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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누군가를 보낸 후의 공기가 나는 가장 두렵다. 두려움은 편지와 같다. 펼치기 전까지는 내용을 알 수 없고 받는 이에게 전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읽게 될 수도 있고 답장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편지에는 전할 수 없었던 말들이 담기기도 한다. 예컨대 속마음 같은 것. 보내고 난 후에야 떠오른 말들. 꼭 전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전할 수 없었던 말들. 그래서 한 번을 쓰고 다시 쓴다. 답장을 기다렸다가 쓰기도 하고 기다리지 않고 연달아 보내기도 한다.


나는 헤어짐이 힘들고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는 질문에도 답하지 못한다. 그런 질문은 잔인하면서도 달콤해서 마음껏 슬퍼하기에는 적합하지만 나는 때때로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은 생각나지 않는 기억 같다. 멀어지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고, 마주 보며 뒷걸음치는 것과 서로를 지나쳐 똑바로 걸어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런 순간을 딛고 멀어지더라도 비 온 뒤의 물줄기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결국은 감기처럼 열감의 시간은 존재하고 우산을 써도 비에 젖는 부분처럼 우리는 쏟아지는 슬픔을 온전히 피해 갈 수 없다.


새벽노을 아래를 걷는다.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일은 흔치 않고, 어지럼증이 인다. 당신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평선이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을 때처럼 삐걱거린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 군데군데 허물어진 길처럼 다시 쓰는 편지에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왜 무언가를 전하려 하는 걸까. 하지 못했던 말은 하지 못한 채로 두는 것이 맞다.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과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찬 기운을 느낀다. 쓰지 않은 편지를 읽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 마음을 둘로 가르는 일에 나는 익숙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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