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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Jun 02. 2024

2024/06/02

짧은 습작

  매주 일요일 오전이면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을 데리고 목욕에 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목욕 바구니를 들었고 내 동생은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아버지는 우리 보고 탕에 들어가서 몸을 불리고 있으라고 말한 뒤 매점에서 두유 두 병을 사 와 그걸 온탕의 뜨거운 물에 담가놓으시고는 했다. 40분 정도의 목욕이 끝나고 몸을 말리고 있을 때쯤이면 아버지는 우리에게 따뜻해진 두유 두 병을 나눠주었다. 그곳은 차가운 음료만 팔고 있었기 때문에 따뜻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었다. 설날과 추석은 목욕탕이 붐볐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목욕탕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스름진 하늘을 등지고 같이 길을 걷고는 하였다. 명절이 평소와 다른 건 아버지가 우리를 이발소에도 데리고 갔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중요한 날일수록 항상 깨끗하게 사고 다녀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씀하시고는 했다.


  시간이 지나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내 동생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매주 아버지와 목욕탕에 갔지만 나와 우리 형제는 이전처럼 어리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때를 미는 건 각자의 몫이 되었었다. 그즈음 imf가 터졌었다. 목욕이 끝나면 항상 마시던 음료가 크게 달라지거나 그런 건 아니었만 그 시기의 아버지는 차를 놓고 자주 걸어 다니셨다. 시간이 지나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자취를 하게 되었고 내 동생은 예고에서 기숙 생활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목욕탕에 최근 나 다니는 일이 줄어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적 아버지는 우리에게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려왔다. 아버지는 몸을 최대한 깨끗하게 하고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으셨다. 아버지는 방금 이발소에 다녀오신 듯한 깔끔한 머리로 조문객을 맞이하셨다. 장례를 다 마친 아버지는 동네 어느 목욕탕의 연간 회원권을 구입하시고는 아침에 한 번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목욕탕에 드나들기 시작하셨다. 그 외의 시간에는 거의 운영하시는 식당에 나가계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은 거의 비어있다시피 방치가 되었다. 나와 내 동생이 가끔 집에 들러보면 집 한구석에는 아버지가 아직 젊은 시절에 입던 옷과 어머니의 화장품, 옷가지, 두 분이 데이트하던 시절의 사진 등이 종이 상자 안에 정리되어 놓여 있었다.


  어느 가을, 아버지는 나에게 목욕탕 회원권이 기간이 많이 남아 있다며 네가 인수해서 가져다 썼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하나 보내셨다. 내가 전화를 해서 아버지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제는 몸이 지쳐 매일 밖에 나가 목욕탕을 가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말하셨다. 아버지는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안방에서 티브이를 켜놓은 채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차림새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옆에는 미안하다 용서해 주라는 내용의 쪽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집을 정리하러 갔을 때 이전에 보았던 종이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는 거의 새것에 가까운 목욕용품으로 채워진 낡은 목욕 바구니 하나가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은 앞으로 명절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샴푸와 비누 따위를 서로 나눠 가지고는 낡을 대로 낡은 목욕 바구니는 재활용품 수거함에 내다 놓았다. 점점 희미해지는 가족의 연을 어디까지 이어나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로 말이다.이후 나와 내 동생은 서로 얼굴을 보는 일이 줄어들었다. 각자의 삶이 바쁜 탓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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