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기휴업 Jun 16. 2024

2024/06/16

짧은 습작

  제주도에 산다고 했던가? 책이 한가득 들어있는 택배 박스가 집 앞에 놓여있었다. 열어보니 대충 열댓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소설 여섯 권과 작법서 네 권, 평론집 두 권 그리고 시집 하나. 그중에는 마루야마 겐지와 윌리엄 트레버, 김태용 따위가 있었다. 시집은 황인찬이었다. 온라인 합평 통해 연락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올해 등단에 성공했기 때문에 작법서에는 이제 큰 욕심이 없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라도 습작생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지요. 안 그래도 잘 됐다 싶었어요. 이번에 코이카 해외봉사를 지원하게 되었는데 집에 있는 책들을 다 들고 갈 수없어서 그냥 팔아버리려던 참이었거든요. 선생님의 글어울리겠다 싶은 건 다 골라 넣었으니깐 한 번 천천히 읽어보세요'

  고마운 일이었다. 직접 찾아뵙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 좋을 것 같았지만 제주도가 조금 멀다 싶었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제주도는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했고 좋든 싫든 나의 20대 청춘의 일부가 묻힌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서의 지루함이 싫어서 홀로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이쯤 되니 나의 문학적 고향을 제주도로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내심을 갖고 쓰세요. 무엇보다 당장 좋은 소설을 써야겠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즐거운 글을 쓰시면 좋겠어요. 워낙 재능이 있는 분이시니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고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어디엔가 닿아있을 거예요. 지금은 내가 쓸 수 있는 걸 써봅시다. 읽고 쓰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으니까요'

  그날 대충 한 권의 책을 읽었고 초고 한 편을 완성하였다. 습작 폴더에는 퇴고를 거치고 있는 소설서너 편 쌓여 있었다. 뭐 퇴고는 끝이 없는 거니깐. 문서창을 닫고 그녀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석 장을 전송하였다. 책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그녀는 이내 고맙다는 말로 나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는 다시 답장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던 것 같은데 작가라는 단어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결국 쓰는 게 중요하다고. 소설에는 사실 그렇게 큰 규칙이 존재하지 않아. 그냥 좋은 이야기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뿐이지. 답을 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니깐. 내가 답장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는 함덕 쪽의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어요. 혹시라도 제주도에 오게 되면 연락 주세요'

  나는 뭐라 답장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했다.

  '저는 전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작가 님도 기회 되시면 한 번 놀러 오세요'

  작가는 그저 자신이 바라보 있는 세상에 대해 적을 뿐이야. 그리고는 독자에게 묻는 거지. 당신은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요? 카톡창의 1은 금세 사라졌다.

  '기회 되면 다음에 꼭 놀러 갈게요.  저는 이제 자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갤러리에 행사가 있어서 일찍 자야 해요. 그럼 잘 자요'

  그녀가 답을 보내왔다.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고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지금은 내가 쓸 수 있는 걸 쓰는 거야.

  '아 그리고 저는 선생님의 맑고 단아한 문장이 좋아요. 열심히 하셔서 꼭 등단하시면 좋겠어요'

  그래, 읽고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깐.



작가의 이전글 2024/06/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