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를 봤습니다. 과거 취재원이 모 기관장의 수장이 됐는데, 업무보고 자리에 나왔다는 얘기를 동료 기자들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 근데, 좀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디테일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그 취재원이 답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날카로운 지적과 힐난이 이어졌습니다. 근데 저는 해당 분야를 잘 몰라도, 너무 디테일해서 그 공직자가 매우 당황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몇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대통령이 머리가 좋고 디테일하구나. 동시에 공직자들은 정말 좀 무섭긴 하겠구나. 나아가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안을 직접 알고, 이해하고, 그렇게 지시하려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만기친람 대통령의 날카로운 말투에 긴장하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좀 통쾌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우려가 되었습니다.
만기친람(萬機親覽) 은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의 한자성어로, 주로 전제 군주제에서 최고 권력자가 국정 전반을 직접 챙기는 통치 방식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 상사입니다. 상사가 숫자에 밝고 업무 구석구석을 꼼꼼히 챙기면 조직은 긴장합니다. 긴장은 종종 성과로 이어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디테일 행정’은 그런 장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처 업무보고 생중계에서 대통령은 정책 하나하나를 짚으며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를 들어 질문했고, 장관과 기관장들은 준비 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내야 했습니다. 공직사회 전반에 대충은 통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낸 셈입니다.
이 대통령이 디테일에 강한 행정가라는 평가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부터 현장을 직접 찾고 실무 논쟁을 피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코로나 방역 당시 신천지 본부로 직접 출동했고, 계곡 불법 시설물 단속에선 상인들과 공개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쇼 행정’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동시에 ‘일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리더’라는 이미지도 얻었습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런 스타일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요구하는 역할의 차이입니다. 대통령은 모든 행정을 직접 챙길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곧 국가의 우선순위가 됩니다. 외화 밀반출, 고체연료 로켓, 올바른 어휘 사용까지 대통령이 이번 업무보고에서 직접 언급한 사안들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목한 문제에만 행정 역량이 쏠릴 경우, 상대적으로 덜 보이는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릴 위험이 큽니다. 행정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며, 균형이 핵심입니다.
디테일 카리스마의 또 다른 부작용은 책임의 집중입니다. 대통령이 말단 업무까지 직접 간여할수록,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대통령에게 돌아옵니다.
외화 반출을 막기 위해 출국자의 책을 전수 검사한다면 공항은 마비될 수 있습니다. 그 불편과 분노는 결국 대통령을 향하게 됩니다. ‘백해룡 건’처럼 대통령이 개별 사안에 깊이 개입할수록, 정책 실패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판단 오류로 인식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최근 불거진 ‘환단고기’ 논란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사안을 공개 석상에서 꺼내면서 불필요한 역사 논쟁이 촉발됐습니다.
대통령실은 의도와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언제나 맥락보다 결과가 더 크게 남습니다. 디테일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정치적 오해와 논란을 키운 사례입니다. 나 이런 것도 아니까 긴장해! 하는 으름장은 효과적이지만 대통령 역시 사람입니다. 모든걸 잘 알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환단고기 논란같은 사태가 벌어집니다. 굳이 발생하지 않아도 될 사안이었습니다.
업무보고 생중계 역시 양면성을 지닙니다. 국민이 정책 결정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공개된 자리에서의 질타와 면박이 반복되면, 관료들은 정책적 토론보다 대통령의 눈치를 먼저 보게 됩니다. 대통령의 퍼포먼스만 부각되고, 행정은 점점 ‘보여주기용’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이는 대통령이 의도한 개혁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분명히 일에 강한 리더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필요한 역량은 ‘모든 걸 다 잘하는 상사’가 아니라, ‘잘 돌아가게 만드는 조율자’입니다. 성남시장이나 경기지사 시절에는 가능한 방식일지 몰라도, 국가 운영의 최종 책임자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다릅니다.
디테일을 챙기는 능력과 말을 아끼는 절제는 함께 가야 합니다. 대통령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행정의 온기가 고르게 퍼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만기친람보다 더 어려운 대통령의 일입니다.
윤석열같이 역량이 떨어지는 인사가 저지른 계엄 사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열정은 충분히 느껴집니다. 열심히 해도 뭐라고 하니까 짜증나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평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어쩔수 없는 노릇입니다. 대통령은 원래 그런 자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