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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9. 2019

경마공원의 추억



최근 과천 경마공원에 다녀왔다. 발디딜틈 없이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경마 정보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담배를 피거나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쳐다보거나 했다. 경마는 7가지 종류다. 1등 말을 찍는 단승, 1-2등을 순서대로 맞추는 쌍승, 1-2-3등을 선택하는 삼쌍승과 상위 2등 말을 고르는 복승을 포함해 총 7가지 베팅 방식이 있다. 배당률도 말과 기수, 방식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보통 7~10마리의 말이 한 경기에 출전하는데, 우승 전적이 많고 해당 기수와 출전한 경험이 다수인 말은 배당률이 낮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그 말에게 돈을 걸기 때문이다. OMR 카드 형식의 마권을 사도 되고, 4차산업혁명시대 답게 앱으로 승자를 찍어도 된다.


서울과 제주 부산경남에서 대략 30분 간격으로 열리는 경기는 평균 40억원의 판돈이 오고간다고 한다. 고객이 한 경주당 베팅할 수 있는 상한액은 10만원이다. 사행성 베팅 근절을 위해 한국마사회가 금액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다만 10만원짜리 마권을 각 발권소에서 얼마든지 여러장 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한 경주에 수백만원씩 베팅할 수도 있다. 가장 비실비실하고 경험이 부족한 말에는 400% 배당이 붙어있었다. 10만원을 걸면 4000만원을 버는 것이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겠다만..  


경기시작 전 베팅 마감때까지 치열한 눈치싸움이 보인다. 다섯차례 2000원씩 돈을 걸었는데 경마지에 있는 순서대로 들어온 것은 한번밖에 안됐다. 배당률이 낮아서 거의 본전이다. 1000m 경기는 눈깜짝할 새에 끝나는데 관중석에서 보이는 거리까지 말들이 달려오면 함성이 커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마다 "뛰어" "달려" 소리친다. 대부분 나이가 있는 중년 혹은 노년이다. 


경주가 마무리되면 여기저기서 탄식과 한숨이 터진다. 그리고 또 암전이다. 일부는 광장 중앙에 위치한 마구간에서 경주 전 말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본다. 아마도 그들 대다수는 어느정도 '말' 전문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예 유모차를 끌고 온 애엄마도 있었다.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도시락과 빵으로 한끼를 때우며 인생을 말에 거는 이들도 부지기수라 한다.


다음 경기까지 사람들은 마권을 보고, 경마정보지를 읽고, 정보지에 적힌 경마전문가에게 전화를 해서 조언을 구한다(물론 유료). 젊은 이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은 주로 연인들이 앉아 있고, 경마장 바깥과 1층, 2층에는 중노년의 경마광들이 포진한다. 모니터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하루종일 경마를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밤이 으슥해지자 공원 근처에는 대출을 권유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장님 차 어디다 두셨어요" "얼마 빌리시게" 하면서 접근했다. 경마장 주변 노상 포장마차는 어스름이 지면 붐빈다. 혼자 혹은 삼삼오오 소주를 마시면서 경마 얘기를 한다. 아마도 그중에 오늘 '대박'을 터뜨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대박을 터뜨릴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냥 나는 말도 사람도 경기 직후 꽝을 맞은 마권처럼 구겨져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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