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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쓴다면 좋을 것입니다

by 작가 전우형

그곳은 어떻습니까

은하수 옆을 흐르는 시간들처럼

산산이 부서졌습니까


빛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우주를 통과해 온다고 합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편지를 쓴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빛에 실어 부친다면

빛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우주를 통과해

그 편지를 전해주겠지요

지금의 나나

지금의 당신과

완전히 다른

그곳의 당신과

그곳의 나


편지를 쓰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내가

지금의 당신에게

할 수 없는 말들을

빛에 실어 보내면

소리 없이 그곳에 당도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면의 온도만큼 뜨겁고

살아온 시간만큼 광활한

우주를 건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은하수 옆을 흐르는 시간처럼

산산이 부서진 채로


시간에는 순서도 내력도 없습니다

미안하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존심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태초의 빛이 어느 한 점에서 쏟아져 나올 때의

찬란함만을 담아

그곳의 당신에게

전할 수 있겠지요


편지를 쓰면 좋겠습니다

해열제도 듣지 않는 밤처럼

들불이 인 듯

노을이 사그라들지 않을 때

산산조각 난 시간을 헤아릴 것입니다

시간의 깊이를 가늠할 것입니다

은하수 옆을 흐르는 시간처럼

편지를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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