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zzy Jan 09. 2023

애매한 우울을 가진 사람이 쓰는 애매한 에세이

오늘도 허무하게 끝났을 것 같았으나

방금 있었던 일이다. 몇주 전에 꼭 지원하겠다고 생각한 회사 구직공고가 있었다. 전 에세이에서도 언급했던 것 같다. 기간이 일요일인 오늘까지여서 쓴 것이 아무것도 없던 나는 거의 포기상태였다. 하지만 오늘은 수영을 포기했었다. 내 게으름 때문에 요즘 가장 좋아하고 즐겨하는 수영을 포기했던 것이다. 수영을 포기해 아낀 에너지를 자소서 쓰는데 보탰다. 하마터면 정말 포기할 뻔했다. 자소서를 쓰겠다고 카페에 갔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가서 겨우 1시간 반만 있다가 왔다. 비싼 음료를 시켜놓고 정작 글은 거의 쓰지 않은채 마감시간의 압박에 밀려 집에 오고야 말았다. 집에 와서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거의 히키코모리 같이 몇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보냈던 사람은 이력서에, 자소서에 쓸 내용이 없다. 중간중간 돈이 급해 단기로 했던 알바들은 직무와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쓰기 싫었다.취업시장은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나의 모순을 마주한다. 겨우겨우 쥐어짠 것들도 형편이 없다. 하지만 제출해야했다. 해보긴 해야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1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1분이 남았을 때도 완성하지 못하다가 12시가 됐을 때 제출했다. 기한을 넘겼는지 안넘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분은 꽤 괜찮았다. 거의 몇주를 꾸물거리다가 막판에 형편없이 써서 낸 지원서지만 어쨌든 냈으니 당분간 기분은 낼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한심하다.


어제오늘 열심히 본 드라마가 있다. 외국 드라마인데, 우울증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온다. 약을 먹고 상담까지 받는 설정이라서 나보다 심각해보이긴 한다. 아니, 나도 비슷하게 심각한데 그저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인물은 겉으로는 부족한 것이 없다. 화목하고 부유한 가족, 나를 신경써주는 애인과 친구들이 우울증에 고통받는 인물을 걱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인물은 우울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텅빈 눈으로 누워만 있는게 지난 몇년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공감이 갔다. 우울 때문에 감정이 무뎌지지만 자기연민과 영문모를 두려움 때문에 울기도 한다. 사실 나의 경우엔 무기력증, 돈, 가족 같은 뚜렷한 이유가 있지만 이 인물은 그런게 없어서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의 우울함을 알아채고, 신경써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점이었다. 아주 가까이 있는 가족이라도 먹고살기 바쁘면 다른 이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옛날엔 이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소리내어 말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심리상담을 받게 되면 꼭 털어놓을 것이다. 내 주변엔 나의 우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도 감당할 사람이 없다. 감당할 겨를이 있는 사람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우울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을 도저히 볼 수가 없다. 2021년엔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지만 2022년엔 좀 괜찮았다. 또 일년을 허비했지만 2년전보다 나아진 것에 감사하다. 여전히 우울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지만…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다보면, 답을 찾고 실패하고, 그러다 또 답을 찾고 그러다보면 나올 것이다. 한번의 시도 끝에 답을 찾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일단 부딪히길 바란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인생 아닌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애매한 우울을 가진 사람이 쓰는 애매한 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