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회사 인사가 났습니다. 맡고 있던 뉴미디어팀장직을 내려놓고 경제부로 이동했습니다. 직함은 거창한데요. 금융팀장으로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와 은행 업계 전반을 맡게 됐습니다. 증권과 카드 쪽도 관여하고요. 평소 관심있던 분야긴 한데 제가 처음 맡은거라 참 부담이 많이 되는 나날입니다.
기자는 인사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오죽하면 회사를 옮기는 것 같다고들 합니다. 맡는 영역이 너무 다르니까요. 저는 3년전 세종시에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를 맡았습니다. 세금과 예산, 에너지와 기업 간 공정거래 기사를 매일 썼습니다.
그러다가 1년만에 사회부 사건팀장으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턴 사건사고와 경찰 기사를 썼고요. 이후 뉴미디어팀에서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SNS 컨텐츠와 마케팅을 담당했고, 이제는 매일 환율과 증시 코스피5000 돌파와 경제성장률 뉴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천지개벽이죠?
기자 생활 초반에는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케어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맨날 똑같은 업무만 하면 지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확실히 다른 영역의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게 좋았습니다.
반면 단점도 있습니다. 전문성이 좀 떨어진다는 거에요. 1~2년마다 부서를 옮기면 좀 사람도 사귀고 출입처도 잘 알게 될 때쯤 또 출입처를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발령 받은 그날부터 그럴싸한 기사를 써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당황하게 됩니다. 잘 모르는데 내가 쓰는 기사가 과연 맞는 것인가. 무슨 사안이 터졌는데 도대체 누구에게 전화해서 취재를 해야 할 것인가. 연차와 상관없이 인사 직후마다 겪는 성장통입니다. 14년차 기자인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새 그래서 잠을 잘 못자고 있습니다.
환율이 1500원대를 위협하는데 어떤 사람에게 전화해서 뭘 물어봐야 하지? 정부는 환율 대책을 어떻게 짜고 있고,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발령 일주일만에 누군가에게 취재해야 합니다. 근데 아는 사람은 없고, 전화하면 싸늘한 반응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타사 기자들은 오래 출입하고 아는 취재원도 많아서 뭔가가 나올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면 참 괴롭습니다.
가끔 궁금했습니다. 왜 기자들은 계속 인사가 나서 부서를 이동할까. 그냥 한 출입처에 10년 20년 있으면 그 분야에선 전문가가 되고 좀더 깊이 있는 기사를 쓸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근데 10년 넘게 기자생활 하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사실 한 출입처에 2년 이상 있을 경우 활력이 좀 떨어집니다. 물론 전문성을 가지고 전문기자로서 오랜시간 한 출입처를 맡는 분들도 계십니다.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근데 그만큼 그분들은 해당 분야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기자분들이고요.
일반적으로는 새로운 분야를 맡아서 새로 에너지를 얻고, 관심사나 전문 분야를 더 늘려가면서 결과적으로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라는 언론사의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가 적절히 필요한 게 언론사거든요.
저만 해도 입사 직후 사회부 경찰팀에 있다가 산업부에서 부동산과 IT를 잠시 맡았습니다. 그러다 사건팀 돌아온 뒤 정치부에서 청와대를 맡다가 온라인뉴스부에서 온라인 기사를 썼습니다. 이후 다시 청와대 갔다가 국회를 맡았고요. 이후 세종으로 내려가 경제부처를 담당하다 사건팀장, 뉴미디어팀장을 거쳐 지금 다시 경제부로 왔습니다. 주로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뉴미디어와 온라인팀에서 기자 생활을 보낸 셈입니다.
저는 항상 인사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남들보다 더 그랬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제가 이뤘던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하얀 도화지가 제 앞에 다시 놓이는 것 같았거든요. 정성들여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고 그랬는데 그 아까운 그림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달까요.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좋고 즐겁지만, 이제 슬슬 지금까지 만난 인연들과 더 깊게 소통하며 인맥의 저변을 늘리는 게 아니고 그 깊이를 더 다지면서 나아가야 할 때 같습니다.
특히 한국은행은 참 어려운 출입처 같습니다. 거시경제를 다루다 보니 일단 용어나 보도자료 수준이 너무 어렵습니다. 손에 잡히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기존 출입기자들 기사도 엄청 고차원적입니다. 나라 경제와 미래를 걱정하는 그런 느낌으로 전문성이 뿜뿜 묻어납니다. 경제 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걱정이 참 많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격려를 주셨습니다. 14년차 기자면 이제 중견인데 수습처럼 긴장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너무 감사한 위로입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연차와 능력은 별로 비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보다 경제부 오래 출입한 후배가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기사도 잘쓰고 하겠지요. 요새 저는 연차로서 누군가를 재단하고 이런 생각은 다 버렸습니다. 좀더 현실화됐달까요. 저보다 일 잘 하면 후배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소중한 동료지만 또 어찌보면 저의 라이벌입니다. 그들에게 최대한 빨리 배우고, 하나라도 더 묻고 해서 빨리 적응을 해야 14년차가 되어서도 왜 이리 일을 못하냐는 소리를 안 들을 겁니다. 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출입처에 빨리 적응하고 싶습니다.
한국은행 자체가 학자적인 분위기가 많이 풍기는 조직인것 같습니다. 다들 엘리트에 뛰어난 분들이라 제가 편하게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건 최대한 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등록도 했고, 직원들에게 인사 문자도 보냈습니다.
여기서는 기사를 어떻게 발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자료가 나오지만 그거만 처리하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고 재미도 없어보입니다. 그럴려면 정식 기자가 아닌 그저 인턴을 보내도 될 것 입니다.
다만 부처와 달리 한국은행은 사람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사실 여기는 분석하고 조사하는 기관입니다. 통화량 결정하는 금통위를 제외하면 막 엄청나게 뭔가를 시행하고 하는 느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곳을 일단 담당하는 저는 어떤 재밌는 기사를 어떻게 발굴해야 할까요? 정적인 느낌의 기관에서 어떻게 활력 넘치는 활어같은 기사를 찾아내야 할까요? 고민이 되는 지점입니다.
어찌저찌 이번 성장통도 6개월 정도 지나면 좀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도 열심히 할 테니까요.
이 글을 보시는 우리 기자 후배님들도 혹시 현장이나 오며가며 불쌍한 저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정신 놓고 있으면 조언도 해주시고 그러면 좋겠습니다. 경제부에서도 웃으며 즐겁게 일하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만에 기사를 쓰고, 또 누군가의 기사를 고치는 게 참 어렵네요.
이번주에는 이런 기사들을 썼습니다. 앞으로 매주 제가 쓴 기사 일부를 소개하고, 저도 그러면서 한주를 정리하는 그런 글도 써보겠습니다. 다들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827864?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827817?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827640?sid=10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827169?sid=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