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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9. 2019

행군


난 입대 후 첫 훈련이었던 유격 복귀 행군에서 낙오했다. 유격장으로 가는데 40km을 걸었다. 4박 5일간 훈련을 받았다. 발이 부르튼 상태에서 60km 복귀행군을 시작했다. 당시 분대장은 자신의 부삽을 내 군장에 넣었다. 천으로 두른 군장 한쪽이 삐죽했다. 부분대장은 자신의 방독면을 내 왼쪽 허리에 묶었다. 양쪽으로 덜렁대는 방독면이 수시로 내뿜는 계급의 무게에 자칫 중독될 지경이었다.


옆 소대 병장 하나가 나를 가리키며 짐짓 "3소대 막내 완주하면 내가 장을 지진다"고 유쾌하게 소리쳤다. 찢어진 군화 하나를 유격장에 몰래 버리고 역시 찢어진 군화로 절뚝대며 걷는데 6시간 가량이 지나자 왼쪽 엄지발가락에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물집이었다. 


말랑했던 그곳은 딱딱해졌다가 쿡쿡 쑤시다가 이윽고 바늘로 찌르는 거 같은 고통이 됐다. 나는 한마리 경주마 혹은 실험실의 쥐처럼 다그닥, 혹은 찍찍대며 앞사람 헬멧만 보고 걸었다. 전투력이 넘치는 중위 혹은 중사 하사는 야 뛰어! 하면서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렸다. 물집이 터질때 톡, 하는 소리가 들릴리 없지만 내 발에서는 사정없이 톡톡소리가 흥겹게 머릿속을 울렸다.  


낮에 출발했는데 저녁이 됐다. 하늘의 별은 어찌 그리 총총대던지 서럽게도 총총댔다. 총 14시간 걷는 코스였는데 1시간여를 앞두고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군화를 벗었는데 양말이 피로 범벅이 됐다. 눈물이 찔끔했다. 이대로 차를 타고 복귀하면 쏟아질 야유와 갈굼보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다. 훈련 직후 백일휴가를 나왔다. 군화를 신고 절뚝대며 동서울터미널을 횡단했다. 


집에 와서도 3일간 병원에서 드레싱을 받았다. 부모님은 속이 상했다. 나는 "이등병은 누구나 그렇다"고 둘러댔지만 복귀날 초소로 향하는 길목이 정말 죽기보다 싫었던 것 같다. 선임 하나가 사오라고 신신당부한 떡볶이 1만원어치를 들고 초소를 지나치는데 코를 찌르는 매운 냄새에 온 발이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오늘 퇴근 후 집으로 오는데 근처 포장마차에서 비슷한 냄새가 났다. 나는 여전히 끝없는 행군에서 사정없이 낙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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