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춤을 춘다. 물 비친 창밖을 보며. 그 속에 담긴 빛의 산란이 아름다우면서도 가엽다. 우린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 생명을 가졌다는 뜻은 그렇다. 끝이 있다는 것. 끝으로부터 비켜갈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지킬 수 있다는 것. 생명을 가졌다는 뜻은 그렇다. 시작이 있다는 것. 시작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나의 시작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가끔 한 손을 놓고 스윙을 하거나 두 손을 모두 놓고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숨이 느껴질 만큼 가깝다. 심장은 서서히 두근거린다. 서로의 템포를 맞춘다. 따라간다, 상대방을. 춤을 춘다. 물 비친 창가에 서서. 그곳에 비친 내 모습에 손을 댄다. 차갑게 느껴지는 나의 그림자 앞에서 멀리, 그 이후를 본다. 먼 곳, 하늘이 땅과 손을 맞잡는 곳, 멀어져 가는 불빛들, 늘 그곳에 있는 불빛들. 움직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죽음을 꿈꾼다. 죽어간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과 같다. 자라나는 것이 나이 들어감과 같은 것이듯. 하지만 우리는 그 둘을 구분한다. 또, 구분하고자 한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 죽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들에게 죽음이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죽음은 슬프다기보다 어처구니가 없다.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겪은 이에게는 하나의 모노드라마다. 슬픔은 뒤늦게 찾아온다. 춤을 추다 박자를 놓쳤을 때처럼. 상대의 손을 영영 놓쳐버렸을 때처럼. 노쇠한 이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럴듯하다. 그는 죽기 이전에도 죽어가고 있었고 모두들, 심지어 그 자신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의 죽음은 이제 댄스가 끝난 것이다. 차분히 마무리를 짓고 상대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다. 그의 심장은 서서히 멎는다. 쉴 때가 되었음을,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시간은 현재를 말해주지만 많은 경우 이미 지난 과거를 가리킨다. 매 순간 지나가고 있는 현재에 대해 시간은 웅변하는 듯하다.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너의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음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로서 지금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나의 시간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하지만 삶을 무한히 연장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어처구니없이 녹아 버린 눈사람을 통해 망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억이란 각자의 시간을 상대방에게 묻히는 것이고, 인간은 가끔 누군가 나를 기억해 준다면 그 속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낭만을 품고 있기에 사랑은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존재에 대하여 태어나자마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지금껏 수십 년의 기간을 모르고 지냈던 존재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사랑을 가졌다는 뜻은 그렇다. 끝이 있다는 것. 끝으로부터 비켜갈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지킬 수 있다는 것. 사랑을 가졌다는 뜻은 그렇다. 시작이 있다는 것. 시작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나의 사랑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
춤을 춘다. 가끔 손을 놓고 스윙을 하거나 멀어졌다 가까워진다. 숨이 가까운 데서 불어오고 심장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템포가 어긋난다. 따라가지 못한다, 상대방을. 그래도 춤을 춘다. 물 비친 창가에 서서. 그 속을 본다. 어느덧 비가 멎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