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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10. 2019

혼밥을 위한 변명


최근 혼밥하는 이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보다 건강도 안 좋고, 우울증도 심하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출처를 찾아보니 얼마전 대한의사협회가 국회에서 열었던 ‘혼밥 괜찮아요? 혼자 먹는 밥, 건강하게 먹기!’ 심포지엄때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 것 같다.


2013~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2만686명 대상)를 분석한 결과 1인 가구의 52.3%는 삼시세끼를 혼자 먹었다. 비만 유병률과 나트륨 초과 섭취 인원이 세끼 모두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이보다 10%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혼밥족은 '함밥'족보다 우울증도 더 심했다고 한다.


의문은 남는다. 사회생활 하느라 선호하지 않는 이와 억지로 함께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서 체하고, 스트레스가 배로 증가해 우울증이 커질 것 같은데? 혼밥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지인 하나는 매일매일 약속을 잡는다. 점심을 같이 먹는 와중에도 저녁 먹을 사람 없다고, 자신에게 지인이 이렇게 없는 줄 몰랐다며 핸드폰을 쉴새없이 두드린다. 아 귀찮아.. 저럴바엔 진짜 그냥 혼자 먹는게 훨씬 정신건강에 도움될 거 같은데.  


혼밥족이 부실한 편의점 도시락이나 라면만 먹을거라고 넘겨짚는 것도 심각한 오류다.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웰빙과 건강에 관심이 많은지, 자기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난 휴일에 거의 약속을 안 잡는다. 사람에 치이고 전화에 치이는 평일을 피해 오롯이 혼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하고 싶다. 밥도 마찬가지다. 다만 건강을 생각해 식단은 내가 짠다. 이게 또 하나의 소소한 재미다. 고구마랑 닭가슴살을 찌고, 과일을 씻고, 아스파라거스도 가끔 삶는다. 굳이 주말에 나가서 고기에 소주 한잔 걸치고 들어오는 것보다 훨씬 몸에 좋은 밥들이다. 사진은 저번 주말 내 점심 메뉴다.


혼밥을 폄하하는 꼰대질은 일부 미디어가 주도하는 듯하다. 최근의 트렌디한 혼밥 기사는 크게 3가지인데 '어느 식당에 갔더니 혼밥이 안 된다고 쫓겨나거나 눈치를 줬다(사골 1)'는 류가 첫번쨰다. '그 식당 상호 공개좀요' '박정희 시대 식당이네. 망해라' 등 혼밥러가 뭉쳐 댓글을 단다. '혼밥이 트렌드가 되면서 식당 문화도 변하고 있다(사골 2)'는 류도 있다. 대부분 광고 기사다. 이번 기사처럼 '혼밥이 몸과 정신에 안좋으니 정부 차원에서 건강 혼밥 레시피 등을 홍보하고 편의점 도시락 영양 표시 의무화를 해야 한다'는 류가 마지막이다. 오오 대안 제시! 근데 또 애꿎은 내 세금이 셀 거 같은 이 느낌은 뭐지..


프로 혼밥족으로서 마지막 야마의 기사의 불편함이 제일 크다. 혼밥족과 1인 가구를 어딘가 결핍된 존재로 상정하는 느낌이 있다. 알아서 챙기고 있는 우리의 건강을 왜 나서서 걱정해 주는지 모르겠다. 결혼하고도 배우자 간에도 밥 못 얻어먹는 이가 많은건 우찌할건지. 밥이야 혼자 먹으면 어떻고 여럿이 먹으면 어때. 그냥 씹고 넘겨서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얼마전 있었던 황교익 혼밥 논쟁을 보면서 혼밥러로서 상처가 있었다. 그는 라디오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1.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인간의 유구한 700만년, 600만년 전통에서 벗어나는 일이죠.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사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인데, 인간이 밥을 함께 먹으면서만 소통을 하나? 우리네 일상 자체가 누군가와 끊임없이 떠들고, 카톡을 주고받고, 전화를 하는 등 소통하며 쌓아 올려진 모래성일진대, 함께 무언가를 먹는 행위가 특히 다른 생활양식에 비해 소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없다. 600만년 간 인간이 주로 함께 밥을 먹었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나. 본인이 맛을 다룬다고 맛과 관련된 행동이 모든 인간을 말해준다는 오만을 부리려면 그만큼의 적확한 자료를 들고나와서 뱉을 말이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건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키우는 다양한 변수 중 하나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2. “(한편으로는 인간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도 있지 않습니까. 감정노동이 싫어서..) 그걸 극복을 해야 하는 거죠. 싫다고 해서 나는 나 혼자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안으로 숨어들겠죠. 그게 자폐인거죠. 사회적 자폐. 단절시키고 나 혼자 밥 먹고 나 혼자만의 다른 생각들은 싫고 하고 말 거야 하는 순간. 박근혜 대통령한테서 그걸 봤지 않습니까”
=자꾸 황교익은 본인이 ‘혼밥하는 개인’이 아니라 ‘혼밥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를 저격했다고 물 타는데 그의 워딩 자체가 개인에 초점에 맞춰져있다. 본인이 뭔데 사회생활에 지친 이에게 ‘극복해야 해, 소통을 해야 해, 숨는 건 자폐야’라고 훈계를 하나? 각자 처한 상황이 있고 선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을 터인데. 평일 내내 쏟아지는 전화와 술자리, 약속에 지쳐 휴일에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혼밥을 일삼는 나를 두고 ‘박근혜’ 운운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있나. 참 평소 많이 듣던 꼰대들의 목소리다. 본인의 미천한 경험을 무리하게 일반화해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며 선구자 혹은 지식인 소리를 듣고 싶거나 ‘아 난 똑똑해’하고 자기위안 하는 부류.



3. “소통을 하지 못하는 인간의 예를 본적이 있는데. 밥 먹을 때 소통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분들이죠. 노숙자들이요. 노숙자들의 틈에 껴서 같이 무료급식을 일부러 받아본 적이 있어요. 그들은 식판을 들고 벽 쪽이나 화단 쪽을 향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오직 밥만 먹습니다. 옆에 사람들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인간들 간의 소통하는 방법을 완전히 잃으신 거죠. 혹은 거부하시거나. 뇌에 큰 고장이 발생을 한 거죠.”
=비슷한 맥락으로 노숙자가 굳이 식사 때만 소통을 거부할까? 일상 자체가 소통에서 벗어난 있는 가운데 식사도 그 단절의 연장선일 것이다. 본인이 음식 뿐 아니라 식사 자체에 대해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다는 티를 내려고 노숙자 사이에 낀 건 좋은데, 한 인간의 넓디넓은 행동양식을 식사로만 풀려다보니 애꿎은 혼밥 테러가 되는 셈이다. 스페셜리스트 혹은 전문가들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 일반인이 왜 노숙자가 됐는지에 대한 분명한 관심 없이 ‘혼밥=소통부재’라는 명제에 모든 지식을 껴맞추다보니 발생한 참사다.

그래서, 황교익의 애꿎은 언론 공격은 매우 공허해 보인다. ‘자폐’와 ‘자폐아’를 혼동한 디스패치의 실수보다 본인이 내뱉은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그의 비겁함이 더 우습다. 내용 상관없이 언론이나 기자를 욕하기만 하면 본인이 피해자가 되는 차암, 좋은 세상이다. 황교익님께선 본인이 혼밥에 대한 아젠다를 만들었다고 일견 자부심을 보이시는데 이미 혼밥은 4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인 우리네 생활의 중요한 생활양식이 됐고, 맛집 좀 다니신 꼰대 아저씨가 병폐로 규정할 만큼 마이너한 문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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