 최대 1억원까지는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파킹통장은 지금까지는 다른 예금과 마찬가지로 예금자보호공사의 보호 한도가 50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5년 9월 1일부로 제도가 바뀌면서 보호 한도가 1억 원으로 두 배 올랐다.
파킹통장은 말 그대로 잠시 돈을 ‘주차’해두는 통장이다. 원래는 은행 수시입출금 통장에 붙는 별명일 뿐이었는데, 최근에는 은행과 저축은행, 인터넷은행이 앞다퉈 ‘고금리 파킹통장’을 내놓으면서 하나의 금융상품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파킹통장도 똑같아 보이면서 유형이 조금씩 다르다. 마치 카페를 고를 때 프랜차이즈, 편의점형, 동네 맛집, 팝업스토어가 있듯이 말이다.
가장 기본은 일반 은행형 파킹통장이다. 국민·신한·우리 같은 시중은행에서 내놓는 통장인데, 금리는 낮은 대신 급여이체, 카드 사용, 자동이체 같은 조건을 채우면 우대금리를 준다. 마치 쿠폰을 모아야 할인받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같다. 꾸준히 거래하는 고객이라면 괜찮지만, 조건을 못 채우면 사실상 금리는 거의 붙지 않는다.
최근 가장 인기를 끄는 건 인터넷은행형 파킹통장이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같은 비대면 은행들이 내놓은 상품이다. 특징은 간단하다. 조건이 없다. 돈만 넣어두면 1억 원 이하 예치금에 3% 안팎의 금리를 준다. 앱으로만 관리하지만 편의성은 뛰어나고 이체 수수료도 대부분 무료다. 앱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 편의점 카페 같은 곳이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유형이다.
금리에 더 욕심을 내는 사람은 저축은행형 파킹통장을 눈여겨 볼 수 있다. 지역 저축은행들이 내놓는 특판성 상품인데, 시중은행이나 인터넷은행보다 금리를 더 주는 경우가 많다. 3.5~4%대 금리도 종종 보인다. 다만 예금자보호 한도가 은행보다 낮아 1인당 5천만 원까지만 보장된다. 마치 동네 구석에 숨은 맛집과 같다. 맛은 확실히 좋은데, 멀리 가야 하고 규모가 작다 보니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특판·제휴형 파킹통장도 있다. 카드사나 플랫폼과 제휴해 단기간 고금리를 주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신규 가입자에게 6개월간 5%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벤트 기간이 지나면 금리가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갈아타기를 전제로 하는 단기 상품이다. 한정판 팝업스토어에 가깝다. 잠깐 반짝하다가 사라지지만, 그 순간에는 누구보다 매력적이다.
이자 측면에서도 꽤 괜찮다. 2025년 기준으로 여러 은행과 저축은행이 경쟁하면서 파킹통장 금리가 다양하게 나와 있다. 예를 들면 SC제일은행의 Hi통장은 기본 금리가 잔액 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데, 1억 원 미만 구간에는 연 2.40%, 3억 원 이하 구간에는 연 2.90%, 3억 초과 구간에는 연 3.40% 정도다. 괜찮다는 말은, 일반 예적금과 비교할때 그나마 금리가 낫다는 말이다.
이런 통장들은 보통 “우대 조건”이 붙는다. 예를 들어 급여 이체, 카드 사용, 간편결제, 자동이체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더 높은 금리를 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금리만 보고 달려들면 기대만큼 못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건을 꼼꼼히 봐야 한다.
정리하자면, 우대 조건을 잘 채운다면 일반 은행형이 무난하다. 조건 따지기 싫고 편리함까지 원한다면 인터넷은행형이 정답이다. 고금리가 최우선이라면 저축은행형이 매력적이다. 단기 자금을 굴리려면 특판·제휴형이 알맞다.
결국 파킹통장은 ‘돈을 잠시 세워두는 주차장’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프랜차이즈 카페처럼 안정적인 은행형을, 어떤 사람은 편의점처럼 빠르고 간편한 인터넷은행형을, 또 다른 사람은 숨은 맛집 같은 저축은행형을 고른다. 이벤트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면 팝업스토어 같은 특판형이 어울린다. 중요한 건 내 돈이 당분간 머물 곳을 어디로 정할지, 즉 내가 원하는 ‘안정과 수익의 균형’이 어디 있느냐에 달려 있다.
파킹통장은 안정성과 유동성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월급 들어온 돈을 일정 기간 세워두고 싶거나, 비상금을 관리하고 싶은 사람에게 좋다. 적어도 원금 걱정 없이 “내 돈이 잠시나마 일한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준다.
CMA
CMA(Cash Management Account)는 증권사가 제공하는 계좌다. 이름은 통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증권사의 운용 기능이 뒤섞여 있다. 핵심은 고객이 맡긴 돈을 RP(환매조건부채권)나 발행어음 등 비교적 안전한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이자로 돌려주는 구조라는 점이다.
CMA는 증권사 계좌이지만 은행 통장처럼 쓸 수 있는 특성을 가진다. 고객이 맡긴 돈은 RP나 발행어음 같은 안전성 높은 상품에 투자되고, 그 수익이 이자 형태로 돌아온다.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붙고, 언제든 돈을 빼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다만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CMA는 투자 성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언젠가 주식이나 펀드도 해 보고 싶다”는 사람이 CMA를 통해 금융 앱에 익숙해질 수 있다. 또 프리랜서나 자영업자처럼 수입이 일정치 않은 사람은, 생활비 통장처럼 쓰면서 투자 준비금을 같이 굴릴 수 있는 통로로 쓸 수 있다.
CMA 계좌를 처음 접하면 마치 뷔페 메뉴판을 보는 기분이 든다. 이름은 거창한데, 막상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발행어음형, RP형, MMF형, MMDA형… 네 가지 메뉴가 있는데, 설명을 읽어봐도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건 단순히 “내 돈을 어디에다 맡겨서 굴릴까?”의 차이일 뿐이다.
먼저 발행어음형 CMA를 떠올려보자. 이건 마치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빵집 사장이 “내가 직접 빵 쿠폰 발행해줄게. 나 믿고 맡겨. 대신 이자(빵)를 넉넉히 줄게” 하는 것과 같다. 금리는 네 가지 중 가장 높다. 대신 쿠폰이 국가 보증이 아니라 ‘빵집 사장 보증’이니, 빵집이 잘 나가면 득이고 혹시 망하면 쿠폰이 휴지조각 될 수 있다. 결국 사장의 신용도를 믿는 셈이다. 수익률은 높지만 예금자보호가 안 된다는 점이 바로 이 구조다.
RP형 CMA는 조금 다르다. 이건 마치 “내가 국고채라는 안전한 보증서를 잠깐 맡아두고, 약속한 날짜에 다시 돌려줄게. 그 사이에 약간의 이자를 얹어줄게”라는 방식이다. 그래서 원금이 흔들릴 위험은 거의 없다. 대신 이자는 발행어음형보다 낮다. 쉽게 말해, ‘국가 보증’ 덕에 안정성은 높은 대신 수익은 조금 양보하는 셈이다.
MMF형 CMA는 펀드다.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짧게 굴려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주로 초단기 채권이나 기업어음 같은 안전 자산에 투자한다. 그래서 RP형보다 수익이 조금 더 나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게 ‘펀드’라서 원금보장은 없다. 마치 동네에서 친한 사람 몇 명이 짬짬이 모은 돈을 운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부분은 잘 굴러가지만, 혹시라도 상황이 꼬이면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MMDA형 CMA는 은행 통장과 거의 비슷하다. 은행 수시입출금 통장에 돈을 넣어두는 느낌이다. 예금자보호도 적용돼서 1억 원까지는 국가가 보증해준다. 대신 이자는 네 가지 중 제일 낮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창고’에 맡기는 대신 보상은 적은 구조다.
정리하면, 발행어음형은 ‘믿을 만한 사업가에게 맡겨서 높은 이자를 받는 대신 위험을 감수하는 것', RP형은 ‘국가 보증서를 담보로 맡기는 것’, MMF형은 ‘짧게 모은 돈으로 펀드 돌리는 것’, MMDA형은 ‘은행 금고에 넣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초보 투자자가 선택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안전이 최우선이면 MMDA형, 안전도 챙기면서 무난하게 운용하려면 RP형, 단기 수익도 조금 노리고 싶다면 MMF형,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가 중요하다면 발행어음형을 선택하면 된다.
결국 CMA는 특별한 투자상품이 아니라, 내 돈을 어디에 두고 쉴지 고르는 숙소 같은 개념이다. 어떤 사람은 ‘풀옵션 호텔(발행어음형)’을 고르고, 어떤 사람은 ‘국가 보증 민박(RP형)’을 고른다. 또 어떤 사람은 ‘친구들과 함께 단기 합숙소(MMF형)’를 택하고, 누군가는 ‘가장 튼튼한 금고(MMDA형)’를 고른다. 정답은 없다. 본인이 원하는 ‘안전 vs 수익’의 균형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일 뿐이다.
파킹통장과 CMA를 직접 비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파킹통장은 안정성이 강점이고, CMA는 활용성과 투자 연계성이 강점이다. 만약 월급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싶고, 돈이 묶이는 게 부담스럽다면 파킹통장이 더 어울린다. 반면 투자에 관심이 있고, 금융 앱 사용에 익숙해지고 싶다면 CMA가 좋은 징검다리가 된다.
이렇게 운용하면 좋다. 매달 월급 일부를 파킹통장에 넣고, 여유 자금은 CMA로 옮긴다. 생활비 계좌로 파킹통장을 쓰고, 조금씩 투자하고 싶은 돈은 CMA에서 잠자게 해 두는 것이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사람은 안정 자금을 파킹통장에 두고 기회 자금을 CMA에 넣는 전략을 쓰는 것이 좋다.
사실 파킹통장이나 CMA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그대로 재테크의 기초 단계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투자를 하기전에 내 시드머니 혹은 투자자산을 보기 쉽게 나눠놓는다고 생각하면 좋다. 그러면서도 예금이나 적금보다 좀더 높은 이자를 받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재테크 초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률보다 “돈이 조금이라도 굴러간다”는 감각을 직접 느껴보는 것이다. 파킹통장도 CMA도 모두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일단 증권사 계좌를 만들고, CMA부터 가입했다. 그곳에 1000만원을 넣어놨다. 매일매일 500원 정도의 이자가 쌓이고, 이 이자는 그대로 출금할 수 있다. 10일이 지나자 5000원이 모였다.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 몇개를 사먹었다. 뭔가 뿌듯한 기분이었다.
요새는 파킹통장과 CMA 금리가 많이 떨어져서 예적금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을 유동적으로 굴릴 수 있고, 돈 자체를 불리는 듯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 돈을 가지고 투자도 자유롭게 가능하다. 그러니 예금과 적금만 하고 있는, 원금 보호라는 멍에에 갇혀사는 당신. 일단 증권사 계좌부터 만들고 파킹통장이나 CMA를 시작이나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것이 위대한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