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국과 우상의 눈물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전상국 소설가의 '우상의 눈물'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면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내뱉은 말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학교 짱의 독백이다. 학교라는 공간안에서 권력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 전상국은 소설을 통해 표면적인 폭력보다 물밑에서 이뤄지는 음모와 규정짓기, 한 인간의 존재를 바꾸는 다수의 전략과 몰아가기가 훨씬 더 무섭다는 점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네명이다. 최기표는 학교 짱으로, 교활하고 냉혹한 성격이다. 성격 좋고 통솔력 있는 반장 임형우, 그리고 학생들을 장악하려는 담임 교사를 같은 반 학생인 이유대(작중화자)가 관찰하는 구조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말 한 도시의 고등학교다. 유대는 학교 강당 뒤편에서 기표를 포함한 일곱 명의 재수파(일진들의 모임 명칭)에게 두들겨 맞는다. '메스껍게 굴었다'는 이유였다. 형우는 유대에게 어떻게 대응할 거냐고 묻지만 유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보복이 두려워서다.
새 학기기 시작되고 담임인 김 선생은 무사안일의 1년을 강조하며 순탄하게 항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우리의 항해를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라 덧붙인다. 다분히 학교 짱인 기표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담임은 자신의 반 학생들을 유심히 관찰한 뒤 평판이 좋은 형우를 반장으로 하자고 제의한다. 그러면서 유대에게 기표는 문제없느냐고 묻는다. 유대는 강당 뒤에서 당한 담뱃불 자국을 보이고 싶었으나 참는다. 담임은 이미 기표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했으면서 유대에게 다시 한번 떠보고 있었다. 유대에게 첩자가 되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담임은 기표를 부반장으로 임명하자고 한다. 유대는 그에 대해 '기표를 위한 건지 우리를 위한 건지' 되묻는다. 담임은 이를 통해 기표의 힘을 빼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유대는 유급까지 당한 기표가 간부가 되면 안 된다고 한다.
기표는 대단히 폭력적이며 악하고 교활하다. 독사와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묘사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표에 대해 나쁜 얘기를 잘 하지않는다. 공포때문에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5월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형우가 재수파에게 린치를 당한다. 형우는 기표와 재수파 한 아이가 낙제할 위험이 있으니 부정행위로 그들을 돕자고 제안한 바 있다. 형우의 행동을 두고 재수파가 '왜 나대냐'면서 팬 것이다. 평우는 부정행위를 들키면 자기가 시켜서 했다고 말하고, 그런 제안을 자신이 했다는 걸 기표가 모르게 해달라는 것을 반 학생들에게 부탁했고 모두 동의했다. 시험 시간에 커닝 페이퍼를 받은 기표는 감독 선생에게 그 사실을 바로 알린다. 감독 선생의 누구의 짓이냐고 묻자 형우가 일어나 자신이 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도 우르르 일어서 형우와 함께 한다. 감독 선생은 그 모습에 감동하며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한다.
형우는 린치를 당한 후 병원에 입원한다. 학생주임이 누구의 짓이냐고 형우를 캐묻지만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담임은 모든걸 알면서도 아는체 하지 않는다. 형우는 의리있는 녀석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영웅이 된다. 유대는 이 모든일이 담임과 형우의 공모하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형우가 병원에 있을 때 기표를 제외한 재수파들이 모두 각자 몰래 와서는 사과를 하고 갔다고 한다. 재수파들은 기표를 악마라고 부른다.
재수파들은 기표네 집안이 어렵다는 이유를 생활비를 거둬 보태줬다. 형우 린치 사건으로 인해 기표를 무서워한 재수파들은 이제 기표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기표는 결석도 안 하고 평소보다 얌전해졌고 담임이 지시하는 일에도 별 표정 없이 묵묵히 따른다. 형우는 기표가 반에서 자리를 비웠을 때 기표네 가정사를 얘기하며 힘을 합쳐 돕자고 제안한다. 중풍 걸린 아버지,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 버스 안내원 하던 여동생이 술집에 나가려 했다는 일, 재수파들이 도운 일 등을 들으며 모두가 숙연해진다.
반장과 아이들이 돈을 들고 내기 시작한다. 일간지 편집부 국장을 지낸 학부형을 담임과 반장이 만났고, 그 신문사 기자가 학교를 여러 번 다녀가며 미담 기사가 실린다. 월요일 조회 때마다 교장은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성금과 위문편지를 기표에게 전달한다. 기표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는 소문이 퍼진다. 기표는 이제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로 변해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기표는 잠적한다. 그가 여동생에게 보낸 '무섭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난다.
소설에서 담임과 형우는 의리와 진실과 호의를 가장한 위선자다. 이들은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표를 이용한다. 학교 짱에서 도움이 필요한 불우가정 출신 학생으로 몰락하는 기표를 통해, 합법적 권력이 벌거벗은 폭력보다 오히려 더 무섭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보다 한층 더 리얼하고 한발 더 들어간 작품이다. 후자가 엄석대로 대표되는 절대 권력에 대한 학생 차원의 저항을 그렸다면 전자는 물밑에서 벌어지는 합법적 권력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종국에는 한 인간을 어떻게 굴복시키는지 그리고 있다. 물론 아이들의 돈을 빼앗고, 괴롭히고, 잔인하게 폭행하고, 항상 중요할때마다 본인은 쏙 빠지는 기표는 사회부적응자이자 계도해야 할 대상이다. 다만 담임과 형우는 기표가 개과천선해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자발적인 적응을 유도하는 방식이 아닌, 아예 '우리와 다른 불쌍한 놈'으로 규정하며 종속시키려는 태도를 취한다. 기표가 아무리 공포를 조장하며 세력을 구축해도 겉으로는 너그럽지만 속으로는 기표보다 훨씬 더 잔인한 합법 권력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네 정치인들이 담임 혹은 형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멀쑥하고, 말끔하며 말도 잘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타락하고 위선적이니까.
전상국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위선과 교활한 지혜는 더욱 질 나쁜 폭력이다. 권위주의 또한 내가 싫어하는 폭력이다. 그것은 은폐되는 진실에 대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일사불란한 힘과 우리를 위한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악랄한 선과 권위에 대한 내 생각은 주로 교단을 배경으로 전개된다”고 했다.
나는 '이유대' 라는 캐릭터에 좀더 주목한다. 소시민인 유대는 담임과 형우의 계략을 눈치채면서도 잠자코 있는다. 기표에게 린치를 당했으니 복수하고 싶어하지만 담임과 형우의 위선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기표의 시험을 도와주는 게 담임의 전략임을 알지만 학우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비겁하지만, 너무나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권이 들어선지 오래됐다.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로 대표되는 강압적인 정권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다만 정권을 막론하고 대통령이 누가되든 쇼 비즈니스는 이어지고 있다. 날카롭게 워치하고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폭력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과 돈, 힘으로 시민과 개인을 휘어잡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주체는 정권일수도 있고 재벌로 대표되는 기업권력 혹은 종교, 언론, 검찰 등 수사기관일 수도 있다. 우리 시민들이 이유대처럼 침묵한다면 위선과 교활이 지배하는 사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니 항상 깨어있고, 공부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사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