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덕목, 그리고 기사만 잘 쓰면 안되는 이유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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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대학 언론사 기자분께 메일이 왔습니다. 신문방송학과 분이셨는데, 수업 과제로 현직 기자와의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전화로 통화를 했습니다.


한 30분 정도 진행했는데, 엄청 디테일하게 이것저것 여쭤보시더라고요. 기자로서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 그리고 요새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일하는게 어떤지 등등. 또 좋은 기자와 좋은 기사는 무엇인지. 편하게 인터뷰에 응했는데, 대답하면서 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예 기사로 올라왔는데, 좀 부끄럽지만 공유해봅니다.


http://www.kkob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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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좋은 기자의 덕목과 요건이 무엇인지 정리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 의견이 정답은 아니겠습니다만,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느꼈던 것들입니다.


우선 취재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어떤 사안을 발굴하는 능력입니다. 끈기와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안이 터졌을때 집요하게 사건 관계자와 접촉을 시도하거나 발품을 팔아 뭐라도 하나 건지려는 노력입니다. 창의력은 취재가 막혔을 때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막힌 취재를 어떻게 풀게 할건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안가는 곳에 가고, 남들이 안 만나는 사람을 만나야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려면 성실함과 끈기, 창의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건 사실 본투비라기 보단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맡은 이 기사와 사안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끈기도 생기고, 창의력도 샘솟습니다.


다음으로는 기사작성입니다. 취재를 아무리 잘해도, 기사를 못쓰면 독자나 대중에게 잘 전달이 안 됩니다. 내가 열심히 모은 소스를 바탕으로 요리를 만드는 작업이 기사쓰기 입니다. 문장을 짧게 쓰고, 스트레이트 형태로, 역삼각형 모양으로, 중요한걸 서두에 배치하되 문단별로 잘 연결되면서도 주제의식을 분명히 드러내는 글쓰기가 기사쓰기입니다.


원래 언론사에선 1대1 도제식 교육을 통해 기사작성법을 전수해왔습니다. 근데 요새는 사실 기자들의 숫자도 부족하고, 너무 일에 치이는 통에 제대로 된 기사 교육이 잘 안됩니다. 예전처럼 막 앉혀놓고 봐주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수습이나 저연차 기자들은 일정 부분 스스로 기사쓰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일반 글쓰기와 다른 기자들만의 작문과 문법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1. 타사 기사를 많이 보고 2. 필사도 해보고 3. 선배가 고쳐준 기사와 내가 직접 쓴 기사를 비교하며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터득해야 합니다.


근데 요즘은 AI가 워낙 발달해서 기자들도 AI에 의존합니다. 문장이나 단어도 고쳐달라고 합니다. 기술의 발달을 십분 활용하는 건 좋습니다. 근데 AI에 올인하고, 스스로의 기사쓰기 실력을 키우려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발생합니다. AI가 해줄수 없는 기자만의 기사쓰기 영역이 있습니다. 마감까지 30분밖에 안남았는데 빠르게 8매 기사를 쓴다거나, 후배가 취재해온 기사가 민감한 내용이라 아주 미세하게 데스킹을 해야 할 경우 등입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했어도 이렇게 전통적인 기사쓰기 자체를 대체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니 AI를 맹신? 하는 언론계의 분위기가 좀 두렵습니다. 그럴거면 인간 기자가 아니라 그냥 AI를 뽑게되겠지요. 하지만 당분간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겁니다. 날씨나 증시 같은 주어진 데이터를 단순히 정리하는 역할을 제외하면 아직도 인간의 사고와 사유를 바탕으로 한 기사 작성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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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글 쓰기 그 자체입니다. 기자에겐 칼럼을 비롯해서, 기사를 제외하고도 매체를 통해 내 글을 발표할 기회가 많습니다. 이건 기사 쓰기와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기사는 어느정도 정답이 정해져있지만, 이런 류의 글쓰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 기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관심사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글쓰기 입니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어떤 기자는 기사는 빠르고 정확하고 쉽고 간결하게 잘 씁니다. 반면 칼럼은 엄청나게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럼이 너무 기사 같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보다 분명한 시각과 함께 다 알려진 사안이라도 좀 다르게 보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찰진 문장력이나 새롭고 신선한 소재가 중요합니다. 좀더 창의력이 요구되는 글쓰기라 하겠습니다.


언급한 세 가지 덕목을 다 갖춘 기자는 드뭅니다. 있다면 초에이스로 언론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겁니다. 각 언론사마다 이런 에이스 기자들이 있습니다. 분명한건 그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사실 요새 드는 생각은, 이 3개 가운데 하나만 해도 요새는 에이스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3개 중에 자신이 꼭 이루겠다는 부분에 일단 올인하고, 나머지는 더 노력해나가는 그런 마인드가 필요해 보입니다. 참 어려운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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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저는 요새 브런치에 계속 써 왔듯이 기사만 잘 쓰는 기자에 회의감이 들고 있습니다. 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제는 매체보다 기자 개개인의 퍼스널리티나 명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됐습니다. 주요 방송사나 신문사, 통신사 소속이라고 해서 기자들이 다 일을 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매체를 먼저 내세우는 기자들이 좀 없어보이고 구려보이는 그런 시대입니다. "내가 KBS 기자인데" 하면 과거에는 다들 인정을 해줬습니다. 근데 요새는요? 전혀 아닙니다. 취재와 기사작성, 그리고 기자로서의 글쓰기까지 3대 덕목을 두루 인정받는 사람은 큰 매체가 아니라도 작은 매체에도 많습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더 큰 언론사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실력만 갖추면 그 다음은 운 입니다.


전 그래서 자신이 어느매체 소속이라고 자랑하면서 으스대는 그런 기자들을 극혐합니다. 그런 사람치고 취재를 잘하거나 기사를 잘쓰거나 다른 글쓰기에 능숙한 기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촌스럽게 매체빨로 평생을 살면서 별다른 노력도 안하고 함포고복하는 그런 기자는 이제 도태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덧붙여, 요새는 기사로만 자신을 보여주는 시대는 끝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단독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연차때야 연습과 적응의 차원에서 단독도 하고 하는건 좋은데요. 근데 단독 달아봤자 일반 시민과 대중 누가 알아줍니까? 단독하면 곧바로 베끼는 통신사가 네이버 1위로 올라가는 그런 세상입니다.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했다는 자부심 정도로 그칠 일입니다. 그러니 단독에 올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 차라리 3매짜리 단독하고 스스로의 뽕에 찰 시간에 대중들이 뭘 궁금해하는지 더 파악해서 더 많은 사람이 읽을만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그게 막 연예인 얘기나 자극적이지만 않다면 그런 기자가 향후에는 더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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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툭하면 하던 말이 있습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 아니요.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자들이 책도 쓰고, SNS도 하고, 유튜브도 만들고, 방송도 나가고, 블로그도 하면서 더 자신을 어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기사만 쓰고 땡치던 글쓰기를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더 갈고 닦아야 합니다. 기자라고 일반인보다 더 글을 잘쓰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러니 기사만 쓸 게 아니고 온갖 플랫폼을 통해 글을 쓰고, 이를 통해 대중의 반응을 보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더 얻고, 취재나 글 소재를 찾아야 합니다. 맨날 보고 밥먹는 출입처 취재원보다도 이런 더 많은 대중의 의견을 고민하고 찾는게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요새 네이버 블로그를 합니다. 블로그에는 경제와 재테크 이야기를 올리고요. 브런치에는 제가 관심있는 방산 쪽과 기자 생활 자체를 업로드 합니다. 저는 제가 일하는 언론사 신문 지면에 칼럼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사 이외에도 여러가지 글쓰기를 하니까 오히려 제 안목과 시각이 넓어지는 기분입니다. 신문 기사 쓸때처럼 누구 눈치 안봐도 되니 글이 훨씬 더 술술 나옵니다.


기자가 자신이 맡은 기사에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고치는 건 너무나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그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최근 언론계가 그런 전통적인 기자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뭔가 새롭게 시도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기존 기자와 다르게 더 바쁘고 부지런하게 자신을 연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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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기자를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기자 초년생 분들.


기자의 세가지 덕목을 위해 정진하시되, 꾸준히 뭔가 새롭게 기자생활을 통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잡아두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선배들에게 크게 배울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 방식대로, 그저 무자비하게 기자란 이런 직업이다. 에이스 기자는 모름지기 이렇게 해야한다. 너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고 과격하게 강요하는 그런 선배는 피하세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따랐다가 스스로 도태될 수 있습니다.


또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만 고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인이 한두번 경험하는 건 좋지만 정경사를 못했다고 좋은 기자가 아니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젊은 시기 정치부 등에서 시작할 경우 이상한 바람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 실력은 하나도 안 되는데, 오만이 깃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기자 인생이 꼬이는 겁니다. 권력자와 나란히 말을 섞으면서 본인이 대단한 사람이 된 양 착각하게 됩니다. 좋은 기자가 아니면서 겉멋만 든, 후배들이 들어오면 기피하는 그런 불쌍한 기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케이스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어차피 인기없는 이 언론 바닥, 저런 마인드로 정신승리하며 사는게 행복해 보이기도 했는데, 아닌 것 같네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살기 싫습니다. 술자리서 나만 맞다, 나만 옳다, 열변을 토하면서 자신의 취재에 한치의 흠결도 없다는 식으로 연설하는 그런 기자들의 모습에 신물이 나거든요. 저런 케이스가 이렇게 커가는 겁니다.


그러니 항상 겸손하게, 그리고 항상 배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러지 못해서 제 과거 기자생활이 부끄럽고 아쉽습니다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정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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