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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9. 2019

시인의 사랑


영화 ‘시인의 사랑’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포구에 걸터앉은 시인이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사람은 없고 항구는 적막하다. 제주의 바람에 엄마가 뒤집어 쓴 보자기와 아들의 더벅머리가 경쟁하듯 파도처럼 일렁이는데, ‘살아보니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더라만 그래도 너는 젊어서 좋겠다’는 엄마의 말이 바람처럼 달려와 아들의 마음에 파도와 같이 박힌다. 


별거 아닌 일상도 섬세한 감성으로 예리하게 끄집어내 그 안에 운율을 양념치고, 삶과 인생과 사랑을 노래하는 게 시인이라면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정취는 시인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영감이 되겠다 싶었다. 오두막을 지어 자연을 탐구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시어만 들어도 때 묻지 않은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그런 좋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관심이 가서 찾아보니 영화는 실제 제주에 거주 중인 현택훈 시인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40대 중반인 현 시인은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4년 전 ‘곤을동’이라는 시로 제주 4·3평화 문학상을 탔다.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지 / 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서 곤을동 / 안드렁물 용천수는 말 없이 흐르는데 / 사람들은 모두 별도천 따라 흘러가 버렸네’로 시작하는 시는 한결같은 애잔함을 품고 있다. 


돈 안 되는 시인으로 살기에 세상은 너무 잔인해서, 그는 애잔함을 맘속에 담은 채 공장노동자, 학원강사, 초등학교 방과 후 강사, 기간제 교사 등으로 변신해 왔다. 지난 4월에는 지인의 건물 한켠을 빌려 ‘시옷서점’이라는 책방을 냈다. 손님은 하루에 1명꼴이지만, 영화가 유명세를 타면 잠시 찾는 이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1년쯤 지나면 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시인 부부는 그렇게 조용하게 시를 쓰며 여생을 보낼 것이다. 용기 없는 내가 택할 수 없는 삶일 것이다.  


나의 애장시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 침묵해야 하다는 것을 / 모두가 알고 있었다’하는 구절을 눈감고 상상할라치면 선생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이 시에 쓰인 기법이 뭐라고’하면 ‘수미쌍관’이요, 했다. 문학도 분석과 암기, 공부의 대상이 되는 개뼉다구같은 교육 시스템하에선 박목월의 ‘나그네’ 조차 흔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 정도면 나도 쓰겠다’는 학창시절의 치기다. 


분량이 긴 소설 대신 어찌보면 간결한 음절로 나열된 시의 경우 한결된 무시를 받기 십상이다. “네가 뭔 소리 하는지 못알아 듣겠어” 하면서 현학을 비판하고, “이건 너무 현실적이라 나도 쓰겠다”며 대중성을 저격한다. 시인을 생각하면 어딘가 괴짜고 풀밭에 누워 하늘만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을 것 같은 이미지가 딱 우리 사회가 시인을 대하는 지점인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최영미 시인이 떠올랐다. 예전에 호텔 갑질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최 시인이 안쓰러우면서도 비판의 목소리에도 일견 수긍 가는 부분이 있다. 다만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시’나 ‘문학’ 따위의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 혹은 4차산업혁명 시대, 무섭게 바뀌는 트렌드에 발맞춰나갈 시간조차 없는 거 같아 보이는 지금에 시로서만 생계를 꾸려가는 예술가를 위한 관용의 자세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삶의 굴레가 오히려 작품엔 득이 됐던 ‘거지시인’ 천상병도 있지만, 그래도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아픔의 시대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꺼내 보며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주는 그런 시 하나 쓰기위해 불면의 밤을 지새는 문학인들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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