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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화 Jun 17. 2023

스펜서

당신의 아름다운 날개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대한 비유로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숨겨진 위험에 대한 비유로도 인용되는 말입니다. 디오니시오스는 다모클레스의 머리 위에 매단 칼을 통해 권력을 손에 쥔 자는 늘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죠. 


눈부신 왕좌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위험과 두려움에 대한 또 다른 유명한 말로는 셰익스피어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격언들이 이야기해 주듯이, 권력은 많은 것들을 약속하는 만큼 많은 것들을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많은 두려움과 위험을 감수하고 권력을 쟁취하고자 애쓰고, 목말라합니다. 권좌의 광채가 보여주는 화려한 영광은 그만큼 거부하기 힘들고 매력적인 것인 듯합니다.


그러나 때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권좌에 앉는 이들이 있습니다. 투표로 만들어지는 현대적 권력이 아닌 왕실과 왕족이라는 권력은 결혼을 통해 그 형태가 유지되고 파생됩니다. 따라서 권력을 원하지 않아도 결혼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나열된 권좌의 한편에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앉아야 하는 권좌를 마주한 사람은 권좌 위에 빛나는 영광과 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런 이가 마주하는 것은 오직 권좌가 가진 무게뿐이죠. 


스펜서가 포커스를 둔 부분은 바로 이런 원치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권좌의 무게입니다. 영광을 원하는 자에게 권좌의 자격을 얻기 위해 받아야 하는 고통은 영광의 전리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광을 원하지 않는 자에게 강요되는 무게는 폭력의 압박감일 뿐이라는 것이죠. 


권좌의 무게는 자유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생각하면 그에 대한 상징으로 곧 잘 날개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권좌에 앉은 자에게 가장 불필요한 것이 바로 날개입니다. 권좌에 앉은 이는 권좌를 지켜야 합니다. 권력을 지키는 제도와 관습을 따르며, 한 개인의 명분이 아니라 권좌의 평판과 힘을 지켜야 합니다. 권좌에 정착하기 위해 날개를 가진 이들은 가장 먼저 날개를 제거당합니다. 더는 개인의 꿈과 욕망, 자유를 위해 비상할 필요가 없음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르쉐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다이애나의 날개는 부러트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움 날개입니다. 아름다운 만큼 굳세어 잘 부러지지 않는 않는 뼈대를 가진 날개 말입니다. 동시에 날개를 부러트리고자 하는, 권좌에 권속 된 이들에게는 가장 부러트리고 싶은 날개일 것입니다.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날개를 가진 새는 언제든 비상할 수 있습니다. 날개가 부러지지 않는다면, 그런 새를 잡아두는 유일한 방법은 새장에 가두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거대하고 화려한, 왕실이라는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에 갇힌 동물은 쉽게 생기를 잃고 무기력하게 앉아 있고는 합니다. 그런데 간혹 갇혔다는 사실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영화는 내내 숨 막히고 위태롭습니다. 그 이유는 다이애나가 바로 억압에 저항하는 동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다이애나는 날지 못해 새장 안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새가 아니라,     

계속해서 새장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새입니다. 단단한 새장의 쇠창살에 일말의 흠집이 나지도,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아도 말입니다. 


주어진 현실의 무게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우리는 포기하고 세상의 강요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계속해서 저항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다이애나는 타협을 고민하지 않고 저항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저항은 위태롭고 숨 막혔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위태로움은 불편함에 영화를 중단하고 싶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위태로움은 응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녀와 같은 경험이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두 아이와 함께 해맑게 웃으며 떠나는 그녀의 모습은 끝내 새장을 비집고 날아오른 새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왕실의, 현실의 강요는 결국 그녀의 날개를 부러뜨리지도, 하다 못해 그녀에게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앗아가는 일에 조차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위태로웠으나, 끝내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찾아오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머리 위에 칼날이 날카롭게 다듬어진 끝으로 위협하며 지키고 싶지 않은 것을 지키라고 이야기하는 때가 말입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해 갈망하고, 자유를 위해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빛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면 주어진 빛나는 권좌를 거부하고 흙냄새 나는 들판에 누우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권좌의 영광과 무게를 기꺼이 거부하고, 사랑하는 이와 바람 부는 들판을 누빌 수 있는 자유를 아는 자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새일테니까요.     


어두운 밤, 삶이 강요하는 무게가 유독 고통스러울 순간이 온다면 가만히 창가에 비친 자신의 어깻죽지를 바라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곳에 돋아난, 정말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세상이 그토록 꺾고 싶어 하던 당신의 아름다운 날개를 말입니다. 그 아름다운 날개에 깃든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질식하듯 숨 막히고 두려웠던 무게를 벗어나 시원한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날아오를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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