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하기 싫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결과가 두려운 경우다. 일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일을 시작하기 어렵고, 더 구체적으로는 실패에 대한 공포와 그 일의 결과로 파생될 새로운 사건에 대한 두려움이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한다.
실패를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실패의 괴로움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주문일뿐 실패 자체의 고통을 희석시켜주는 마법은 아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괴롭지만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실패해도 크게 좌절하거나 괘념치 않고 "사람이 하는 일이 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하며 넘기는 사람도 있는 반면 실패의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성공확률 100%의 확신 없이는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그런 상황을 어떻게든 회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성향이 다른 것일 뿐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할 문제는 아니다. 문제만 일으키면서 섣불리 뛰어드는 사람보다 작지만 확실한 성취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이 오히려 적은 상처로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태도로 실패를 대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실패의 두려움은 과거의 실패 경험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에 따라 다르게 학습된다. 이것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부모의 양육방식이다.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타고난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실패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수많은 실수를 하며 자라난다. 실수에 대한 부모의 반응은 아이가 실수, 나아가서는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아이가 물을 쏟거나 유리잔을 떨어트렸을 때 비난하는 부모와 괜찮다며 달래는 부모가 있다. 비난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실수를 매우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절대 해서는 안될 것으로 학습한다. 괜찮다며 다친 곳은 없는지부터 확인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실수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한 자책이나 미안함, 수치스러움 등으로부터 일정 부분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내용은 부모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실수한 아이에게 비난보다는 격려와 다독임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같은 상황에서 비난하는 부모와 다독이는 부모가 여자와 남자, 혹은 지구인과 화성인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부모도 상황과 상태에 따라 반응은 얼마든지 나뉠 수 있으며 양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예컨대 아이가 물 잔을 엎질렀을 때 부모가 이미 다른 일로 지치고 에너지 수준이 고갈된 상태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자녀 가정의 경우 유사한 일이 하루에 수 차례 지속적으로 반복될 텐데 그런 상황에서 마냥 아이의 실수를 격려만 할 수 있는 부모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이의 성향에 따라서는 괜찮다며 달래줬더니 같은 실수를 장난스럽게 반복하며 부모의 반응을 시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수도 없이 많고 경우의 수도 무한대에 가깝다. 따라서 부모의 노력이 필요한 지점은 비난하는 부모와 격려하는 부모 중에서 어느 한쪽을 완벽히 선택하고 그 상태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어차피 불가능하다) 이 두 지점 사이에서 실현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면을 충분히 취하고 체력적이나 마음적, 혹은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충분한 부모라면 사이코패스나 아동학대를 낙으로 살아가는 뉴스 기사에 나올법한 사람이 아닌 이상 아이의 경솔함과 서투름으로 인한 실수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부드럽게 상황을 정리하고 적정 수준의 주의를 통해 감정과 관계는 손실되지 않고 아이의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교육효과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요즘 부모들이 처한 상황은 위의 예시처럼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직장생활과 양육을 동시에 하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결혼 연령은 높아지는 추세다. 체력적인 면에서만 보면 20대에 영유아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30대에 같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감당할 수 있는 양육의 수준이 다름은 부정할 수 없다. 초기 육아는 사실 체력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몸이 힘들면 마음도 고단하며, 감정의 주머니도 작아져 수용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이나 인내심의 수준도 함께 낮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좋은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매뉴얼대로 아이를 대하다가는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스트레스 과다, 화병 등으로 더 큰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둘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육아휴직 등을 통해 육아에 전념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육아를 전담으로 맡더라도 부모의 기질이나 신념, 태도 등에 따라 같은 문제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예컨대 부모가 깨끗하게 정리된 상황을 선호하고 사소한 문제의 발생도 버거워하며 어질러진 상태에 대한 인내심이 기질적으로 낮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부모는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고 적절한 양육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기 때문에 실수한 아이에 대해 반사적으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일은 드물다. 다만 이런 성향의 부모는 같은 상황에서도 에너지 소진이 빠를 수밖에 없다. "좋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가 되는 것이다.
적절한 팁은 부모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를 짚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도 사람이기 때문에 바쁘고 힘든 시간이 누적되면 여유도 체력도 부족하고 짜증이 치솟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을 부정하고 억누르기만 해서는 상처는 썩어 들어갈 뿐 치료되지 않는다. 우선 자신의 현재 에너지 수준과 감정 상태 등을 확인하고, 넘치거나 쏟아지기 전에 잔을 비워주는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다. 육아부담이 큰 경우에는 잔을 비우고 싶어도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지 못하거나, 방법을 알더라도 그것을 실천할 수단이나 여력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부부의 경우 서로 그런 시간을 적절히 만들 수 있도록 생활전략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에게 솔직한 자세로 양해를 구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엄마가(아빠가) 오늘은 좀 힘드네. 00가 엄마(아빠)를 좀 이해해줄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비록 그 의미나 행간에 담긴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감정은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서도 전달되기 때문에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막다른 길에 다다라 아이 또는 타인(대부분의 경우 배우자)에게 그간의 힘들었던 감정을 한꺼번에 터트리는 것보다는 아이와 사소하지만 강력한 감정의 대화를 통해 해소의 시도부터 거치는 것이 훨씬 더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상황을 풀어나가는 지혜다.
다른 방법은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 들 때는 우선 말을 줄이는 것이다. 예컨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상황의 뒤처리만 하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분위기를 읽고 어느 정도 긴장은 하겠지만 원색적 비난이나 감정의 소나기는 피할 수 있으며, 부모는 불필요한 분노의 자가발전 회로를 끊을 수 있고 자책의 빌미를 사전 예방할 수 있다.
부모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더라도 부모도 무언가에 복받쳐 아이의 실수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왜 하지 말라는데도 쓸데없는 짓을 해가지고는 일을 이지경으로 만드니!"와 같은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패턴이 고착화되거나 부모 혼자의 자책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후속조치로 적합한 것은 부모 혼자 끙끙 앓는 자책이 아니라 아이에게 사과하고 그때의 부모가 어떤 마음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아이에게 'I-Message' 형태로 설명해주는 방식이다. 엎어진 물이라 여기고 지나치기보다 뒤늦게라도(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아이에게도 부모 역시 자신과 같은 불완전성을 지닌 사람임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양육의 중요한 요소다. 아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법을 익히며 타인을 적절히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거나 때로는 절제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양육은 부모와 아이의 관계 맺음 과정이지 부모 홀로 독박 쓰는 고통 체험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 스스로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려 하며 아이에게는 부모를 이해하거나 도울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아이를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자신의 일방적 노력(예컨대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와 같은)의 반대급부로 아이의 삶을 통제하고 조정하려 든다면 양육과정도 하나의 인간관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이 단순히 우발적 사고에 그치지 못한 채 관계의 커다란 균열과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최초의 인간관계라 할 수 있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커다란 갈등은 아이의 애착형성 문제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나 불안, 관계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인 인간관을 뒤트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보호받아야만 할 존재'로 보는 관점은 타인에게 다가가는데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탄탄하게 구성하고 자신감, 자존감을 적정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독립성, 주체성, 효능감 등이 필수적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과 동시에 자신 역시 타인에게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베풀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한쪽으로 유달리 기울어버리면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치닫거나 지극히 착취적인 관계에서도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등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머무르면서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