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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22. 2019

국민의 관심 x 기자의 관심

기자가 본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


개각 혹은 청와대 인사, 검찰 인사를 두고 한 선배는 "기사의 꽃"이라고 했다. 인사가 만사라고, 어떤 사람을 등용하느냐에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의 깊은 의중이 반영되고, 국정 운영의 방향까지 결정된다는 거였다. 인사 과정에 접근하는 이는 대개 매우 소수다. 청와대의 경우 대통령과 비서실장, 몇몇 수석과 비서관 정도만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석한다. 추천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검증하는 곳도 별개다. 국정원의 존안자료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정부이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사람을 평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A 의원이 다음 총리가 된다고 치자. A 의원이 경제인 출신이고 4차 산업혁명 관련 책을 썼거나 하면 총리를 지명하는 대통령이 향후 국정에 있어 경제에 방점을 찍는다는 뜻이 된다. A 총리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여러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경제프렌들리한 입장을 취할 거다. 야당인 B의원을 총리로 등용하면 협치, 탕평 인사가 될 것이고 집권 후반기 방향도 상대방을 포용하는 모양새로 갈 공산이 크다. 검찰총장은 검찰을 장악해야 하는 자리니 어쩔 수 없이 검찰 출신이 하더라도 법무부장관에 비 검찰 인사를 쓰는 것은 검찰개혁을 위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인사는 중요하다. 적어도 기자들 사이에선 그렇다.


민감하고 중요하니 취재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여권발로 하마평이 쏟아져도 본격적인 검증조차 들어가지 않은 인사가 차기 고위직으로 잘못 거론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인 혹은 본인이 원하는 인사를 검증군으로 만드려는 소위 '자가발전'도 허다하다. 그러니 우선 1. 인사군을 귀띔이라도 해줄 수 있는 취재원을 찾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2. 그들의 말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3. 실제로 내부에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의중을 대충이나마 건너건너 파악해야 그나마 신뢰성있는 인사기사를 쓸 수 있다. 미천한 나로서는 아마도 갈 수 없는 길일 것 같다. 이제 또 개각시즌이 다가오는데 벌써부터 물 먹을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신기했던 건 이런 인사 기사의 중요성은 기자들에게만 통용된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 국민들 측면에서는 누가 장관이되고 누가 총리가 되든 별 상관이 없다(조국 전 법무부장관처럼 유명인 건은 차치하더라도). 그것보다는 부동산 정책이나 교육 정책 변천이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다. 어느 지역에 GTX가 개통하는지, 제주 신공항이 생기는지 마는지, 수능 샤프가 바뀌는지 마는지가 실생활에 더 와닿는다. 문득 든 생각은 국민 대다수가 별 관심도 없는 사안을 기자들끼리만 누가 특종을 했느니, 누가 검증을 받았느니 하는 것이 퍽 웃기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사 단독을 하면 뿌듯하고 좋을 거다. 기자실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그 승리의 공기가 달콤하기도 할 거다.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한번의 정신승리로 끝날 뿐 국민 대다수는 별 관심도 없다. 우리만의 리그에서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이다.

 


몇 번의 동창회를 나가면서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 만날 보고 만나고 얘기하는 게 기자, PD, 아나운서 혹은 공무원, 기업 관계자 들이다 보니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접할 기회가 없다. 결혼을 한 친구들은 육아, 솔로인 친구들은 이성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부동산과 주식, 자동차, 재테크와 시집살이, 와이프의 별난 버릇 등이 술안주에 올랐다. 열심히 들어보려 노력했건만 놀랍게도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심드렁하게 느껴졌다. 매일 청와대 사람들과 국회의원을 만나 한일 지소미아와 개각, 검찰개혁과 협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한반도 비핵화 등등의 얘기만 하다보니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잘 와닿지 않았다. 


사실 오만이다. 그들의 삶과 내 삶이 다른 것일뿐 관심사의 경중이 다를 수 없다. 솔직히 나도 정책 방향을 잘 모른다. 그저 일이기에 남들보다 관심이 조금 더 있는 거다. 자꾸 기자가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방향에서 정치의 향방을 논하고 하다보면 오히려 섬 같은 기사를 쓰게된다. 무인도에서 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있는 사안을 무슨 대단한 것인양 착각하고 만다. 그래서 난 좋은 기자란 우선 엘리트의식이 없어야 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기자라고 본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다양한 계층과 계급의 사람을 만나고 생각의 폭을 넓히며 대중이 뭘 듣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라고 생각한다. 

 


지난 19일 MBC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가 생중계됐다. 도떼기 시장이다, 중구난방이다, 민원만 하고 대통령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조금 산만한 부분이 있던 건 사실이다. "나라면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탁현민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말도 이해가 됐다. 


그날 마침 나는 야근이었다. 아예 2개면을 비워두고 분야별로 필자를 정했다. 지난 5월 임기 2년을 맞은 대통령이 KBS에 출연해 대담했을 때도 비슷하게 준비했다. 당시에는 KBS 여당반장이 일대일로 대통령을 인터뷰했고 남북 관계를 비롯해 개각 문제 등과 관련한 질답이 이어졌다.


방송을 보는데 10분정도 지나자 "앗 뭔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다. 30분이 지나자 2개면이었던 지면계획은 1개면으로 줄었다. 기자들은 남북 관계와 개각,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와 검찰개혁,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문제 등 경제 파트관련 질문이 쏟아질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다문화 국민과 성소수자, 자영업자들이 "너무 힘들다"고 대통령에게 토로했다. 지난 9월 11일 충남 아산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인 김민식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민식 군의 부모도 행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우리 아들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대통령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글자라도 놓칠세라 방송을 뚫어지게 보던 기자들도 고개를 떨궜다. 결국 기사 계획은 축소됐다. 처음 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이라 기자들도 어떤 형식과 포맷으로 진행될지 예측하지 못했던 탓이다.



2010년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문 대통령과 비슷한 타운홀 미팅을 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행사에서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로 소개한 한 여성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제 당신(오바마)을 변호하는 데 지쳤다. 나는 ‘변화’를 말한 당신을 지난 대선에서 선택했다. 그러나 어떠한 변화도 아직 체감하지 못했다. 이게 당신이 말한 새로운 변화냐?”라고 힐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잠시 당황하는 듯 하더니 “변명하지 않겠다. 실망시켜 죄송하다.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진솔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간 것이다.


19일 행사에선 대통령을 향해 대놓고 날선 질문을 한 국민은 거의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무제, 검찰 개혁 등에 문 대통령의 답변만 듣고 추가 질문이나 반론이 이어지지 않아 심층 대화가 어려웠다는 평가도 있다. 여론의 관심이 높고 문 대통령이 난처할 수 있는 한·미 동맹 등 외교 현안은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진행자가 온라인 질문으로 간접적으로 묻고 문 대통령의 답변을 듣는 것으로 대체됐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인사 기사가 기자들만의 관심이듯,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의 답변을 듣기 위해 손을 든 300여명도 각자의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질문을 폄하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누구는 다문화 가족과 탈북민은 질의응답이라기보다는 어려운 처지에 대한 관심 촉구 수준에 그쳤다고 평가하지만 나는 시청률이 20%를 넘은 공개방송에서 그들이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조차 소중하다고 본다. 그들이 언제 대통령을 만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일각에선 이번 행사가 쇼라고 힐난한다.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대통령의 모습을 연출하려는 쇼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 아직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것,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각자만의 아픔과 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것. 그리고 전임 정권과 달리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사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정권에 질문한다고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았다.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하는 게 아니고 본인이나 회사의 궁금증을 풀고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대중의 관심을 질낮은 것으로 폄하하고, 무시하고 있다. 생활형 기사를 도외시하고 높은 자들의 관심과 기자들만의 궁금증으로 하루하루 기사를 쓰고 있다. 그러니 대중과 독자로부터 외면받고 '기자양반'이라는 조롱도 듣는다. 이런 오만과 독선이 쌓이고 쌓여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고착화 된다. 권언유착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국민과의 대화는 그렇게 기자들에게 많은 사유를 던지고 있다. 내가 매일 생산하고 쏟아내는 기사가 과연 국민들에게, 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기사인가. 아니 아예 관심이나 있는 기사인가. 지소미아를 묻지 않은 국민들의 모습을 힐난하기보다는 기자생활에 찌들어서 나야말로 제대로 된 기사를 못쓰고 있는건 아닌지, 뜬구름만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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