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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19. 2019

82년생 김지영


최근 만난 중년의 남성 취재원은 밥을 먹다 대뜸 ‘소설을 읽고 있다’고 했다. 아침에 나오는데 아내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스윽 건넸단다. ‘술 드시느라 책볼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농을 쳤는데 이어지는 그의 말이 사뭇 진지했다. “그냥,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게 됐어요. 무심코 한 내 행동들에 대해서 반성도 좀 하게 됐고요.” 


산전수전 다 겪은 산업역군 아저씨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 인생을 반추하게 만드는 책이라니. 그것도 페미니즘 소설이! 지금까지 25만부가 팔렸는데, 구매자의 22%가 남성이다. 메갈과 일베, 한남과 김치녀 사이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우리 사회에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어준 책인 것 같다. 아직 인쇄매체는 죽지 않았어, 라는 안도감도 든다.


소설은 스포일러랄 것도 없다. 그냥 30대 여성들, 그리고 그의 엄마들이 살아온 삶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린다. 엄마가 당한 차별은 시대에 맞춘 새로운 형태로 딸에게 확대 재생산된다. 남동생에게 분유를 양보해야 했던 유년으로 시작해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이 난무했던 학창시절, 여자에게 더 불리한 취업의 관문과 맹목적으로 육아를 강요하는 결혼생활까지. 한줄 한줄 읽으면서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물론 극단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치밀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우리네 평범한 여성의 일생은 일견 충격적이다. 초딩 시절 횡행했던 ‘옆반 철수가 학교에서 귀신을 봤대’ 식의 괴담처럼 남의 일(특히 일베)인 줄만 알았는데 나도 남자로서 30년을 살아오는 가운데 성차별을 당연시했던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그만큼 쉽게 썼지만 어렵게 다가오는 책이 시사하는 울림이 크다. 펄벅 여사의 ‘토지’나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처럼 인물의 일대기적 방식이 주는 몰입감에 공감의 힘이 더해져 좋은 사유 거리를 낳았다.  


논란은 여전하다. 해당 소설을 패러디한 <92년생 김지훈>이 대표적이다. 소설은 스타벅스가 지난해 시행한 군장병 무료 커피 제공 행사를 소재로 한다. 김지훈은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공짜 커피 행사 소식을 듣고 스타벅스에 간다. 대단한 보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군인으로서 존중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김지훈을 본 여성 세명이 수군거린다. “여자가 스타벅스를 먹여살려줬더니, 서비스는 고기방패(군인)들한테 다 가네”라고 한다. 이야기가 노리는 지점은 ①여성은 군대에 안 가면서 ②대신 나라를 지켜주는 남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도 없다는 것일 테다.



여성의 받는 차별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소설이 남자, 혹은 한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주변에 가사일을 ‘돕는’ 게 아니고 스스로 ‘나서서’ 하는 유부남을 많이 봤고, 문재인 정부는 내각을 꾸릴 때 여성 비중을 대폭 늘렸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일부 사례를 바탕으로 한 무리한 일반화일까. 오늘 한 여교사가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을 설득해 수십차례 성관계를 했다는 기사의 베댓은 "남교사와 여학생이면 더 논란이 컸을텐데. 역차별이다"였다. 아 어렵다 참..


아무튼 누군가의 공감을 이끌고, 생각을 바꾸고, 토론을 가능케하는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좋은 글 잘 봤다. 결론은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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