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대중적이면 안 되나요

김동인과 광염소나타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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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광염소나타는 작곡가 백성수의 광기어린 삶을 다룬다. 그는 술과 심장마비로 죽은 아버지와 교양 있고 어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야성적 음악성을 타고난 백성수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온순하게 살았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뒤 홧김에 불을 지르게 된다.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그는 야성적 천재성이 폭발해 전무후무한 명작 '광염소나타'를 작곡하게 된다.


백성수의 진가를 알아본 음악계 K선생의 배려로 그는 작곡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계속해서 광염소나타와 같은 작품을 작곡하려 악상을 떠올리지만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백성수는 본인에게 자극이 되는 범죄를 스스로 저지르며 작곡에 몰두한다. '성난 파도', '사령' 등이 이런 범죄 속에서 탄생한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백성수는 강도가 심한 자극(범죄)이 없이는 훌륭한 곡을 작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마침내 방화·시체 모욕, 살인까지 저지른 뒤 감옥에 갇힌다. 작중 화자인 K선생은 이러한 천재를 단순히 사회윤리 때문에 말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력하게 변호한다. 예술가 협회에서도 힘을 써서 그를 사형집행 대신 정신 병원에 가두게 한다.




소설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대목은 작곡가 백성수의 광기가 아니다.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충격과 감흥으로 한 편의 뛰어난 음악 작품을 내놨던 백성수가 시체를 모독하고 시체를 간음하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단면은 일견 충격적이다. 하나 더 놀라운 부분은 ‘하찮은 범죄 때문에 천재적인 예술가를 희생시켜선 안 된다고 역설’하는 작중 음악비평가 K의 사상이다. 도덕과 예술 사이에서 서로를 소(小)와 대(大)로 치환하며 대를 위해선 소를 희생해도 된다는 위험한 발상은 우리네 예술사에서도 심심찮게 재현돼 왔다.


정도야 다르지만 도덕을 등졌다는 점에서 고갱도 비슷하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타히티로 건너가 불멸과 같은 작품을 남겼던 고갱의 생을 반추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 윌리엄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로 구현된 고갱은 열정과 꿈을 쫓은 위대한 화가로 그려지기도 했다. 동료의 아내를 빼앗고, 종국에는 그녀도 버리고, 타고난 예술적 감각 하나로 살다가 병 걸려서 죽는 한심한 인간도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후대에서는 거장으로 거듭난다. 참 속편한 인생 아닌가.


73441_67275_178.jpg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는 뮤지컬로도 상영됐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는 다분히 '예술지상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1830년대에 프랑스의 작가 테오필 고티에가 주장한 예술이론인 예술지상주의는 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예술 자체 및 미(美)에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도덕적 ·사회적 또는 그밖의 모든 효용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풀면 예술 그 자체를 추구하면서 범죄나 도덕, 사회 정의 등은 후순위로 둬야한다는 논리다. 특히 한국에선 1910년대 유행했던 계몽주의의 반발로 이런 기조가 확산됐다. 심훈이 상록수에서 농촌계몽을 통한 사회 발전을 위해 지식인과 문학의 역할을 강조했다면 이에 반해 김동인은 예술 그자체의 중요성을 추구한 셈이다. 대중문화, 대중예술에 반발하는 엘리트 예술로도 해석된다. 대다수가 즐길수는 없더라도 예술의 수준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오만함도 읽힌다.




실제로 김동인은 예술지상주의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문학적 성취와는 별개로 호사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동료 작가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평양에서 서울로 올라오면 최고급 호텔에서 밤마다 기생들을 옆에 끼고 살았으며 마음 내키면 도쿄를 산보 다니듯 한다고 해 ‘동인식 도쿄 산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는 친일활동으로도 유명하다. 김동인은 1939년 여름 자진해서 총독부를 찾아가 황군 위문 작가단에 끼워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성전종군작가’라고 쓴 어깨띠를 두르고 중국의 전선을 시찰하는 등 노골적으로 친일 활동을 펼쳤다. 매일신보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은) 한 천황 폐하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를 함께할 백성”(1942.1.23)이라는 글을 실었다. 광복 후에는 좌익을 규탄하는 내용을 글을 썼다. 다만 수면제 과다 복용과젊은 날의 무절제한 생활로 1949년 5월부터는 글을 전혀 쓰지 못하고 뇌졸중이 발명해 1949년 말에는 완전히 누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의 가족은 6·25 전쟁 당시 그를 버리고 피난을 떠났다.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에는 살아남기 위해 누구나 그렇게 했다" "글 몇번 쓴걸로 친일을 따지면 모두가 친일이다" "그의 생애는 미워하되, 불멸의 작품은 미워할 수 없지 않느냐"고. 그렇게 따지면 목숨을 바치면서 싸운 의병 뿐 아니라 민중을 위해 헌신한 거리예술가들의 불꽃 같은 삶에 너무 죄송하다. 지금과 다르게 당시는 예술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기였다. 평론가들이 보기엔 수준이 떨어진다 해도 민초의 삶과 식민지배의 고됨, 일본을 향해 저항정신을 펜과 붓, 카메라로 찍어낸 예술가의 작품이 훨씬더 아름답고 가치있어 보인다.




예술판의 남성중심주의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이 좋은 예다. 그는 2010년 7월∼2016년 12월 여성 배우 9명을 25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감독은 "의식하든 못하든 모든 불합리한 것들이 관행처럼 잠재돼 있던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노출되고, 제가 그 책임을 지게 된 입장"이라고 했다. 또 "(성추행이) 연극인들에 의해 용인돼 왔다고 생각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변명했다. 연극계의 오랜 관행이니 선처해달라는 것이다. '연극만 잘하면 되지'라는 뻔뻔한 예술지상주의의 발로다. 할리우드를 강타한 감독과 PD들의 여배우 상대 성범죄도 그렇다. 예술의 자율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며 인간으로서 저질러선 안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문외한이다만 예술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조지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돌이켜보건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고. 소설가 김훈은 노동자의 안전문제에 대해 직접 나서고 있다. 오토바이 사고 피해자를 만나고, 신문에 글도 기고한다. 소설가 김영하도 정부의 연희동 '개나리언덕' 개발에 반대하며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김동인류의 예술지상주의에 따르자면 이들은 현실 문제에 눈감고 작품 생산에만 몰두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예술가도 사람이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가운데 작품도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오만한 엘리트주의를 타파하고 거리로 나온 예술가들이 본인들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다수와 호흡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예술과 현실의 접점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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